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을 모의·실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야권 정치인 등 주요 인사 500여명의 체포 계획이 적혀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첩엔 윤석열 대통령의 장기집권 구상도 담겨 있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경고용’이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정적 제거와 장기집권에 있었음을 의심케 하는 것으로 추가적인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14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노 전 사령관 수첩의 세부 내용을 보면 ‘500여명을 수집’하는 방안이 담겼다. ‘여의도 30~50명 수거’, ‘언론쪽 100~200’, ‘민노총’(민주노총),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어용판사’ 등이 1차 수집 대상에 포함됐다.
노 전 사령관은 특히 체포 대상을 A~D까지 알파벳 등급으로 분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A급 체포 대상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전 의원 등 기존에 알려진 ‘정치인 체포조’ 명단뿐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 유시민 작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도 있었다.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국민의힘 대표를 지낸 이준석 의원과 민주당 정청래, 김용민 의원 등도 A급 수거대상에 포함됐다.
사법부 판사도 A급 체포 대상에 올랐다. 노 전 사령관은 ‘좌파 판사 전원’이라는 글자와 함께 ‘유창훈’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유 판사는 지난 2023년 9월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판사로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인물로 추정된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윤석열 정권 퇴진운동본부’에서 활동한 종교계 인사들도 수거 대상으로 적시됐다.
수거 대상엔 ‘대령, 해병대수사단장’도 있었는데 채상병 사망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해병대 대령을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수첩에선 방송인 김어준씨와 김제동씨, 심지어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의 이름도 발견됐다.
‘그룹별로 묶지 말고 섞어서 수집소에 보낸다’, ‘포승줄을 활용’ 등 구체적인 체포방안도 수첩에 담겼다.
노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와 함께 ‘A급 수거 대상 처리 방안’도 적었는데 ‘이송 중 사고’, ‘수용시설 폭파’, ‘외부 침투 후 사살’ 등 살해를 암시하는 표현이 담겼다. ‘NLL 인근에서 북의 공격 유도’, ‘북에서 나포 직전 격침시키는 방안’ 등 북한을 이용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며 ‘계몽령’을 주장했지만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선 계엄 장기화를 염두에 둔 계획이 발견됐다. 계엄 선포 후 10일차까지는 체포 대상자를 수거해 수집소로 이송하고 이후 50일차까지 서울 외 지역에 있는 ‘수집 대상자’에 대한 ‘수거 작전’을 한다는 것이다.
수첩에는 대통령이 3선까지 집권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고 국회의원 수는 절반으로 줄이는 선거제도 개선 방안도 담겨 있었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12월 노 전 사령관을 체포하며 이 수첩을 확보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지난달 10일 노 전 사령관을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지만 수첩과 관련된 내용은 공소장에 담지 않았다. 수첩의 실제 작성자와 작성 시점, 내란 혐의와의 연관성 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검찰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작성했는지, 수첩 내용대로 실행이 된 부분이 있는지 등 수첩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 계속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은 검찰에서 일체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