다극화시대 접어든 글로벌 전투기시장
미국 일방독주 어려워져 … 포린폴리시 "한국 튀르키예 대만 등 자체 개발 야심만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올해 6월 정상회담에서 '제너럴 일렉트릭(GE)이 인도 국영기업과 함께 인도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을 위한 제트엔진을 함께 제조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중요한 글로벌 트렌드를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전투기 제조와 관련한 국가간 경쟁이 부활했다는 것. 포린폴리시(FP)는 최근 보도에서 "과거 약소국들이 국영 제트기 개발을 시도했지만, 지금은 더 많은 국가들이 전투기 개발에 성공하고 있다"며 "미국이 전투기 수출에서 관심을 돌리고 있는 때와 맞물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FP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과 같은 강대국의 부상에 대비하기 위해 수출용 범용 제트기보다 더 유능하고 특화된 제트기 개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미국 정책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수출용 전투기시장에서 미국의 입지가 줄어드는 전망이다.
FP는 "2030년대 후반이 되면 세계 전투기 시장과 방산시장 전반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세분화될 전망이다. 각국이 미국산 전투기 의존도를 줄여나가면서 미국의 지배력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이 다른 국가의 전투기를 구동하는 시스템과 기술을 우선적으로 판매해 달라진 트렌드에 적응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전했다.
냉전 이후 자체 개발 열풍 사그라져
거의 모든 주요 강대국 및 군소 강대국이 자체적으로 전투기를 제작하려던 시기가 있었다. 198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 대만 유고슬라비아 브라질 루마니아 이스라엘 일본 인도 등이 국가 전투기 개발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자체 개발 제트기 중 일부는 비교적 소량으로 제작됐다. 하지만 대부분 개발 시도는 1990년대 들어 중단됐다.
국가적 전투기 개발 붐이 쇠퇴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탈냉전 이후 각국의 국방예산이 줄어들면서 전투기시장도 위축됐다. 경제가 자유화되고 무역장벽이 무너졌다. 국가주도 산업정책은 유행에 뒤처진 것으로 여겨졌다.
반면 미국은 규격화된 제트기 판매로 큰 성공을 거뒀다. 록히드마틴의 F-16은 가격 대비 엄청난 가치를 제공하면서 시장을 장악했다. 항공컨설팅기업 '에어로다이나믹 어드바이저리'에 따르면 1991~1995년 서방 방산기업들은 1667대의 전투기를 제작했다. 이 가운데 727대는 F-16, 597대는 그외 미국 기종이었다.
미국은 그 후속으로 2015년 F-35 합동타격전투기를 개발했다. F-35는 세계 전투기시장에서 미국의 수출우위를 확고히 했다. 노르웨이와 한국 등 지금까지 20개국 이상 수출고객을 확보한 F-35는 이전 기종과 마찬가지로 큰 성공을 거뒀다. FP는 "하지만 F-35는 각국이 기성품 구매에 만족하던 냉전 이후 시대의 산물"이라며 "새로운 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입함에 따라 F-35는 미국 산업을 미래로 이끌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전했다.
국가 전투기 프로그램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는 일본이다.
1990년대 일본은 수십억달러를 들여 미국과 공동으로 F-2를 개발했다. 미국은 기술이전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전투기 및 방산 수출에서 주도권을 내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일본도 F-16을 재창조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F-2 생산량을 당초 계획보다 크게 줄였다. 일본은 현재 147대의 기성품 F-35를 구매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본은 최근 영국과 새로운 제트기를 공동개발하기로 했다. 2030년대 후반부터 양국은 F-35 조달을 중단하고 공동 전투기 제작에 착수할 예정이다.
냉전 이후 새로운 전투기 개발을 시작한 유일 국가인 한국은 KF-21 보라매로 이러한 추세를 실제로 시작했다. 이제 튀르키예도 카안 TF 전투기로 이 흐름에 합류했다. 대만도 칭궈 훈련기와 경공격기 버전으로 재탄생한 차세대 전투기로 다시 게임에 뛰어들었다. 주요 전투기 수입국인 아랍에미리트는 올해 초 자체 전투기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전통의 신흥 방산국인 인도는 1950년대부터 자체 제트 전투기를 제작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6월 제트엔진 공동개발의 대상인 테야스 경전투기 프로그램은 1980년대 초부터 진행돼 왔으며 2015년 소량으로 시장에 출시된 바 있다. 이제 GE의 도움으로 생산량을 두자릿수까지 끌어올릴 전망이다. 인도는 또 테야스 후속기종으로 2030년대 첨단 중형 전투기를 개발할 계획이다.
