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계기로 성폭력 없는 사회를 ⑬

끝나지 않은 미투 … '성폭력 말하기' 넘어 성평등 외침 으로

2018-05-10 10:55:43 게재

서지현 검사 폭로 이후 각계에서 고발 이어져

성폭력 진짜 배경 '성차별 구조' 드러내는 계기

"성평등사회 이뤄질 때까지 미투는 계속될 것"

일각에서 미투가 한물 간 이슈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투를 이른바 성폭력 폭로 ‘붐’으로만 해석한다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현장에서 분출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여성 또는 미투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미투는 이제 시작이다. 미투 지지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구호에는 성폭력 고발이나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를 넘어서 성폭력이라는 현상을 부른 진짜 이유 ‘성차별 사회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미투운동이 성폭력 말하기에서 성평등 외침으로 자연스럽게 흐른 것이다.

◆성역 없는 미투 이어져 =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얼굴과 실명을 모두 공개하며 자신이 당한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이후 수많은 미투(#Metoo, 나도 고발한다), 위드유(#Withyou, 피해자와 함께 하겠다) 선언이 잇따랐다. 앞서 2016년 10월 ‘#OO_내_성폭력’ 운동 이후 성폭력 문제는 다시 대대적으로 공론화됐다. 문화계.교육계.정치권.종교계.시민사회.이주여성.장애인을 막론하고 도대체 어느 부문이 미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문화계에선 2월 초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에 대한 성폭력 고발이 충격을 안겨줬다. 그는 1999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여성 연극인 17명을 62차례 상습 추행한 혐의로 지난달 구속기소됐다. 시인 고은, 영화감독 김기덕, 배우 조재현 등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고 이들에 대한 법적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생명에는 치명타를 입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던 배우 조민기는 경찰조사 전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정치권 유명 인사들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차기 대통령감으로 언급됐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정무비서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사면복권 후 정치에 복귀해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도 성추행 피해자와 낯뜨거운 진실게임 끝에 한발 물러서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현재는 명예훼손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교육계도 미투의 성역은 아니었다. 지난 3일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한 고등학생 1014명 중 40.9%가 '교사에 의한 성희롱이 발생한다'고 답했다. 교수들이 끊임 없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고 최근에는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의 제자를 상대로 한 성폭행 및 가학행위 의혹까지 터져나온 상태다.

성평등 이슈, 나중 아닌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로 떠올라 = 단기간 동안 폭발적인 속도와 강도로 대한민국 사회에 방출된 성폭력 사례에서 두드러진 것은 깜짝 놀랄 정도로 닮은 ‘서사’다.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 문인이나 교수, 정치인, 유명 연예인 등은 각계의 권력자로서 피해 여성들의 사회적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이윤택 전 예술감독의 성추행을 처음으로 폭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당시 그(이윤택)는 내가 속한 세계의 왕이었다"라고 표현했다.

이는 권력구조 윗선에 위치한 남성과 아래에 머물고 있는 여성 사이에서 성폭력 피해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연히 드러냈다. 성폭력이란 ‘변태’나 ‘괴물’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 권력이 쏠려 있는 성차별적인 구조에서 영양분을 얻어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87년 민주항쟁, 2007년 촛불항쟁 등 세계가 주목하는 민주화의 길을 걸으면서도 늘 나중 문제로 취급됐던 성평등 이슈가 드디어 나중이 아닌 당장 해결해야 할 이슈로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미투 흐름을 좇아온 전문가들은 미투가 미친 가장 큰 영향으로 성폭력을 대하는 인식 변화를 들었다. 예전에는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 스스로도 ‘내 탓 아닌가’ 고민할 정도로 ‘피해자 탓’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미투 이후에는 ‘가해자의 잘못’에 훨씬 큰 비중을 두게 됐다는 것이다.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최소한 성폭력 가해를 하면 인생에서 손해를 보게 돼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지 않느냐. 이건 굉장한 변화”라면서 “또 성폭력 피해 경험자들은 적어도 내 잘못은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치유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고 말했다.

성폭력 문제가 사회 전분야에 퍼져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정부가 발벗고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실효성과 진정성 면에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범정부 차원의 성희롱 성폭력 근절추진 협의회가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성폭력 예방대책 발표도 잇따르고 있다. 국회에선 130여건의 미투 관련 법안이 쏟아졌고 6.13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성평등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일상의 모순 바뀌지 않으면 미투도 안 끝나" =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갈 길이 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김수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팀장은 “정부가 정책을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냐에 대해선 비판이 많고 예산 면에서도 새롭게 책정되지 못한 정책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 “미투 붐에 일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정책을 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상에서는 여전히 남녀간의 불균형한 권력관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상이 바뀌지 않으면 미투도 끝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다”면서 “모든 영역에서 성차별 해소를 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주여성 분야에 한정해서 말하면 여성가족부가 이주여성 전문 상담소를 개소하기로 한 것 외에는 진전이 별로 없는 편”이라면서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강 대표는 “폭력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침묵하게 하는 성차별 구조에 있었다는 것이 성폭력의 진짜 문제점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성차별적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미투로 가야 한다”면서 “헌법에 성평등 문구를 넣고, 각 분야에서 여성대표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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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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