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계기로 성폭력 없는 사회를 ④

"이윤택 '상습적 성폭력' … 법률 정비 등 종합대책 필요"

2018-03-06 12:56:45 게재

이씨 고소 준비 과정서 협박에 1명 포기 … "공소시효 폐지하고 필요하다면 소급입법 가능해야"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사과, 각종 협·단체들의 후속 조치와 미투 지지 성명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를 포함한 한국 사회 전반의 시스템과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사회적 관심이 사라진 이후 같은 사태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내일신문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문화예술계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 변화의 필요성을 짚는다.
<편집자주>


"여전히 연극계의 선생으로 군림하고 있는 그이기에 멋지고 훌륭한 연극인재들이 그 때문에 연극을 그만두게 된다면, 이런 끔찍한 환경에서 눈치나 보며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공연으로 어떻게 관객과 현재를 나눌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 아니었으면, 그가 아니라도 그쯤은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더 멋진 공연이, 더 훌륭한 연극쟁이가, 세계를 아울렀을 거장이 나왔을 텐데. 그의 잘못을 밝히고 죄 값을 받게 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윤택 미투' 피해자 기자회견│연극 연출가 이윤택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과 여성인권단체 관계자들이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미투' 지지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변호사, 김수희 대표, 홍선주 대표, 이재령 대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지난 2월 14일 SNS에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이윤택씨의 성폭력을 폭로해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이끌어낸 김수희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와 피해자 홍선주 대표, 이재령 대표는 5일 전국성폭력상담소(128개소) 장애여성공감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가 주최한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김 대표를 포함한 16명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지난 2월 28일 이씨를 형사고소했음을 밝혔다. 이들을 위해 기꺼이 법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공동변호인단은 101명에 이른다.

1980년대부터 성폭력 = 공대위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17년 1월까지의 피해 사실을 확인, 고소했다고 밝혔다. 이씨로 인한 피해자가 다수이며 최근까지 성폭력이 계속됐다는 점에서 상습적이라 볼 여지가 있으며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강한지에 주목해 달라는 것이 공대위의 주장이다. 특히 이 대표의 경우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을 만나고 제보를 받고 있는데 이날 오전에도 1980년대 선배로부터 피해 사실을 제보받았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이와 같은 점을 재판에서 주장하게 될 경우 공소시효 등에도 불구하고 이씨에 대한 처벌이 가능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공대위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공소시효 폐지나 소급입법 등과 같은 법률적, 제도적 정비로 사회적 관심이 옮겨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서현 법무법인강남 변호사는 "이 사건은 장기간에 걸쳐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뤄져 상습성이 있는 범죄로 종료 시점이 아주 최근인 것으로 법률적 검토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명숙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는 "드디어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 힘들게 피해자들이 용기를 냈는데도 공소시효, 친고죄 등을 이유로 처벌을 못한다면 어찌 일제 강점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일본에 사과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의 경우 공소시효가 없는 나라도 많으며 2차 피해를 가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을 만들 수는 없는지 등 법률상 현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면서 "검·경 성폭력 수사대에 충분한 인력이 있는지, 미투 운동 이후 쏟아지는 대책들이 얼마나 시행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종합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협박, 비난 계속돼 = 2차 피해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이 사건의 피해자들에게도 가해졌다. 공대위에 따르면 당초 이씨를 고소하기 위해 모인 피해자들은 17명이었으나 고소장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협박과 만류 등으로 1명이 포기, 16명이 고소장을 접수했다. 피해자들은 미투 운동 이후 전화, 문자,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협박과 강요를 받았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개인적으로 전화를 많이 받았고 '너는 선생님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으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비난을 많이 들었다"면서 "이 사건을 고백한 이후 가족과 극단 신상까지 노출되면서 너무나도 아픈 시간들을 견뎌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연희단거리패 출신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일도 많은데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구보람 변호사는 "공동변호인단은 전화 문자 SNS를 통한 협박, 강요, 피해자를 특정하게 하는 명예훼손, 민형사상 공소시효 폐지, 장기간 다수의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가한 데 대한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있는 법 등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겠다"면서 "법적, 제도적 인식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피해자들, 연극 향한 열정 강조 = 한편 피해자들은 성폭행을 부인하는 지난 2월 19일 이씨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만남을 갖고 고소를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이 대표는 "서로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놀라면서 김 대표의 집에서 모여 식사를 하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서로의 상처를 몰랐던 이유에 대해 이씨가 서로 소통할 수 없도록 이간질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본인의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 우리가 서로 소통할 수 없도록 이간질했고 악질적 헛소문을 퍼뜨려 우리를 고립시켰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기자회견 동안 울먹이고 때론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연극을 향한 열정을 강조했다. 나약하고 어린 피해자들은 그 만큼 연극을 향한 열정이 있었기에 그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 이 대표는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우리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 싶은 순간들이었고 그 시간들을 지키고 싶었다고 얘기했다"면서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이씨의 잘못이지 연희단거리패를 지나온 사람들의 잘못이 아님을 말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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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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