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계기로 성폭력 없는 사회를 ⑤

"예술계 특수성 반영한 성폭력 대책 필요"

2018-03-07 10:54:50 게재

"문체부 해결 의지 있나" … "성범죄자인지 모르고 공적자금 지원"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사과, 각종 협·단체들의 후속 조치와 미투 지지 성명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를 포함한 한국 사회 전반의 시스템과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사회적 관심이 사라진 이후 같은 사태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내일신문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문화예술계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 변화의 필요성을 짚는다. <편집자주>

"실행하겠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그런 일을 할 근거가 없다" "예산이 없다"

예술계 성폭력 정부대책 촉구│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 앞에서 열린 예술계 성폭력 정부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여성문화예술인연합 대표자들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여성문화예술연합은 7일 '예술계 특수성 반영 없는 정책으로는 문화예술계 성폭력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예술계 성폭력 정부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은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문체부의 위와 같은 답변들 사이에서 지쳐갔다고 밝혔다.

보복성 고소로 잊힌 과거 사례 = 이들에 따르면 '미투(#Me Too)' 운동 이전 2016년 10월 '#오타쿠_내_성폭력'을 시작으로 미술 디자인 문학 사진 분야 등 많은 분야의 예술인들이 성폭력을 고발했다. 그러나 사회의 무관심 속에 명예훼손, 무고죄와 같은 보복성 고소로 잊혔고 피해자뿐 아니라 대리인들과 조력자들도 피폐해졌다. 그 가운데 가해자들은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여성문화예술연합은 또 다시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은 "문체부는 여론과 국회의 압박이 커지자 지난 1년간 여성문화예술연합이 요구했던 정책들을 실행하겠다고 2월 20일 발표했다"면서 "그러나 여성문화예술연합이 문체부로부터 듣고 있는 얘기는 '가해자의 공적 지원금에 대한 제한 조치는 할 수 없다' '신고는 여성가족부의 기존 기관에서 하면 된다' '기존 기관들의 예술계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은 여성문화예술연합이 도와서 하면 된다' '조사는 수사기관이 아니라서 할 수 없다' '근거조항이 없다'는 등 회피적인 답변들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7년에 실시한 예술계 성폭력 실태 시범조사에 대해서는 조사 문항을 작성하고 조사 대상에 대해 자문을 했던 여성문화예술연합에 조차 제대로 된 분석 결과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면서 "문체부가 과연 예술계 성폭력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성범죄에 문체부도 책임 = 이들은 예술계 권력자들의 성범죄에 문체부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은 "문체부는 성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예술계 권력자들에게 국가 지원금을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이들의 권력을 더 강화해 줬다"면서 "연극계만 예를 들어도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국립극장장, 서울시극단장,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국립대학인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를 역임했으며 그밖에도 극단과 공연에 대한 지원금을 집중적으로 수혜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권력자가 성범죄자인지 모르고 공적 지원금을 주고 공공 예술기관의 수장을 맡기고 국립대학의 교수직에 임용하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문체부는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가"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문체부가 가해자들에 대해 징계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예술계의 경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서울문화재단과 같은 지역문화재단, 지방자치단체 등을 통해 공적 지원금이 투자된다. 이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 여성문화예술연합은 "법률적 근거가 없다면 국회와 협조해 근거 조항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면서 "그것이 국가의 예술정책을 관할하고 공적 자금 집행을 결정하는 정부 부처로서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어 "1년이 넘게 외면해온 정부가 대통령과 장관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예산과 실효성을 제대로 점검하지도 않고, 예술계 성폭력 특수성을 반영할 장치를 마련하지도 않고 성급하게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면서 "예술계 특수성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제대로 만들라"고 말했다.

전문상담인력 부족 = 이들은 이날 배포한 자료를 통해 여성가족부와 문체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여가부에 대해서는 예술계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정책 집행을 촉구했다. 예컨대 상담소의 경우 문화예술계 전담 상담원이 전무하며 문화예술계 성폭력 특수성에 대한 해바라기센터(성폭력 상담·지원기관) 상담사 상담원 재교육의 경우 교육대상자가 1년에 60명으로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문화계 권력구조에서 동료 예술가의 정신적·심리적 불안 등 피해가 발생하는 만큼 의료비 지원을 이들에게까지 확대하고 해바라기센터의 심리상담 지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화예술계 종사자의 특수성을 감안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문화예술 종사자 대상 성평등 교육 방식 개발 등도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체부에 대해서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관련 실태조사 실시' 관련 예비예술인 대상 조사요청 및 대학 목록을 전달했지만 시행되지 않았으며 출판 분야의 경우 2017년 실태조사가 시행됐음에도 대응이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또 문화예술계에 특화된 성평등 교육 프로그램에 개발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8일 정부 대책 발표 = 한편 여가부와 문체부는 8일 문화예술계 및 직장에서의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한다. 문체부의 경우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정부 지원 제재가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법원 판결 이전에도 본인 인정 등 사실 관계가 명확한 경우 지침 등을 통해 제재를 할 수 있는 방안이 포함될 예정이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이 제대로 된 결과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2017년 성폭력 시범 실태조사의 경우, 문체부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했었으나<내일신문 2018년 2월 21일자 19면 참조>, 사태가 확산되자 지난 2월 27일 요약된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이영열 문체부 예술정책관은 "곧 전체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라며 "국고 지원 제재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법원 판결 이전에 제재를 할 것인지 등 방법론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신숙 여가부 권익지원과장은 "성폭력피해상담소 운영지원 예산 등은 예산 실링(총 지출 한도) 부분에 묶여 늘 어려움이 있지만 이번에 더 증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문화계 시민사회와 소통을 통해 부족하겠지만 상담소 인력충원 등 그 분들의 요구를 8일 발표할 정부 추가 대책에 넣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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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경 김아영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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