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경제, 경제 효율성·역동성 떨어뜨려"

2015-10-14 11:16:37 게재

특혜·관치금융 벗어난 공정한 경쟁조건 '절실'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낡은 패러다임을 벗어던지고 혁신해야한다"는 말이 강조된지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매 정권마다 혁신과 구조개혁을 강조하다가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아직도 정부와 경제주체들은 낡은 공식에 갇혀 있다.

문제해결의 답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왜일까. 경제전문가들은 가장 큰 원인으로 기득권 집단의 지대 추구(Rent Seeking, 렌트 시킹) 행위를 꼽았다. 특히 재벌들 사이에 횡행한 특혜와 관치금융에 따른 이권 챙기기는 우리 사회의 불공정을 초래하고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려왔다는 지적이다.

렌트 시킹은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생산적인 활동에 경쟁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현상으로 로비·약탈·방어 등에 경제력을 낭비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주체들이 면허 취득 등을 통해 독과점적 지위를 얻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경쟁을 벌이는 행위가 지대추구행위의 대표적 사례다.

"면세점은 황금알 낳는 거위" = 최근 재벌들 간의 면세점 전쟁이 한창이다. 이달 말로 예정된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롯데, SK, 신세계, 두산 등 재벌들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삼성과 현대산업개발, 한화가 사업권을 따낸 바 있다.

재벌들이 이렇게 면세점 사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낮은 특허수수료 특혜에 소수 몇몇 기업만 시장을 독점하면서 초과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일컬어지는 전형적인 지대추구 사업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면세점 매출의 88.3%를 대기업이 차지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면세점은 정부가 민간기업에 대해 독점적 법적 지위와 초과이윤을 보장해주는 특혜적 성격을 갖고 있다"며 "면세점 운영수익이 개별 기업의 이익으로만 귀속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은 이권공화국 = 한국은 이권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각종 특혜와 담합 등 이권경제가 강력하다. 내수 위주의 독과점적 성격이 강한 설탕, 밀가루, 시멘트 등 많은 산업에서 재벌들의 담합 횡포가 이뤄졌고 정부는 이를 방치했다. 오히려 외자도입과 은행 대출금 등 각종 이권을 소수 특권층에게 몰아줬다. 이로 인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심화는 한국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려왔다.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70년대 이후 40년간 새롭고 좋은 대기업이 태어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재벌 위주의 이권경제가 고착되면서 큰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생태계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1980년에 창업한 웅진그룹과 1997년에 창업한 미래에셋그룹은 예외로 이들 기업은 외환위기를 전후해 재벌위주 질서가 무너졌던 시기였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권을 장악한 소수의 집단과 이권에서 소외된 다수의 사람들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는 모습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간의 월평균 소득격차는 2014년 기준 864만원으로 10년 전보다 304만원이 더 차이가 나는 등 소득양극화가 뚜렷해졌다. 상대적 빈곤율 또한 17.9%로 높아졌다.

김민창 경제산업조사실 입법조사관은 "소득양극화의 심화는 사회적 불안정성을 높이고 민간소비를 위축시켜 내수침체를 장기화시킬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우리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우리 사회에서 지대추구행위가 재벌들 외에도 수많은 사례가 발견되는 점도 문제다. 중세시대의 길드에서 카르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역사적 사례가 존재하는데 최근엔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 근로자들과 자격증 제도를 방패삼아 진입제한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각종 전문자격사들 등도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됐다.

"기득권 , 혁신능력 결핍, 성장 저해" = 전세계 경제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기득권 세력이 사회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지속적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이권경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피터 뮤렐 교수는 1973년 '경제단체의 국제비교'라는 논문에서 "오래 전에 설립된 이권집단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경제성장이 낮다"며 "이권집단을 억제하기 위한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정된 민주정치체제는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맨슈어 올슨은 1982년 '이권집단의 누적이 국가를 쇠망하는 길로 이끈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국내 경제전문가들도 이권경제의 불공정을 지적하며 특혜·관치금융에서 벗어난 공정한 경쟁조건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혁신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은 정치(15%), 부정부패(11%), 대기업(5%) 순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기득권 집단의 지대추구 행태가 우리 사회 불공정을 초래하고 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저해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개혁과 혁신을 실천할 때 가장 큰 난제는 이권과 특권"이라며 "이권과 기득권이 우선할 때 혁신능력이 결핍되면서 모험과 도전정신이 크게 약화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혁신하라 한국경제'의 저자 박창기씨는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은 이권경제의 극복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새로운 기술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조건이 우선조건으로 꼽힌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한 것은 좋은 사례다. 민주적 질서와 공평한 배분을 통해 노동자들의 창의적인 생산활동이 늘어났고 임금이 상승해 승용차와 주택수요가 급증하며 내수경제가 활발해졌다. 민주화가 혁신경제를 활성화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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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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