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존중 회복지원

시군구별 자살고위험군 지원 인프라 확충 시급

2023-11-01 00:00:01 게재

유족 원스톱서비스-동료지원활동-자조모임 활성화 박차 … "당사자 참여, 유족 일상회복에 큰 도움"

2021년 한해 1만3352명이 사망했다. 그로 인해 유가족들은 가족을 갑작스레 떠나보낸 트라우마 등 심리정서적 충격으로 고통스런 세월을 보낸다. 더욱이 자살시도자나 유족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보다 8∼30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유가족의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초기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빠른 일상회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체계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자살유족 원스톱서비스 지원사업, 동료지원활동가사업, 자조모임 활성화 등으로 유족지원을 도모한다. 하지만 아직 전국 시군구 곳곳에 지원체계가 온전히 갖춰져 있지 않은 곳들이 많고 유족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활동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관련해서 유족 당사자들과 활동가, 전문가들에게 문제 해결 방안을 들었다.

의정부시 자살예방센터 유족자조모임 '누리보듬' 참여 유족들이 힐링캠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의정부시 자살예방센터 제공


#. 아들을 떠나보낸 김 모씨(가명)는 처음에 모임에 참여하라는 사례관리자의 권유에 굳이 마음 아픈 이야기를 모여서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다. 여러 가지로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아왔던 터라 내키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모임에 나간 어느날 '저 사람은 남편이니까 그렇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어떻게 알겠어. 나랑은 다를 거야'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모임이 진행될수록 사람들 이야기가 자신과 똑같은 것을 깨달았다. 가족이 나오는 드라마를 못 보거나 길가다가 아들하고 비슷한 사람이 지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억지로 말하려고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심정들이 이해가 됐다.

의정부시 자살예방센터 자살유족자조모임 '누리보듬'에 참여하고 있는 한 유족의 경험담이다. 10월 30일 김씨는 "나중에 아들을 만나면 엄마가 잘 살아가려고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 하루하루 잘 지내려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높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자살예방센터와 지역사회 공동체 등이 각자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지역단위 자살예방인프라 등이 활성화되지 않은 지역이 많고 자살예방력이 높지 않은 편이다.

하솔잎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 부연구위원은 보건복지포럼 10월호에 실린 '자살예방전달체계 현황과 과제'보고서에서 "지자체의 책무성과 권한강화, 관계기관 및 조직의 역할 정립, 지역 자살예방 인프라 확충을 우선과제"로 제안하면서 "대상자 중심의 협력체계를 다져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1일 서지혜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부장은 "유족지원을 강화해 동료지원활동이나 자조모임 등 유족당사자의 참여를 늘리면 기관 실무자 위주의 사업 한계를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직후 유족에 원스톱 지원 전국화 서둘러야 = 가족 사망 직후 유족을 지원해 가족 상실로 인한 슬픔을 건강하게 애도할 수 있도록 돕고 이후의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자살 유족 원스톱서비스사업이 있다. 자살예방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 원스톱서비스팀이 자살사망사건 직후 경찰 소방 등을 통해 유족에게 응급 개입한다.

심리지원과 법률 행정처리, 일시주거, 사후 행정처리, 특수청소, 학자금 등 환경·경제 지원 등을 원스톱으로 제공한다.

서 부장에 따르면 이 사업은 2019년 시범사업(3개 시도 13개 시군구)를 시작으로 2022년 확대되어 현재까지 9개 시도(서울 인천 강원 광주 대구 충남 충북 세종 제주)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외 8개 시도 유족의 경우 자살예방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 및 애도 상담의 도움을 받을 순 있으나 사별 초기 경제·환경영역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에 따라 '자살유족 원스톱 서비스'를 전국으로 신속히 확대 운영할 필요가 있다.

◆같은 경험한 동료 활동, 생명지킴이 역할 커 = 동료지원활동가 양성도 자살예방 대책 중 주요한 사업이다. 현재 단계적으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유족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 영역을 확대하고 같은 경험을 한 유족을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서 부장에 따르면 미국 배턴루지위기개입센터에서는 유족을 지원하는 로스(loss)팀은 전문가와 유족이 함께 유족을 지원하기 위해 한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탭스(TAPS)에서도 유족지원팀에 동료전문가가 함께 봉사와 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경우 동료지원을 위한 유족의 참여수가 증가하고 실무자의 지원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될 것이다.

