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3년째를 맞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처벌 위주에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왔다. 예방에 초점을 맞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정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 안전분과장은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대(시민)재해처벌법 개정방향 토론회에서 “(중처법 개정에) 예방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 등이 주최하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 한국방재학회가 주관한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 분과장은 “2018년부터 한 해 사망자 수가 30만명 이상인데 그 중 약 10%인 3만명 정도가 매년 재난·재해·사고 등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행 중처법으로 제천스포츠센터 화재(2017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2018년) 같은 다중밀집시설 대형화재나 4.16세월호 참사(2014년) 같은 해양선박사고는 이제 처벌이 가능한 반면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건(2014년) 같은 다중밀집 건축물 붕괴 대형사고나 판교 환풍구 시설붕괴사건(2014년) 같은 공연장·경기장의 인적 사고, 광주 학동 철거현장 붕괴사건(2021년) 같은 사업장 대규모 인적사고에는 법 적용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연면적을 기준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공중이용시설만을 대상으로 규정하는 현행법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김 분과장은 기업·기관 일반직원 798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0.8%가 중대재해처벌 업무를 어렵다고 여기고 있으며 43.2%는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30.4%는 업무 이해도도 낮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처법을 ‘중대재해예방법’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가칭)중대시민재해 예방법을 제정하거나 현행법 및 시행령을 개정하고 규칙을 제정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토론자로 나선 전인환 김앤장 변호사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는 그 입법 목적, 성격, 의무 내용 등이 상이하고, 중대시민재해 중에서도 각 유형의 재해가 상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상 관련 조항은 매우 유사하게 규정되어 있다”며 “이 과정에서 중대시민재해의 범위나 의무 내용이 중대시민재해 고유의 문제 의식을 충분히 담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그는 중처법 대상의 면적기준과, 인력·예산 범위, 주체(소유자·임차인·관리법인 등)간 관계 규정이 명확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종길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중처법은 예방보다는 처벌에 중점을 두고 있어, 기업과 기관이 실질적인 안전 강화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법적 의무를 충족하기 위한 서류 작업에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러한 접근 방식은 안전 문화 정착을 어렵게 만들고, 근본적인 사고 예방보다는 법적 책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기업 운영이 이루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실질적인 안전 확보로 이어지려면 예방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법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마치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를 볼 때마다 원숭이의 부주의만을 탓하고, 새로운 규칙을 추가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오민애 민변 이태원참사 법률지원TF 단장은 “10.29 이태원참사가 발생하였을 당시에도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검토했었는데, 중대재해처벌법과 시행령, 그리고 시행령에서 원용하고 있는 다른 법률이 정하고 있는 ‘도로’의 범위에 참사 발생장소가 포함되지 않아 중대시민재해로 의율할 수 없었다”며 “특히 현장에서 멀리 있고 지위가 높고 권한이 강할수록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적지 않은 판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시민재해로 의율되는 대상을 폭넓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로 관리대상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