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계기로 성폭력 없는 사회를 ②

문화예술계, 미투 이전에도 'SNS 고발운동' 있었다

2018-02-27 10:55:46 게재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여성문화예술연 조직 … 여전한 남성중심 사회 '권력형 성폭력' 고발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사과, 각종 협·단체들의 후속 조치와 미투 지지 성명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를 포함한 한국 사회 전반의 시스템과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사회적 관심이 사라진 이후 같은 사태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내일신문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문화예술계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 변화의 필요성을 짚는다. <편집자주>

문화예술계는 SNS를 통한 성폭력 고발이 활발한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 이전에는 '#00계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성폭력을 고발해 왔다. 때문에 미투 운동은 '#00계_내_성폭력'의 연장선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아울러 문화예술계 성폭력 역시 가해자가 권력을 갖고 있으며 피해자는 예비 연극인 등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나타나고 있다. '권력형 성폭력'의 양상이다.

9개 단체들 연대해 = '#00계_내_성폭력' 운동은 2016년 10월 '#문단_내_성폭력' '#미술계_내_성폭력' 등으로 나타나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해 왔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이 각종 토론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미술계_내_성폭력'으로 인해 여성 신진 작가들에게 상습적인 성추행을 저질렀던 모 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가 해고됐으며 '#문단_내_성폭력'으로 인해 고양예술고등학교 실기교사로 근무했던 당시 상습적 성폭력을 저질렀던 배용제 시인이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나아가 '#00계_내_성폭력' 운동은 문화예술계 각 분야에서 활동해 온 9개 단체들이 연대해 여성문화예술연합이라는 성폭력에 공동대응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연대기구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 시범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자 지원 가이드라인'을 공동제작하는 등 일정 성과를 내 온 연대기구로 평가받는다.

"평생에 걸친 위계" = 문화예술계 성폭력은 일반적 성폭력 유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권력형 성폭력'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남성 중심적 권력 구조가 여전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범죄라는 지적이다.

예컨대 예술 대학의 경우 학생은 여성이 많은데 교수의 대부분은 남성이다.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및 교육기관, 협회, 학회 임원진, 후원 혹은 지원의 결정권자 대다수도 남성이다.

이성미 여성문화예술연합 대표는 지난 6일 '서검사 미투 이후 대안을 위한 전문가 현장 간담회'에서 "피해자는 주로 작가 지망생, 예술학교와 사설 창작교실의 학생 등 예비 예술가와 신인 예술가가 많다"면서 "가해자는 대다수 교수, 강사, 유명 작가나 감독, 예술 재단 및 교육기관의 직원, 계약관계의 상사"라고 밝혔다.

이어 "예술교육 과정의 스승이나 선배가 활동 영역의 동료, 심사위원, 비평가로 이어지는 평생에 걸친 위계 관계"를 특징으로 꼽았다.

오성화 기획자(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는 26일 '#Me Too 운동 긴급 토론회 우리는 아직도 외친다. 이게 나라냐'에서 "학교 예술학과를 통해 배출되는 예술가들이 많은데 대학 내 교수와 학생이라는 구조 안에서 성폭력이 발생한다"면서 "이는 교육부가 건드리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고 말했다.

아울러 오 기획자는 연극계의 1인 집중 창작체제도 언급했다. 그는 "연극계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금이 많이 있는 영역인데 집행을 결정하는 권한이 연출가, 대표에 집중돼 있다"면서 "내가 이 작업을 같이 하는 작업임에도 돈에 대한 결정권한은 미학을 책임지는 1인에게 있는데 이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공정한 노동 행위 = 이와 함께 문화예술계의 특수성이 거론된다. '예술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정우영 신동엽학회 회장은 "문화예술계는 우리 사회에 억압돼 있는 성(性)을 깨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면서 "이를 현실에서 왜곡하는 경우 여성에게 폭력으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어릴 때부터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여기는 예술 작품에 노출되고 그로 인해 왜곡된 성 의식이 학습된다"면서 "예술 작품의 뮤즈로서 자유로운 연애 상대가 되길 강요받는다"고 지적했다.

특수한 작업 환경에서 불공정한 노동 행위가 존재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오 기획자는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연극 제작환경에 익숙해져야 했고 '이게 이상한 거야?'라고 질문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면서 "최근에는 배우노동조합이 있고 노동권을 말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예술과 노동은 같이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직장에서 발생하는 성폭력과 달리 가해자, 피해자가 일방향적 방향이 아니며 관계들이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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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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