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락치강요 피해자에 국가배상"

2023-11-23 11:38:07 게재

법원, 1인당 9천만원 위자료 인정

전두환 정권 시절 고문을 받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 박만규 목사가 22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선고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전두환 정권의 '녹화 사업으로 이른바 '프락치(정보원)'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1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6부(황순현 부장판사)는 22일 이종명·박만규 목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국가가 한 사람당 9000만 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두 사람이 청구한 위자료는 각 3억원이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불법 구금과 폭행·협박을 당하고 양심에 반하는 사상 전향과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은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면서 이 같이 결정했다. 이미 소멸시효가 지나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는 국가측 주장에 대해선 "국가가 이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로 결정했다"며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며 배상을 거부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해 용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선고를 마친 뒤 피해자들은 "국가 책임이 인정돼 다행이지만 피해자들이 일일이 소송할 것이 아니라"면서 "국가의 공식 사과와 피해보상 관련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송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과연 법원에서 인정한 9000만원이 국가에 다시는 이런 사건이 재발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볼 만한 금액인지, 피해가 회복되는 금액인지 당사자와 논의해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녹화 사업'은 70~80년대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생을 육군 보안사령부가 강제로 군대에 끌고 가 사상 전향을 강요하고, 학생운동 관련 첩보를 수집하는 정보원으로 활용한 정부 차원의 공작이다. 이 목사는 학생군사교육단(학군단·ROTC) 후보생이던 1983년 9월 영장 없이 507보안대로 끌려가 일주일간 고문을 당하고 동료 학생들에 대한 감시와 사상·동향 보고 등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박 목사도 같은 시기에 육군 보안사령부 분소가 있는 과천의 한 아파트로 끌려가 열흘가량 구타·고문을 당하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는 등 피해를 봤다고 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결론 짓고, 피해자 2900여명의 명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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