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고립된 중국 '의화단운동'을 떠올리다

2020-05-18 12:11:15 게재

닛케이아시안리뷰 '현 상황 vs 120년 전' 비교

중국 청 왕조의 강희제(재위기간 1661~1722년)는 여러 전란에도 나라를 안정시킨,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손꼽힌다. 그런 강희제도 보이지 않는 적, 학질(말라리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모기가 옮기는 질병에 걸린 그는 효험이 있다는 모든 처방을 시도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병세는 날로 악화됐다.

마침 중국에 포교활동을 하러 온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 장 드 퐁타네가 '키니네'를 갖고 있었다. 남미산 기나나무 껍질에서 얻는 약물로, 말라리아 특효약이었다. 그는 황제에게 키니네를 바쳤다. 강희제는 대신들을 상대로 먼저 시험해 본 뒤 자신도 복용했다. 효험이 있었고 그는 쾌차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황제는 퐁타네 일당에게 황궁 내 성당을 설립할 수 있게 했다. 베이징의 '구세주 성당'은 1703년 완공됐다.

1900년 영국과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오스트리아-헝가리 등 이른바 '열강 8국 연합군'(Eight Nation Alliance)이 외세배척 운동을 펼치던 중국 의화단을 궤멸시켰다. 사진은 1900년 당시 일본인이 그린 열강 8국 모습. 사진출처:위키미디어커먼스


닛케이아시안리뷰(NAR)는 최신호에서 "이는 중국 황제의 목숨을 살린 국제협력의 한 일화로 볼 수 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엔 그같은 국제협력이 적용되지 않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중국을 둘러싼 국제정치 현실은 매우 엄혹하다. NAR은 "기본적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책임 논란이겠지만, 부분적으로는 중국의 경제 급성장, 시진핑 주석의 공세적 외교도 일조한다"고 평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중국에 '코로나19 발생 초기단계의 정보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의 공식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순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의회는 '코로나19 피해를 중국이 보상해야 한다'며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전화회의를 통해 '중국에 편향된 세계보건기구(WHO)를 개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제사회의 잇따른 비판은 중국인들에게 120년 전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켰다. 베이징의 한 중국인은 "현대판 '열강 8국'과 같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중국을 비난하고 있다. 이같은 봉쇄의 진짜 이유는 뭔가"라고 물었다. 또 다른 중국인은 "중국에 배상을 요구하는 이런 움직임 뒤에 거대한 음모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1900년 육체단련과 종교결사를 겸비한 '의화단'이라는 조직이 부청멸양(扶淸滅洋)을 구호로 반그리스도교, 반제국주의 운동을 벌였다. 의화단은 청조의 지지를 등에 업고 활동을 벌였다. 이를 보다 못한 영국과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오스트리아-헝가리 등 이른바 '열강 8국 연합군'(Eight Nation Alliance)이 의화단을 궤멸시켰다. 전투가 벌어진 곳 중 하나가 구세주 성당이었다.

1901년 청조는 8개국에 벨기에와 네덜란드 스페인까지 11개국에 피해를 배상키로 합의했다. 베이징의정서였다. 배상액은 순은 4억5000만냥이었다. 당시 청조 연간 예산의 수배에 달했다. 39년에 걸쳐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그 빚은 1912년 청조가 망하고 난 뒤 중화민국에게로 이어졌다.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배상액은 거의 2배가 됐다. 당시 사건은 중국의 현 세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열강에 대한 깊은 분개심의 씨앗을 뿌렸다.

우연의 일치인지 현재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열강 8국의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한때 막대한 배상액의 수혜국이었던 나라들은 이제 코로나19로 가장 큰 인명, 경제 손실을 내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은 차례로 사회봉쇄, 격리조치를 취했다. 미국과 일본, 최근의 러시아는 코로나19 확산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열강 8국이 아니었지만 중국을 비난하는 대열에 새롭게 동참했다. 호주 스콧 모리슨 총리는 민간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독립적 현장조사를 통해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 마크롱 대통령 등에게 그같은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에 항의하듯, 뉴질랜드는 대만이 WHO 연례총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하는 데 찬성한다고 밝혔다. 대만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초기에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중국은 전면적인 반격에 나섰다. 호주의 한 농업생산조합에 따르면 중국은 호주산 보리에 최대 80% 관세를 부과할 것을 고려중이다. 중국은 또 뉴질랜드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중국이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는 점은 열강 8국 중 최소 1개국가는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는 인식이다. 바로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선진7개국(G7) 중 유일하게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코로나19 대응에서도 양국은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또 다른 믿음직한 파트너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반미전선을 구축하는 대표적 나라다. 최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전화회의에서 '브릭스(BRICS) 틀 내에서 코로나19 대처 등을 포함해 다각도로 협력하자'고 제안했다. 브라질과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경제 5개국을 지칭하는 용어다.

중국인에게, 20세기 초에 벌어진 일과 현재 상황의 유사점은 명확하다. 베이징의정서는 불평등 조약이었다. 외국군대가 중국에 주둔할 권리를 인정해야 했다. 많은 중국인들은 이로 인해 청조의 멸망이 가속화했다고 본다. 그같은 기억은 중국인에게 매우 쓰라린 아픔이다.

NAR은 "하지만 오늘날 중국은 세계 2대 경제강국이자 다른 나라들이 두려워하는 강국이다. 열강 8국의 유령에 계속 떨고 있을 수는 없다"며 "중국은 담대한 조치를 창의적으로 생각해낼 필요가 있다. 중국이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협력적인 국가가 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COVID-19)" 연재기사]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