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협, 비정상의 정상화 추진
금융에 치우친 사업, 농산물판매 중심으로
저금리시대 금융사업 전망도 불확실 … 서울에서 시작 대도시로 확산
서울을 포함한 전국 7대 도시에 있는 농협들이 신용사업 일변도 사업에서 벗어나 농산물 판매사업으로 중심축을 옮기고 있다.
생산자협동조합으로서 농산물판매를 외면할 수 없다는 인식과 함께, 저금리시대에 예대마진에 의존한 금융사업으로는 더 이상 농협경영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환경변화도 배경이 됐다.
도시농협들이 신용사업에서 판매사업으로 중심축을 옮기는 데서 더 나아가 소비자들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근본적 변화를 추진할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박준식(오른쪽에서 두 번째) 서울 관악농협 조합장과 최원병(세 번째) 농협중앙회장 등이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농산물판매 특화매장 신본점을 둘러보고 있다. 이곳은 금융점포 면적을 237.6㎡에서 122.1㎡로 줄이고 농산물판매장 면적은 16.5㎡에서 132㎡로 늘려 만들었다. 사진 관악농협 제공>
◆서울 관악농협, 판매중심 농협 선포 = 지난 17일 서울 경서농협(조합장 이태세)은 구로구에 있는 개봉역점을 특화매장으로 재구성했다. 특화매장은 금융점포 중심의 공간에 농산물 판매장을 확대한 것이다.
서울같은 대도시는 농산물 판매장을 갖추려 해도 땅값이 비싸 투자비를 마련하기 어려운데 특화매장은 같은 점포면적에서 금융점포 면적을 줄이고 농산물 판매장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판매장을 확보한다.
금융점포를 농산물 전용 특화매장으로 개편하는 작업은 서울 관악농협(조합장 박준식)이 주도하고 있다. 관악농협은 2012년 10월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문성지점을 리모델링해 농산물판매장을 확대, 특화매장 개념을 선보이며 바람을 일으켰다.
1000만원을 투자해 양곡류와 가공·특산물을 판매하던 간이매장을 20평 규모의 농산물 특화매장으로 바꾼 후 하루 10만~20만원의 매출액은 100만원으로 늘었다. 생필품이나 잡화는 판매하지 않아 지역의 소상인들과 갈등원인도 제거했다.
관악농협은 지난해까지 하나로마트 3개 외 특화매장만 5개로 늘렸다. 경제사업 규모도 2012년 672억4000만원에서 2013년 726억1000만원으로 8% 커졌다.
금융점포 면적을 줄여 판매장을 확보하는 식으로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경제사업 이익도 같은 기간 125억1000만원에서 132억1000만원으로 6% 늘었다. 관악농협은 하나로마트와 특화매장 등 지역밀착형 농산물판매장을 2017년까지 20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박 조합장은 지난달 24일 창립 40주년을 맞아 "대도시에 있는 농협은 금융사업에 치우친 비정상적 농협이라는 인식이 많았다"며 "우리 도시농협들도 신용사업위주에서 경제사업위주로 빨리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악농협이 주도한 도시농협의 변화를 농촌농협은 적극 지지하고 있다. 김동호 제주 한경농협 조합장은 "우리는 도시농협들이 농산물 판매사업을 확대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구형 충남 태안농협 조합장도 "시골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서울 인천 경기 등 대도시지역이 아니면 팔 곳이 없다"고 덧붙였다.
도시농협의 변신은 서울을 벗어나 다른 대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부산에 있는 북부산농협(조합장 이승걸)은 오는 3월 북구 화명동에 있는 화명지점 금융점포 143.4㎡(43.4평) 중 28평을 농산물 판매장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또 금곡지점의 금융점포 320.3㎡(96.9평) 중 20평도 농산물 판매장으로 바꾸기로 했다. 위치는 모두 유동인구가 많은 1층이다.
이승걸 조합장은 "도시농협의 가장 큰 수입은 예금받은 돈을 대출해서 얻는 수익이었지만 저금리와 부동산시장 침체 등으로 금융사업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게 됐다"며 "도시농협이 농산물 판매농협으로 전환하는 것은 농협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종길 농협중앙회 부산지역본부장은 "부산지역의 14개 도시농협 중 금정농협, 해운대농협, 부산축협 등은 지난해부터 올 1월까지 금융점포를 개조해 농산물 판매장을 확대했다"며 "서울에서 시작된 바람이 부산에도 번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시농협, 조합원 감소 위기 근본해법 필요 = 도시농협이 판매농협으로 중심축을 이동하는 데서 더 나아가 조합원을 소비자로 확대하는 구조개편을 추진할 것인지도 관심이다. 농협법은 농업인을 조합원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도시농협은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농업인 조합원이 점점 줄어들고 대신 소비자인 준조합원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19개 농협의 평균조합원 수는 2011년 말 조합당 992명이었지만 2013년에는 959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지역 19개 농협의 준조합원은 109만2000명에서 138만6400명으로 26% 늘었다. 준조합원은 농협사업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다.
박 조합장은 "도시농협 조합원 자격을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까지 포괄하는 안을 고민할 때가 됐다"며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도시농협 조합원을 소비자까지 포함하는 이종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 소비자조합원의 숫자가 많아져 농업인 발언권이 약해질 수 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도시농협이 다른 협동조합의 판매사업을 도와주며 협동조합의 맏형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