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활용·정주화
"한국경제 지탱해 온 미등록체류자 양성화해야"
외국인노동자 단기순환에서 정주화로 전환해야 … '이민청', 법무부 출입국보다 행안부에서 맡는게 바람직
"외국인이 없으면 공장과 식당 문 닫고 건설현장 멈추고 농사망친다." 산업현장은 인력난으로 아우성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수)이 0.78을 기록하며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는 그 해법으로 외국인력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의 외국인력제도는 1993년 산업연수행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산업연수생은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아 임금체불이나 산업재해를 당해도 법적 구제나 보상을 받지 못했다. 미등록체류자(불법체류자) 발생, 과다한 송출비용, 민간 대행기관의 관리부실과 비리 등으로 철폐(고용허가제와 병행 2007년 폐기)되고 2004년 고용허가제(비숙련인력, E-9 비자)로 바뀌었다.
내년이면 고용허가제 시행 20년째다. 그동안 종합적·전략적인 접근이 아니라 외국인력 확대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고용부도 또다른 20년을 준비하는 고용허가제를 획기적으로 개편할 태세다.
김은철 고용부 국제협력관은 "면밀한 인력수급 현황 및 전망 분석에 기초해 다양한 현장수요에 부합할 수 있도록 고용허가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에서 '외국인력 활용에 따른 상생과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 포럼을 열었다. 이주노동자와 상생하며 인구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고용허가제는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현행 제도에서 E-9 비자의 체류 기간은 최대 4년 10개월이다. 사업장 변경이 없는 등 요건을 충족하면 출국 후 재입국해 추가로 4년 10개월을 재고용할 수 있어 최대 9년 8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는 정주를 허용하지 않는 단기순환(최초 3년), 내국인 노동시장(일자리)를 침해하지 않는 3D(힘들고 Difficult, 더럽고 Dirty, 위험한 Dangerous)업종으로 제한함으로써 저임금의 비숙련 노동을 고착시켰다. 이에 더해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불허(임금체불, 휴·폐업, 부당한 노동행위 등 이주노동자의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함으로써 강제노동이란 지적을 받는다. 또 사업장 이동 신청 및 구직활동 기간 초과 등 과도한 행정적 절차로 이주노동자는 체류자격을 상실하거나 일할 사업장마저 잃게 된다.
이러한 문제로 내년이면 20년을 맞이하는 고용허가제의 비숙련·단기순환 원칙은 사실상 임계점에 도달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장기근속 이주노동자(E-9)와 송출국에서 준숙련 인력요건을 갖춘 사람을 우대해 체류기간을 최대 '10년+α'까지 늘리기로 했다. 산업구조 변화로 늘어난 숙련인력 수요에 대응하고, 초저출생·고령화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이주노동자들로 일부 메운다는 취지다.
또 사업장별 이주노동자 고용한도를 2배로 늘리고 올해 고용허가제 외국인력 도입 규모(쿼터)를 12만명까지 늘렸다. 지난해(5만9000)보다 2배 이상이다. 내년부터는 12만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법무부도 가세했다. 지난해 4월부터 조선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일반기능인력(E-7-3) 비자로 외국인력의 입국을 확대했다. 올해 하반기까지 전체 도입규모를 3만5000명으로 늘렸다. 문재인정부 말기 1000명보다 35배나 많다.
E-7-3 비자는 국내에 기한 없이 정주하고 자국의 가족을 초청할 수 있고 영주권 취득할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고용허가제의 E-9 비자로는 10년 이상 장기체류하더라도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고 가족초청도 못한다.
또한 고용부는 지난 7월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수도권으로 인력 이동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인구소멸 지역 대응방안으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권역별 단위'에서만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영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장은 발제에서 "외국인력을 비숙련 '기간제 비정규직'에 근거해 체류기간 확대에만 치중해 '덧씌우기' 정책으로 '누더기'가 됐다"면서 "외국인력 정책이 비숙련제도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산업현장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고 표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미등록체류자 41만명으로 증가추세 =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19년 252만4600명으로 최대치를 보였다. 코로나 시기인 2020년에는 203만6000명으로 50만명이 감소했다. 하지만 미등록체류자는 39만2200명으로 전년과 비슷했다. 코로나가 미등록 체류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지난해 미등록체류자는 41만1200명으로 더 늘었다.
