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투자 열풍이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넘어 산업재, 전력, 금속·광산 기업의 주가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짓고 전력을 공급하는 데 필요한 이른바 ‘삽과 곡괭이’ 기업들이 뜻밖의 수혜주로 떠오른 것이다.
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분석에 따르면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공급망과 연결된 상장사 200여 곳은 지난 1년간 21% 넘게 오른 MSCI 세계지수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지난 5일 금요일 금리 인상 우려로 기술주와 인공지능 관련주가 매도된 흐름까지 반영한 결과다.
대표적인 수혜 기업은 건설장비 업체 캐터필러다. 이 회사는 데이터센터용 발전기를 공급하며 새 성장 동력을 얻고 있다. 150년 역사의 독일 건설·인프라 기업 호흐티프는 이달 말 독일 닥스지수에 편입된다.
철강업체 뉴코어는 인공지능 수요를 “뜨겁게 달아오른” 흐름이라고 표현하며 실적 확대를 예고했다. 포드자동차도 지난 5월 전기차 사업의 초점을 데이터센터용 배터리 저장장치로 옮기겠다고 밝힌 뒤 주가가 약 20% 뛰었다.
수혜는 전력과 통신, 냉각 장비로 번지고 있다. 파이렉스 유리를 발명한 175년 역사의 코닝은 메타와 엔비디아에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용 광섬유 케이블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주가가 1년간 270% 넘게 올랐다. 오하이오주 전력 설비 업체 이튼은 올해 1분기 데이터센터 주문이 240% 증가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전기설비 업체 르그랑은 이번 10년 동안 매출이 두 배로 늘었고, 성장분의 절반은 데이터센터에서 나왔다.
냉방과 액체 냉각 장비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냉방장비 업체 컴포트 시스템스 USA의 주가는 1년간 260% 뛰었다. 슈나이더일렉트릭은 냉각 수요 확대에 대응해, 지난해 데이터센터 액체 냉각 전문업체 모티베어 지분을 8억5000만달러에 사들였다.
전력회사들도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에 올라탔다. 스페인 이베르드롤라는 유럽에서 기술 기업에 전력 계약을 공급하는 대표 기업으로 꼽힌다. 미국 엔터지는 메타와 100억달러 규모 전력 계약을 맺은 뒤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때 사양산업으로 여겨진 가스터빈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스터빈 주문 대기 기간은 수요 증가로 최대 7년에 이른다. 지멘스에너지는 2026년 1분기가 주문 기준 사상 최대였다고 밝혔다. 하우멧 에어로스페이스, 핀란드 바르질라, 베이커휴스도 데이터센터용 엔진과 발전기 수요의 수혜 기업으로 거론된다.
투자 규모도 크다.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오라클은 2026년에만 7000억달러의 자본지출을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데이터센터 건설 월간 지출은 지난 4월 500억달러에 달했다. 부동산 서비스 기업 JLL은 전 세계 데이터센터 용량이 2030년 200기가와트(GW)로 두 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과열 우려도 있다. 컨설팅기업 베인앤드컴퍼니는 현재 데이터센터 투자 추세를 정당화하려면 기술 업계가 해마다 2조달러의 인공지능 매출을 내야 한다고 추산했다.
또한 딥시크 충격 때처럼 투자 축소 우려가 되살아나거나, 미국과 이란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인공지능 관련 산업재 기업도 재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장기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슈나이더일렉트릭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핵심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 지멘스도 데이터센터 사업이 2025년에 40% 성장했다며 인공지능 수요가 단기 순환이 아니라 장기적 구조 변화라고 밝혔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