전세계 각국, 국방역량 제고에 전력
전투기뿐만이 아니다. 중견 강대국들은 미사일 프로그램과 우주 시스템, 군수품 생산 및 유지보수 능력을 대폭 강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호주는 다른 국가 및 국제 방산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 미사일과 드론, 잠수함 산업을 창출하려고 한다. 이스라엘의 경우 미사일방어 분야의 방산수출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까지 방위산업 역량을 거의 갖추지 못했던 사우디아라비아도 2030년까지 국방조달의 50%를 국산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과 일본의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계 각국이 국방역량을 다시 강조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아시아에 이어 동유럽까지 긴장이 고조되면서 각국 국방예산이 급증했다. 산유국들은 축적된 재원을 기반으로 더 많은 엔지니어와 기술인력을 교육시키고 있다. 동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국가적 추세를 더욱 가속화했다. 전세계적으로 방위산업 역량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30년간 국가방위 산업계획을 가속화한 유일한 국가인 한국은 튀르키예 노르웨이 인도네시아 및 기타 여러 국가로부터 수백대의 탱크와 대포, 항공기를 주문받았으며 가장 최근에는 폴란드에 FA-50 경전투기 48대를 수주하는 등 큰 보상을 받았다.
현재 방산시장에는 수급 불균형이 존재한다. 러시아는 수년 동안 세계 2번째로 큰 방산수출국이었다. 하지만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부터 수출이 감소중이었다. 러시아의 2대 시장은 국방자립도를 크게 높인 중국, 서방 및 대체 공급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는 인도였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특히 전투기와 같은 고가 시스템의 방산수출이 힘들어졌다.
미국도 장기적으로 그 틈새를 메울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분석이다. FP는 "F-35는 미국의 경쟁상대가 없었던 시대, 단 1대의 전투기 기종으로 해외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지금과는 매우 다른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의 전략은 바뀌었다. 미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프로그램은 2030년대 초까지 비용과 보안상 이유로 수출이 불가능하다. 매우 비싸고 매우 큰 제트기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미 해군의 F/A-XX 전투기는 아무리 일러도 2030년대 중반에나 출시될 예정이다. 이 역시 항공모함 작전에 최적화된 대형 고가기종으로 이를 수입하려는 나라가 거의 없을 전망이다. 미국은 F-35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지만, 2030년대 후반이 되면 노후화와 최신기종 개발로 전반적인 매력도가 떨어질 수 있다.
"미국 시장지배력 줄어들 듯"
FP는 "전투기 산업이 더욱 세분화됨에 따라 미국은 기존의 시장지배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며 "따라서 GE의 대인도 제트엔진 판매를 미래의 표본으로 삼아 다른 국가의 전투기 프로그램에 기술과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 유럽 생산업체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주춤하는 동안 유럽 기업들은 신흥 전투기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그같은 전투기에 적합한 시스템과 기술을 개발중이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방산업체 '레오나르도'는 최근 현대 전투기의 필수기술인 '신형 능동 위상 배열 전투기 레이더'를 개발하기 위해 한국의 한화와 제휴했다.
미국의 무기수출 지침과 규제도 걸림돌이다. 미국정부가 한국의 KF-21 보라매에 대한 기술이전 승인을 더디게 처리하는 바람에 이 전투기는 대부분 유럽 미사일과 기타 유럽 및 이스라엘 기술을 장착했다. KF-21에 탑재된 유일한 주요 미국 시스템은 GE의 F414 엔진이다.
FP는 "전투기시장은 변하고 있다. 전세계가 전투기 개발에 뛰어들면서 미국업계의 시장점유율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며 "인도에 제트엔진을 판매하는 것은 전세계에 F-35를 판매하는 것만큼 수익성이 높지는 않지만 사업을 완전히 잃는 것보다는 낫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