또한 단기체류 외국인의 미등록체류자는 2019년 29만3100명에서 2022년 26만9500명으로 감소 추세이지만 등록외국인의 미등록체류자는 9만5800명에서 13만8000명으로 증가 추세다.
고용허가제 비숙련취업(E-9)과 선원취업(E-10)에서도 1만명 이상 미등록체류자가 발생하고 있다. 매년 신규 도입 규모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이 영 센터장은 "등록외국인이 미등록 체류한 것은 취업상태에 있으며 최소한 숙련도와 생활 적응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인다"면서 "새로운 인력이 공급되지 않는 코로나 시기에 미등록체류자가 한국 산업현장을 지탱하는 데 한몫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장에서도 최대 체류기간이 4년 10개월(현행)인 고용허가제 인력보다 5~10년 이상 국내에 장기 거주해 한국어가 능숙하고 기술도 쌓인 미등록체류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면서 "외국인력의 공급과 수요에만 치중하는 정책이 아니라 원활한 선순환 체계와 관리·감독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물리적 수단인 단속과 강제추방으로 미등록체류자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월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미등록 단속 2만427명, 자진 출국 1만8157명으로 역대 가장 많은 단속 실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8월말 미등록체류자는 42만9114명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해 무색해졌다.
이 영 센터장은 "미등록체류자를 제도권에 수용하는 양성화 조치와 비숙련에서 숙련으로, 단기순환에서 정주화 이민으로 확대해 숙련기능인력 재배치로 인력손실을 최소화 하고 노동생산성도 높여 한국의 기업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 시행 20년, 획기적인 개편 필요 = 영세사업장들이 고용허가제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고용부의 고용허가제 사업장을 규모별 보면 10인 미만 사업장이 33.0%, 11~30인 사업장이 37.6%로 영세사업장이 70.6%를 차지한다.
이 영 센터장은 "이는 결국 산업구조 조정을 지연시키면서 산업발전을 저해하고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서 "내국인의 일자리와 임금상승에도 악영향을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환경 개선을 하는 사업장에 우선 외국인력을 배치하거나 외국인력에 의존하지 않도록 일몰제(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기간 설정)를 둬 구조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발제에서 산업구조 및 기술혁신 요소 등을 고려한 노동시장에 대응해 3~5년 단위로 갱신하는 외국인력을 유치·활용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우수한 인적자원의 정주화를 유도하는 두가지 방향으로 접근을 제안했다.
이 본부장은 "외국인력정책, 이민정책, 출입국정책 등 정부 부처간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희생 감수" 논리 용납 안돼 = 이민청(가칭) 설치 등 통합적 외국인력 관리 필요성도 제기됐다. 지난해 5월 한동훈 장관은 취임사에서 '이민청' 설립을 공론화했다.
외국인 관련 특별법에는 외국인고용법, 외국인처우기본법, 다문화가족지원법 등이 있다. 이들 법률에 따라 부처별 이주민 지원체계의 파편화 및 사업의 중복성, 예산 낭비, 칸막이 행정으로 사회통합의 부작용이 초래된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이러한 문제인식에 이주민의 종합적인 통합기구가 마련에 대한 공감대가 높다.
법무부는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승격해 이민청으로 가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출입국 관리업무를 담당한 기관으로, 체류 외국인의 실질적인 체류지원 사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체류 비자에 따른 '통제와 관리'가 더 강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고기복 모두를위한이주인권문화센터장은 토론에서 "이민청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보다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 행정안전부가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정주를 전제로 하지 않는 외국인력 정책이라며 고용부가, 정주와 이민을 전제로 한 정책이라면 주민복지센터 등의 지원활동이 가능한 행안부가 맡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미선 희망의친구들 상임이사는 "올해부터 시행돼야 할 '제4차 외국인정책기본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정부의 유래없는 외국인력 도입규모 확대와 동시에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폐지는 모두를 경악케하고 있다"면서 "더 이상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주노동자의 희생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용인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