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수도권 승부수는 '자객 투입' … '어게인 1996' 가능할까
신한국당, 1996년에 유명 앵커·검사·재야인사 공천해 '성공'
국민의힘, 원희룡 김경율 방문규 이수정 등 수도권 승부처로
1996년 등돌린 이회창 '포용' … 2024년 유승민·이준석 '거리'
◆인재영입으로 총선 뒤집어 =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17일 서울시당 신년인사회 무대 위에서 김경율 비대위원의 손을 들어올리며 마포을 출마 소식을 알렸다. 마포을은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3선을 한 곳이다. 한 위원장은 "'이번에도 어차피 정청래가 될 거다' 자조 섞인 말을 하는 분이 많다. 어쩔 수 없지 않다. 김경율 위원이 정청래와 붙겠다고 나섰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전날 인천시당 신년회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이 출마한다며 원 전 장관을 무대 위로 불러냈다.
민주당이 독식하고 있는 수원에는 방문규 전 산업부장관과 김현준 전 국세청장, 이수정 경기대 교수를 내세웠다.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의 수원 투입설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어떻게든 과반을 넘겨야 한다. 2020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수도권 121곳 가운데 16석을 얻는데 그치면서 참패를 기록했다. 4월 총선에서도 수도권에서 밀리면 과반 확보는 물론 제1당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 위원장은 수도권 승부처마다 '자객'을 투입한다는 구상을 하는 것으로 읽힌다. '자객'은 대부분 총선을 앞두고 영입하는 '새 얼굴'이다.
한 위원장의 수도권 전략은 1996년 신한국당 전략과 '닮은 꼴'이다.
김영삼정권 4년차에 총선을 맞은 신한국당에는 비관론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특단의 대책으로 마련한 게 수도권 맞춤형 인재를 대거 영입해 투입한다는 전략이었다. 유명세를 타고 있던 앵커(박성범 맹형규 이윤성), 검사(홍준표 안상수), 학원강사(서한샘), 재야인사(이재오 이우재 김문수)를 영입했다. 신한국당이 수도권에 보낸 '자객'은 대부분 생환했다. 신한국당은 당초 우려를 극복하고 139석으로 제1당을 차지했다.
◆"공정공천 흔드는 행위" = 한 위원장의 '수도권 자객 전략'이 '어게인 1996'를 해낼 수 있을까. 2024년과 1996년 사이에는 두 대목에서 차이가 있다는 게 변수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패색이 짙어지자, 자신이 내쫓았던 이회창 전 총리를 선대위원장으로 끌어안았다. 김 대통령은 1994년 이 전 총리를 총리에 발탁했지만, 자신의 법적권한을 강조하는 이 전 총리와 사사건건 충돌하다가 결국 내쳤다. 이 전 총리는 "허수아비 총리는 안한다"며 사퇴했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이 전 총리를 전국구 1번 공천과 함께 선대위원장직을 선사하면서까지 모셔온 것이다. 김 대통령이 대중적 지지세를 업은 이 전 총리를 포용하면서 여권 지지층을 넓힌 것으로 해석됐다.
윤 대통령은 '위기의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윤석열 아바타'라고 비판하는 한동훈 전 법무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발탁했다. 자신과 틀어진 유승민 전 의원이나 이준석 전 대표는 포용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기조를 고집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법'도 거부했다. 윤 대통령은 여권 지지층을 스스로 좁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1996년 여권은 맞춤형 인재를 선별해 공천을 준 뒤 조직·자금 등 전폭적 지원을 해주는 '원스톱 서비스 시스템'을 가동했다. 당 외곽조직인 광화문팀이 치밀한 여론조사를 통해 지역구에 알맞는 인재를 골라냈고, 당과 협조 아래 공천장을 안겼다. 공천을 준 뒤에는 정치초보인 영입인재에게 필요한 조직과 자금을 밀어줬다. 광화문팀에서 활동했던 여권인사는 "당시만해도 권력핵심부 뜻에 따라 인재를 찾고 공천을 주고 자금을 밀어주는 원스톱 시스템이 가능했고, 그게 총선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은 표면적으로는 '시스템 공천'을 내세우고 있다. '윤심'(윤석열 마음) '한심'(한동훈 마음) 공천은 없다는 얘기다. 한 위원장이 김경율·원희룡을 무대 위로 올리자, 해당 지역구에서는 반발이 쏟아졌다. 지역구에서 출마를 준비해온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공정공천을 흔드는 행위"라며 비판하고 있다. 수원에서 출마를 준비 중이던 김용남 전 의원은 탈당해 개혁신당으로 갈아탔다.
여권에서는 '수도권 자객 전략'이 누적된 '야당 심판론'과 맞물리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친다. 민주당이 수도권 공천 과정에서 '고인 물'을 바꿔내지 못하면 '자객'의 생존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