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풀리지 않은 한(恨),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 한일관계 새로운 뇌관

2014-08-20 00:00:01 게재

대법원 최종판결 나오면 일본기업 '한국내 재산' 강제집행 가능 … 일본 정부·재계 '불만 표출'로 한국 압박

내년이면 한국과 일본이 국교 정상화를 한 지 50년이 된다. 지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국교를 수교한 한일은 지금까지도 영토문제와 역사문제로 인한 긴장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재집권 이후 일본의 우경화 행보로 양국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여기에 역사·영토 이슈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가도 특정 시기마다 부각되면서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일본군 위안부 이슈에 이어 강제징용 문제가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면서 양국의 주요 관심사안이 됐다. 일제 식민지배로 인한 문제들이 여전히 양국간 주요 갈등요인으로 남아있는 것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이 '미완성작'이었기 때문이다.

◆한일, '동상이몽' 협정 체결 = 한일청구권협정을 위해 마주앉은 한일 양국은 애초부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본은 한일병합조약이 적법하고 유효하다는 입장에서 청구권협정 협상을 '전쟁 피해'에 대한 논의를 하는 자리로 인식하고 있었고 한국은 한일병합조약이 불법적이고 무효라는 바탕에서 '식민지배'의 피해를 청산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병합조약이 적법하다는 입장에서는 일제시기 국가권력이 시행한 조치가 모두 합법행위가 되는 반면 병합조약이 불법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일제시기 국가권력에 의해 시행된 법률이나 조치가 모두 불법행위로 판단된다.

양국이 식민지배의 합·불법성에 대한 입장을 하나로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청구권협정을 '봉합'하면서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민지배로 인한 갈등이 미해결 상태로 남았다. 새로운 사료가 발굴되거나 외교문서가 공개될 때마다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 정부가 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피해자 구제에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갈등을 야기시켰다. 당시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상업차관 3억달러 등 총 8억 달러를 받았다. 하지만 1975년에서부터 1977년까지의 보상액은 91억8769만3000원에 불과했다. 이 금액은 일본정부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의 10%도 되지 않는 액수였고 그것도 징용 후 사망한 피해자에 대한 보상에 그쳤다.



◆강제징용에 대한 정부 입장 변화 = 우리 정부는 2004년 한일협정 관련 외교문서를 공개한 뒤 2005년 후속대책 관련 민관합동위원회 결정을 통해 한일청구권협정의 책임 범위 등을 확인했다.

당시 합동위원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정부·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으며 △사할린 동포·원폭피해자 문제도 한일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정리했다.

하지만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대일청구 8개 요강 항목에 이미 포함됐기 때문에 청구권협정을 통해 해결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일본은 청구권협정을 통해 전후 청산 문제가 모두 정리됐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으며 우리 정부는 2005년을 기점으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일부 사안은 미해결인 상태로 남아있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12년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우리 정부는 기존 입장을 유지해나가기 어렵게 됐다. 2012년 5월 대법원은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비롯해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사법부는 위안부 문제와 마찬가지로 강제징용 문제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 판결을 기점으로 외교부는 '강제징용 문제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것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입장표명을 보류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변경했다.

◆법원 판단에 반발하는 일본 정부 =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이후 지난해 7월 서울고등법원과 부산고등법원에서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손해배상 책임 인정 판결이 나오자 일본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해당 기업이 자발적으로 배상을 하려는 태도를 보이자 정부가 이를 막았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같은 내용의 최종 판결이 나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방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위안부 문제 논의를 위해 열리는 한일간 국장급 협의에서도 일본 외교부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꾸준히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열린 3차 협의에서 일본측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재판 문제와 관련해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한국 정부가 정확한 입장을 표명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알려졌다. 이달 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계기로 열린 양국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일본은 강제징용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촉구했다.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일 경제단체들도 이 판결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나섰다. 지난해 11월 일본 경제단체들은 "한반도 출신 구 민간이 징용공 등에 관한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청구권 문제는 앞으로의 대한 투자나 비즈니스 전개를 하는 데 장애가 될 우려가 있고 나아가 일한 양국간의 무역투자관계가 냉각되는 등 양호한 일한경제관계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어 우려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사법부의 판단이 그대로 유지돼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에서 패소하면 해당 기업의 한국내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가압류) 절차를 밟게 된다. 이에 대응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외교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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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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