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달아 외국인 범죄 타깃된 '사설 환전소'
현금 많은데 보안 시스템은 취약
"방범 시스템 설치 의무화 필요"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7일 환전소에서 현금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로 중국 동포 박 모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씨는 지난 15일 오후 5시 7분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A 환전소에서 주인을 흉기로 위협하고 현금 179만원을 빼앗은 혐의(특수강도)를 받는다.
경찰은 약 18시간 만인 전날 오전 10시30분쯤 영등포 한 호텔에서 박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피해 금액 중 100만원을 회수했다.
◆한달새 잇달아 4건 발생 = 환전소를 상대로 한 범죄는 이번 사건 외에도 최근 한달 사이에 3건이 더 발생했다.
지난 3일에는 불법 체류자인 중국 국적 40대 남성 황 모씨가 영등포구 대림동 주택가에서 30대 여성 환전업자로부터 현금 1000만원이 든 가방을 빼앗아 달아났다가 검거됐다.
황씨는 유리한 조건으로 환전해준다고 속여 유인한 후 한화 1000만원이 든 가방을 줬다가 도로 빼앗아 달아난 혐의(절도)를 받는다.
경찰은 황씨를 다음날 대림동에서 검거했다.
앞서 지난달 31일에는 중국 국적 30대 남성 정 모씨가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에서 40대 여성 환전업자를 만나 현금 1억2530만원을 훔쳐 도주했다가 4시간 만에 붙잡혔다.
이들은 만나서 환전 거래를 하기로 하고 환전상이 타고 온 차량 뒷좌석에서 신분증을 교환해 신원을 확인했다. 이후 환전상이 종이 쇼핑백에 담아온 현금을 보여주자 정씨가 그대로 들고 도망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정씨의 동선을 추적하다가 범행 4시간여 만인 오후 9시45분쯤 광진구 자양동 길거리에서 차량에 타고 있던 정씨를 절도 혐의로 체포했다.
지난달 30일 경기 평택시의 한 환전소에서 손님으로 가장한 타지키스탄 국적의 2인조 강도가 들이닥쳐 현금 1000만원을 강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은 환전하는 것처럼 가장해 60대 여성 직원이 금고를 열자 모형 총기로 위협해 돈을 빼앗은 뒤 준비한 차를 타고 도주했다.
이들 중 한 명은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지만, 다른 한 명은 해외로 빠져나가 경찰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를 통해 수배를 내렸다.
◆나 홀로 운영 개인 환전소 취약 = 경찰 안팎에서는 최근 발생한 환전소 대상 범죄가 규모나 직원이 적고 방범이 취약한 영세한 개인 환전소를 상대로 한 외국인 범죄들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환전소는 관할 세관에 등록하면 운영이 가능한데, 시설 측면에서는 환전 업무를 하는 데에 필요한 '영업장'과 '전산설비'를 갖추면 된다. 사실상 영업장소와 컴퓨터만 갖추고 세관에 등록하면 누구나 환전소 운영이 가능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인 혼자 근무하거나 보안시설이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운영하는 업체들이 있어 범죄 가능성이 상존한다.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 풍토병화)에 접어들면서 외국인 관광객 회복 등에 힘입어 개인 환전소는 늘어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세청에 따르면 현재 전국 환전소는 1469곳(숙박업소·법인·개인 환전소 등 모두 포함)으로 서울(669곳), 경기(271곳), 제주(120곳), 부산(104곳) 등에 약 80%가 소재해 있다. 이들 중 개인 환전소는 650여곳에 달한다.
환전소 대상 외국인 범죄 증가에는 수사기법 발달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등이 어려워지자 현금이 보관된 환전소가 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기관은 보안이 철저하고, 편의점 등 일반 상점들은 신용카드를 통해 대부분 거래가 이뤄지다보니 보관하고 있는 현금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경찰 순찰로는 한계 = 연이은 범죄에 경찰은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추석 특별방범 대상에 포함해 경찰관(범죄예방진단팀)이 취약요소 진단과 순찰을 강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경찰 안팎에서는 업주들에게 방범시설 설치·확충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전소는 등록업종이라 운영에 필요한 최소 요건만 규정하고 있어 CCTV나 방범창 등 방범 시스템 설치의 경우 업주 판단에 달려있다.
특히 절차가 까다로운 금융기관에 비해 본국 송금 등이 편리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실상 은행 역할을 하다 보니 범인들이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점도 범행이 잇따르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학과 교수는 "보안시스템에 대한 규정이 없는데다 개인 환전소의 경우 투자 여력이 없는 영세업체가 많다"면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안전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환전업이 발달해 관련 규정이 촘촘히 마련돼 있다"며 "환전업이 규제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전만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