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사업은 부실·불법·비리 종합세트

2012-09-10 11:36:20 게재

군 비밀주의 장막에 부패 가려져 … "대통령 속인 대형비리사건"

장사정포 갱도진지 파괴용 탄도탄을 개발하는 번개사업(012사업)은 부실과 절차상의 불법, 비리가 얼룩진 채 실패로 막을 내렸다. 비밀주의의 장막에 숨어서 추진되는 무기체계사업이 얼마나 부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으로 끝을 맺었다.

정부 관계자는 "한 특정인의 임기 연장을 위해 사업이 추진됐으나 모든 것이 비밀이라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검증할 수 없었다"며 "정권이 바뀌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추진했는지와 그 배후에 얽힌 먹이사슬에 대해 반드시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번개사업은 전술지대지 미사일인 에이태킴스의 발사대로 100km 사거리의 단거리 탄도탄을 발사하는 개념이다. 미국은 갱도진지를 침투해 파괴하는 '벙커버스터 탄도탄'인 에이태킴스 블록3를 CEP(원형공산오차) 5~10m의 정확도를 갖게 개발하다가 현재 중단됐다.

◆감사원 부실·졸속 확인 = 감사원은 번개사업에 대해 지난해 5~6월 감사를 실시, 북 GPS 교란을 회피하는 지상기반항법체계(GBNS) 사업이 부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과 함께 현무 미사일 등에 사용되고 있는 상용 GPS수신기를 군용으로 바꾸라고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권고했다.

감사원은 GBNS사업에 대해 핵심기술 개발에만 2010년 5월부터 36개월이 소요되고 있음에 비춰볼 때 내년 6월까지 18개월만에 핵심기술을 포함해 체계까지 개발을 추진하는 일정은 무리라는 지적을 했다. 단기간에 개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개발업체의 한 간부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우리도 개발 성공 확률이 낮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번개사업을 주관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일방적으로 강행했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특히 최초 개발목표가 3m 이내의 정밀한 순항미사일급의 CEP(원형공산오차)로 설정한 것으로 확인돼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미국도 에이태킴스 블록3 미사일을 그보다 정밀도가 훨씬 낮은 5~10m를 목표로 개발을 시도했지만 현재 개발이 중단됐다.

게다가 순항미사일급 정확도를 목표로 하면서 GPS수신기는 상용을 고집하고 있어 의아스럽게 하고 있다. 감사원은 "군용이 상용보다 교란장비 출력 기준으로 10배 이상 우수하며, 항교란장치를 부착하고 있어 실제로는 수백배 이상 우수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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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백 의원 "절차상 불법" = 국회 국방위 소속 안규백(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 이어 올해에도 이명박 정부가 정권 말기 홍보를 위해 전력증강사업을 이용하고 있다며 번개사업은 절차상 불법이기 때문에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안 의원은 지난 7월 25일 국회 국방위에서 "북 장사정포 대비 현무탄도탄 사업은 단거리(100km)에 해당하기 때문에 중장거리 사업에만 적용되는 '대외비 사업관리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지상기반항법체계 사업과 현무탄도탄 사업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오는 11일 방위사업추진위 의결을 거쳐 전략적 비밀사업로 분류된 번개사업을 일반사업으로 전환해 공개할 예정이다. 올해 개발해 대통령 참석 시연행사를 개최하겠다는 당초 일정은 3년 늘어났고, 탄도탄의 정확도는 2배 완화됐다.

방사청 관계자는 이같은 전환에 대해 "법적 절차에 따라 선행연구부터 차근차근 밟아야 할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애초부터 잘못 설계된 사업일정을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국정원과 기무사는 이같이 불법적으로 추진된 번개사업에 대해 내일신문의 보도를 막기 위해 지난해 두차례에 걸쳐 수개월간의 강도높은 보안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를 유출하지 않은 감사원의 과장을 징계하는 어이없는 일을 저절렀다.

◆비리 커넥션 수사해야 = 번개사업을 아는 사람은 대부분 차기 정부에서 반드시 사업추진의 전말을 수사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무기도입사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이명박 대통령을 속인 대형비리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 관계자는 먼저 한 국가기관장의 연임로비사건으로 진단했다. 임기가 끝나가는 국가기관장이 청와대에 북 장사정포 대응 번개사업을 제안, 임기 연장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임기 마지막해인 올해 6·25 시연행사의 일정을 잡아 이 대통령을 현혹한 것으로 보인다.

또 번개사업 관련 참여업체와 ADD의 커넥션도 주목되고 있다. 한 참여업체는 ADD를 수백회 이상 방문한 것으로 감사원이 밝혀낸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학계-ADD의 삼각커넥션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다.

■ 번개사업(012사업)이란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도발 직후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북 장사정포와 해안포, GPS 교란에 대응하기 위한 극비사업이 착수됐다. 세달도 안되는 기간에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서명을 거쳐 개발업체를 선정할 정도로 초고속으로 졸속 추진됐다.

번개사업의 공식적 사업명칭은 012사업이다. 이 가운데 'L(번개)1사업'은 에이태킴스 다련장로켓 발사대를 이용해 탄도탄미사일로 북 장사정포의 갱도진지를 타격하는 '벙커버스터탄' 개념으로 추진됐다.

감사원의 감사대상이 됐던 'GBNS(지상기반항법체계) 사업'은 지상에 전파항법신호 송신기를 배치, 독자전파항법으로 탄도탄미사일을 유도해 북 GPS 교란에 대응하는 체계다.
홍장기 기자 hjk30@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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