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시행 2년 유예

2023-09-22 11:48:03 게재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

9월 6일 한 건축 공사장에서 건물 외벽 페인트작업을 하던 작업자가 20m 아래 지면으로 추락 사망했다. 옥상에 매어 놓은 밧줄 매듭이 풀려 일어난 사고다.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작업대용 밧줄과 별도의 구명줄을 설치해 작업자의 안전밸트를 체결하도록 돼있다.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위험한 작업 상황임에도 기본적인 안전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후진적인 중대재해들로 인해 우리나라의 사망재해 발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 유예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2년 유예해야 할 사유일까

2021년 법 제정 시에 중소기업들의 여건을 고려해 근로자수 50인 미만의 사업장(건설현장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은 2년의 유예기간을 포함해서 이미 3년의 준비기간이 부여됐다.

거기에 2년을 추가 유예한다는 것이다. 발의 사유로 "안전 및 보건관리 전문인력 확보의 어려움" "범법자 양산과 기업도산 등으로 사회적 혼란은 물론 국가경쟁력 상실"과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중소기업협회의 의견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겠으나 그 중 가장 중요하다고 내세운 이유들 일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고사망자의 80% 이상이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발생되는 점을 생각하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기업내 산업안전 전문인력이라 함은 통상 산업안전보건법령에 선임 의무를 정한 유자격 안전관리자를 의미하는데 해당 기업군은 선임 의무 자체가 없다.

또 자문이 필요한 경우,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정부승인 안전보건 진단기관, 지도사 등 안전보건 관련 자문을 제공할 수 있는 시장이 상당한 규모로 형성돼있다. 이는 중소기업의 비용 문제를 고려해 직접 고용이 아닌, 적은 비용의 자문을 위해 마련된 제도다.

또 일부 대기업의 경우는 법에서 정한 수보다 훨씬 많은, 수십배의 전문인력을 고용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이런 사유를 얘기하기 전에 국가 수준에서 전문인력의 수요, 전문인력의 양과 분포, 규제의 합리성 등에 관한 검토가 선행됐는지 궁금하다.

범법자 양산과 기업도산은 본말이 전도된 얘기로 들린다. 중대재해법은 범법이나 기업도산을 조장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 아니다. 법 자체가 문제라면 유예가 아니라 폐지 또는 개정을 검토할 사안으로 생각한다. 필자 역시 처벌 대상은 개인 보다 법인으로 하는 개정에 동의한다.

국가통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연간 수십만개의 중소기업이 창·폐업된다. 앞의 추락 사고처럼 기본적인 안전조치조차 외면해서 중대재해를 야기한 기업의 도산이 우리 사회의 안정과 국가경쟁력에 해일까, 득일까.

중소기업협회가 회원사 입장에서 의견을 내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법의 요구내용이 기업의 규모와 특성을 고려한 안전보건관리 체계의 구축과 이행이다. 생산시설과 같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조치가 아닌 기업의 특성이 고려된 안전 규정과 수칙 등을 마련해서 현장 작업에 반영하는 조치다. 이는 법이 아니어도 근로자를 고용하는 고용주의 당연한 의무다.

이런 조치 때문에 3년의 준비기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하다는 얘기는 사회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사유는 없다. 그저 부담스럽다는 얘기가 아닐까.

사회의 안정과 국가경쟁력을 위해 경영자들의 막연한 불안감은 해소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시행 유예가 아닌, 법과 정책 집행의 합리화로 해결할 일이다.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이 열악하니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은 개발도상국 시절의 감각이다. 현대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근로자의 안전을 우선할 수 없다면 고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유효할 법

2021년 국가통계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고사망율은 그 이상 규모의 사업장에 비해 약 3배 높다.

요즘 대기업들 거의가 직관적으로 감지되는 위험을 소홀히 하진 않는다. 대기업 현장의 중대재해 대다수가 사전 점검, 평가 등으로 예방하기 어려운 시스템적 사고인 것과는 달리 중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사전에 직관적으로 감지되는 위험들이 방치되고 있고, 이런 사고가 과반수를 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중대재해 감축을 위해 정부는 규제와 정책, 지원을 중소기업에 집중하고 경영자는 이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할 때다.

이 법의 유예가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이행되지 않아 피해를 입게 될 미래의 근로자 앞에 서있는 자신을 상상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