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 재무부의 장기채 속도조절

2023-11-03 11:33:55 게재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1일(현지시간)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금리를 동결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매파적 동결' 기조를 유지하려 애썼지만 시장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시장은 95% 이상의 확률로 금리동결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은 오히려 미 재무부의 국채발행보고서와 만기별 채권의 차환계획에 더 주목했다. 오전 9시 뉴욕증시 개장 전 발표된 미 재무부의 차입계획 발표는 일단 장기 국채 발행과 관련 '속도조절'을 시사했다.

20년물과 30년물 등 초장기 국채(T-bond)발행을 줄이는 대신 10년물과 3년물 7년물 등 중기채(T-note) 발행을 약간 증액하고, 만기 1년 이하 단기재정증권(T-bill) 등 단기물을 더 많이 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기물 발행이 늘면 장기국채에 대한 공급 압력이 줄고 장기금리 급등 부담도 그만큼 낮아진다.

미 재무부 장기채 발행 줄이고 1년 미만 단기채 발행 늘리는 세부 계획 발표

시장은 재무부의 발표에 환호했다. 최근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를 웃돌면서 금융상황은 긴축적으로 변했다.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8%를 훌쩍 넘으면서 주택시장은 둔화하고 있고, 대출금리 상승은 가계와 기업의 자금 조달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재무부의 장기국채 발행 축소는 사실상 5% 이상의 이자율을 현재의 재정상황으로 계속 감내하기 쉽지 않다는 속내도 깔려 있다. 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2023년 회계연도(지난해 10월~올해 9월) 기준 1조700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6.3%에 이른다. 미국 의회예산처(CBO)에 따르면 올해 미국정부가 지급하는 국채 이자는 지난해보다 35% 급증한 6400억달러(약 84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올해 미국정부 세수의 13.8%에 해당한다.

미국정부는 저금리에 발행했던 국채의 만기가 끝나면 금리가 더 높아진 국채로 차환했고, 늘어난 이자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추가로 국채 발행을 늘리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단기국채 발행량을 늘린다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건설사나 제2금융권이 짧은 만기로 자금을 돌려막기 하는 상황과 비슷한 모양새다.

민간 신용시장 상황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저신용 기업부채시장 규모는 하이일드 채권, 레버리지론, 사모대출 등을 포함해 약 4조3000억달러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26% 증가했다. 그러나 최근 10년물 국채금리가 5%를 넘나드는데다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higher for longer)로 저신용 기업을 중심으로 부채위험이 부각됐다. 또 실리콘밸리뱅크(SVB) 뱅크런 같은 금융불안 재발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JP 모건체이스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하이일드채권과 레버리지론 디폴트 규모가 632억달러로 이미 지난해 디폴트 규모인 478억달러를 넘어섰다.

연준 위원들 일부에서도 국채금리 급등은 연준의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못지않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주장이 잇달았다. 올해 인상 필요성을 적극 주장했던 매파성향의 로리 로건 댈러스연방은행 총재는 지난달 초 "장기금리가 높은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으로 인해 계속 상승한다면 금리를 올릴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1일 FOMC 결과 발표에 뒤이어 기자회견에 나선 파월 의장도 장기채 금리상승에 따른 긴축적인 시장 상황을 시인했다. 그는 "국채금리 상승을 비롯해 달러화 강세, 주가 하락 등 광범위한 금융시장 여건이 향후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4분기 급속한 경기하강 예고한 애틀란타 연은의 GDP 나우 데이터

재무부의 국채발행 세부 계획과 함께 미 10년물 이상 장기국채 금리를 줄줄이 5% 이하로 끌어내린 원인은 또 하나 있다. 미국의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이 시장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연율 4.9%를 기록해 파월조차 '강하다(strong)'는 단어를 썼지만 시장에서는 4분기 경기하락을 예측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미국 GDP 전망을 실시간으로 제시하는 애틀란타 연방준비은행의 'GDP 나우' 예측모델은 올해 4분기 미국경제 성장률을 1%대로 예측하고 있다. 3분기 4.9%에 취해 있던 금융시장에 갑자기 1%대의 성장률이 발표되는 순간 그동안 잊고 있던 경기침체의 공포가 급속히 퍼져갈 수도 있다.

안찬수 오피니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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