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서 빛 발한 사회적경제 | 3. 사회적경제, 코로나 대응도 앞장

코로나 돌봄 사각지대, 사회적경제가 보듬는다

2020-12-22 00:00:01 게재

긴급돌봄가구에 식사·이동·주거 편의제공

"사각지대 아우를 통합돌봄망 구축 시급"

#. ㄱ씨는 지역돌봄활동가로부터 동행지원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 병원, 약국, 시장 등을 혼자 갈 수 없다. 7년째 혼자 사는 ㄱ씨는 이틀에 한번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박영숙(가명)씨에게 필요한 물품과 먹고 싶은 음식을 부탁한다. 동행지원 시작 한 달이 안돼 ㄱ씨는 박씨를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워졌다.

#. 좁은 방에 홀로 사는 ㄴ씨는 손이 마비돼 뜯어진 방충망을 고치지 못했다. 여름내내 벌레에 시달리던 ㄴ씨는 돌봄SOS센터에 수리 서비스를 신청했고 지금은 기존 방충망을 철거하고 보기에도 좋고 사용하기에도 편한 커튼식으로 교체됐다.

#. ㄷ씨는 일주일에 3번 하루 2끼 도시락을 배달 받는다. 지역 사회적기업이 돌봄SOS센터와 연계해 실시하는 식사지원서비스를 신청했다. 거동이 불편하고 혼자 밥상을 차리는 것도 내키지 않아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았다. 소화가 안될 때는 죽도 신청할 수 있다. ㄷ씨는 건강이 회복되면 자신처럼 불편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위해 식사배달 활동을 할 계획이다.

사회적경제기업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긴급돌봄가구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정부 복지망 안에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는 기존 체계로 보호를 받지만 감염병 사태 등으로 갑자기 상황이 안 좋아진 이들에겐 돌봄 손길이 미치지 않는 일이 생긴다. 특히 감염자와 접촉 이력 때문에 자가격리된 이들이 어려움이 크다. 감염 우려 때문에 사설업체들도 방문 업무를 꺼리고 고정 수요가 발생하지 않아 기존 업체들도 일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돌봄 해결·사회적경제 활성화 =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지역에 기반을 둔 사회적기업들이 나섰다. 사회적기업들은 경쟁이 아닌 협업을 택했다. 다양한 돌봄수요를 파악하고 역할을 구분했다. 가장 수요가 많은 분야는 식사 지원이었다. 마포구 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 소속 사회적기업이 제공한 도시락만 올 한해 월 123가구, 3만2387개에 배달됐다.

사회적경제기업이 만든 영양죽이 배송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지역의 사회적기업과 연계, 긴급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식사·이동·주거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 마포구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


이동지원과 긴급 집수리도 돌봄 수요가 많은 분야다. 돌봄SOS센터와 연계한 사회적기업들은 동주민센터 소속 자활사업단 활동가를 돌봄 필요 가구에 파견한다. 거동이 불편해 혼자 이동할 수 없거나 비가 새거나 시멘트가 떨어져 나가는 등 갑자기 수리가 필요한 가구들에 지원을 나간다.

코로나로 발생한 긴급돌봄에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참여한 것은 기업 운영 취지는 물론 지역사회 돌봄수요 해소에 사회적기업 손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위험하고 딱히 큰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선뜻 나서는 이들이 없었다. 사회적기업이 지역 돌봄에 나서는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사회적기업들은 식사·동행·주거편의 서비스를 제공한 뒤 적정 비용을 회수하고 해당 업무를 동주민센터 소속 자활사업단 활동가들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동주민센터 소속 자활사업단 활동가가 사회적기업에서 만든 도시락을 돌봄 신청 어르신 댁에 배달하고 있다. 사진 마포구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


서울시는 각 지역 사회적경제기업들을 지원하면서 돌봄문제 해결과 사회적기업 생태계 활성화를 동시에 모색하고 있다. 우리동네 나눔반장 사업단 지원이 대표적이다. 서울 25개 전 자치구에는 돌봄SOS센터가 설치돼 있다. 정부 복지체계에서 빠져 있거나 긴급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서울형 돌봄체계다. 서울시는 돌봄SOS센터와 연계된 지역의 사회적경제 조직을 지원하고 이들 조직은 식사 등 작은 지원에서부터 출발해 지역의 통합돌봄망 구축 활동을 펼친다.

어려움도 있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낮은 인식, 기존 복지 체계와 중복에서 비롯되는 업무 혼선이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올 한해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대다수 자치구에 돌봄SOS센터를 설치하고 지역통합돌봄망 구축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 19개 자치구에서 약 80개 사회적경제기업이 참여해 2억4800만원 매출을 올렸고 50개의 신규 사업체와 서비스를 발굴했다. 생활편의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동네 나눔반장' 사업에서 19개 고정 일자리도 창출했다.

◆일상편의 서비스 머물러선 안돼 =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지역의 사회적경제조직들은 한발 더 나아가 현행 돌봄 체계 구조적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현행 규정으로는 일상 복지체계에서 소외된 이들을 돕는데 시간 제약 등 한계가 많기 때문이다. 통합적 돌봄망 구축도 과제다. 여기저기 분산된 지역돌봄수요와 서비스를 한데 묶어 더 나은 서비스를 사각지대없이 제공하기 위해서다. 홍진주 마포구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 소장은 "지역돌봄은 공동체 회복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에 적합한 분야"라며 "기존 복지망 한계를 극복하고 공백없는 긴급돌봄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적기업들이 활발히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물적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이 제공하는 돌봄서비스가 일상편의 사업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적경제를 단순히 하나의 기업이 아닌 지역돌봄 문제를 해결할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활동영역 확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연아 성공회대사회적기업연구센터 연구교수는 "증가하는 지역돌봄 수요를 감당하려면 공공의 힘만으로는 공백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의 해결을 위해 사회적기업이 지역사회돌봄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며 "돌봄SOS센터를 기반으로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지역통합돌봄망을 구축해야 방배동 발달장애인 노숙자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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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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