장준하 동료지원활동가는 "동료 지원 활동가를 통해서 자조모임이 계속 유지가 되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자살 혹은 우울에 대한 신호들을 보내는 경우가 있고 신호들을 민감하게 발견할 수 있는, 발견된 사람들을 전문기관에 연계해 줄 수 있는 생명지킴이가 필요한데 유족 당사자들이 그런 활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동료지원활동가가 더 많아져야 되고 자살유족에 대한 지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은 유가족들이 동료지원활동가로 활동할 가능성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장 동료지원활동가는 동생을 떠나보낸 후 세미나 등을 통해 '유족이 지원받는 대상자로 머물러 있을 게 아니라 당사자로 목소리를 내고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고 결국 동료지원활동가 일을 하게 됐다. 그는 유족자조모임인 '그루터기' '설연화' '희망샘' 리더로 활동하며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임상심리사로 일하고 있다.

◆유족에게 위로가 되는 주변의 노력 필요 =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따르면 자조모임의 경우 2018년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자조모임이 약 35개소였으나 2023년 현재는 약 140여개로 활성화 되어 운영 중이다. 지역에 편중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편차없이 자조모임이 운영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고인과의 관계별(부모 자녀 형제), 아동·청소년 등 연령별 다양화된 자조모임 운영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강화 계획을 추진한다.

의정부시 자살예방센터에는 자살유족자조모임 '누리보듬'이 운영 중이다. 담당자인 임희연 정신건강간호사에 따르면 누리보듬은 2019년 9월 자살유족 교육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2020년 자살유족 자조모임으로 전환했고 2021년부터 기존 유족과 신규 유족 교육프로그램을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기존 유족을 위한 국립횡성숲체원 힐링캠프도 진행하고 유족안내서, 유족 위로엽서, 경찰서 방문유족 위로키트 제작 배포 등도 했다.

임 간호사는 자살유족 자조모임 활성화를 위해 △유족에게 유족의 삶을 강요하지 않는 모임의 운영 △자살유족 인식개선을 강조했다.

고인을 애도하는 삶, 고인의 사망을 재조명 하는 자조모임이 아닌, 유족이 매 순간 경험하는 것들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하다. 자살유족이 자신이 유족임을 밝히고 지역사회 서비스에 접근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자살유족에 대한 편견, 또 애도과정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인해 유족들이 외부에 드러나는 것을 주저하는 경우도 많다.

관련해서 2019년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자살유족에게 '상처가 되는 말' '위로가 되는 말'을 조사해 발표했다.

자살유족에게 위로가 되는 말은 △힘들면 실컷 울어도 돼 △고인도 네가 잘 지내기를 바랄거야 △무슨 말을 한 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많이 힘들었겠다 △네 잘못이 아니야 등이다. 자살유족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고인에 대한 험담(불효자다, 나약하게 자랐나 보네 등) △이제 그만 잊어라 △너는 고인이 그렇게 될 때까지 뭐했어? △왜 그랬데? △이제 괜찮을 때도 됐잖아 등이다. 임 간호사는 "유족에게 상처가 되는 말 대신 위로가 되는 말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조모임 참여자 김씨는 "올해 센터에서 처음으로 모임사람들이랑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 공기 좋고 시설 좋은데서 산책도 하고 명상도 하고 밤에는 레크레이션도 하고 추억이 생겼다.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역자살예방 컨트롤타워 세워야 = 하 보사연 부연구위원은 자살예방 전달체계 주요 쟁점으로 우선 지역사회와 주민을 자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리더십(컨트롤타워) 필요성을 제기했다.

지방자치단체에는 행정 권한과 책무를 가진 담당 공무원이 부재하거나 자주 교체된다. 지자체장의 관심과 역량에 따라 자살예방사업의 여건이 결정되는 구조다. 실제 서비스를 맡고 있는 자살예방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의 담당 인력은 행정권한이 제한적이여서 자원 연계 업무에 한계가 있다. 경찰 소방 등 유관 기관들과 관계에서도 책무 범위가 모호해 서비스가 단절되거나 대상자가 방치되곤 한다.

대상자 중심 통합적서비스 제공 체계를 위해서도 컨트롤타워 역할이 필수적이다. 지역사회 내에서 '단기간'의 '가용한' 서비스의 '횡적인' 연결뿐 아니라 '책무성'을 가진 케어매니저먼트가 대상자 중심의 서비스를 단절없이 조정 연결하고 성과를 지속 추적 관찰하는 사례관리체계의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살예방을 위한 공적 투자가 필수적이다. 현재 시군구의 자살예방사업 80% 이상은 정신건강복지센터 내 자살예방팀으로 운영된다. 응급출동이나 위기상황 등 위험 노출이 높은 업무 강도가 요구되는 수준에 비해 낮은 인건비 등으로 인력확보가 어렵다.

하 부연구위원은 "각 쟁점에 대한 개별적인 개입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함께 추진할 때 의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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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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