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개헌 '민의'는 없었다

2017-08-03 11:12:17 게재

8인 정치회담이 '결정'

국민도 개헌특위도 제외

개헌, 국민의견수렴 관건

30년 만에 이뤄지는 개헌을 앞두고 지난 87년 개헌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무얼까. 당시 9차개헌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민의'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데는 정치권과 헌법학자들, 시민단체 등에서 크게 이견이 없다. 이 때문에 직선제와 더불어 최초의 여야합의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밀실담합에 의한 졸속개헌이라는 비판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디데이(D-Day)로 잡고 진행되는 10차 개헌에서 왜 국민이 개헌의 중심에 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국민의 참여가 배제된 것에 이어 대의기구인 개헌특위마저 들러리 세운 점은 87년 개헌과정에서 두고두고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당시 개헌특위 회의록을 통해보면 한석봉 민주당 의원은 "개헌작업이 공청회 한 번 개최하지 않은데다 각계각층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은 채 8명이 밀실에서 만들어진 불행한 헌법"이라고 말했다. 임종기 민주당 의원 역시 "4당의 개헌안 시안 하나 훑어보지 않고 8인정치회담이 합의한 것을 발의한다는 것은 양심있는 사람으로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87년 개헌 과정에 국민 참여나 공론화 과정이 배제된 데는 여당인 민정당의 방해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개헌특위 회의록에 따르면 여당인 민정당은 많은 사람이 공청회에 참여하면 소란과 경호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방청객 수 최소화를 주장했다. 되도록 좁은 장소에 적은 인원, 공청회 횟수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여야는 공청회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개헌에 대한 TV방송도 실황중계 해석을 두고 생중계를 하자는 야당과 녹화방송을 해야 한다는 민정당과의 말다툼 연속이었다. 야당은 편파방송 가능성을 우려했다. "방송이 장악된 상황에서 적당히 가위질해서 필요한 부분분 방송을 내 보내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공청회에 필수적인 교수 등 전문가들도 외부 압력으로 참여를 기피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야당은 "민정당이 국민들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87년 개헌이 국민의 뜻을 반영하지 못한 가장 큰 중심에는 8인 정치회담이 존재했다.

국회가 합의한 개헌특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차원적 합의를 한다는 명목으로 여야 대표 4인씩 총 8인이 모든 개헌을 주도했다. 개헌특위가 쟁점을 제대로 풀지 못할 것이라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주요 정치인들의 조바심이 반영된 결과다.

4인 혹은 8인전체회의를 이어간 이들은 8월31일까지 불과 활동 30일 만에 110개의 쟁점사항을 모두 합의 처리했다. 이후 9월 16일까지 추가 작업을 통해 헌법 시행일과 국회의원 총선시기 등 부칙조항도 합의했다. 이 안은 이틀 뒤 여야 공동으로 발의된 뒤 10월 12일 국회를 통과했고 10월 27일 국민투표로 최종 확정됐다.

8인정치회담이 가동된데는 시간이 촉박한 점이 결정적이다. 대선이 12월로 셋팅된 상황에서 선거의 룰이 10월말까지는 결정돼야 한다는 점이 '민의'가 배제된 가장 큰 이유였다. 헌법학자들은 "87년 개헌이 국민들의 실질적 이익과는 상관없는 엘리트들간의 대화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때문에 반드시 다뤄야 할 많은 것이 토의되지 않은 결함이 노출됐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직접정치참여, 지방자치 등에서 내용을 담지 못한 부분들이다. 대법원장에 편중된 사법인사권, 여전한 제왕적 대통령제. 국민의 직접정치참여 욕구해소에는 미비점이 노출됐다. 건국이념 범위, 독소조항인 보안처분을 남겨둠으로 인한 개악 논란,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 의결권을 이루지 못하고 건의권에 그친 점 등도 마찬가지다. 근로자 이익균점권, 5.18 정신 헌법 전문 기재, 교육자치권, 과거와 별다를 것 없는 사법권 독립 문제 등에서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10차 개헌은 민의를 담아낼 수 있을까. 개헌특위는 하반기 가장 주요한 일정을 국민의견수렴으로 잡아둔 상태다. 하지만 그정도로는 역부족이라는 의견 또한 강하다. 개헌특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위원은 "공청회나 원탁토론 몇 번 한다고 국민의견이 수렴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스인 일"이라며 "국회의원만으로 구성된 개헌특위에 국민이 함께 참여해야 진정한 개헌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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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기자 dolboc@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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