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실업률과 미 대선

2024-03-15 13:00:01 게재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아칸소 주지사 출신의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이 구호를 내걸고 현직 대통령이었던 공화당 조지 H. W. 부시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 몇 차례 재선에서 성공하지 못했는데 흥미롭게도 이들의 재임기간이 미국경제의 침체기와 일치한다. 경제를 망친 정부를 유권자는 엄중하게 심판했단 뜻이다. 대부분 현대 국가에서 국민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늘 경제이고, 세상만사는 경제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도 결국 경제 문제로 귀결되고 외교도 국방도 경제력에 좌우된다.

재선 성공여부와 미국 실업률 관련 높아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대의원 과반을 확보하며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전·현직 대통령이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미국 현지의 여론조사 추이로 보면 주요 접전 지역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에 밀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주요 접전지역은 네바다(선거인단 수 6명), 아리조나(11명), 위스콘신(10명), 미시건(15명), 펜실베이니아(19명), 조지아(16명) 지역이다.

미국 현직 대통령의 재선 성공과 실패 여부는 실업률과 꽤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48년 이후로 재선이 걸린 미 대선은 모두 12번 있었다. 그 중 재선에 실패한 사례는 4번 있었는데 공통점은 모두 실업률이 7% 중후반으로 높았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기침체는 미국국가경제연구국(NBER,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이 공식적으로 판정한다. NBER의 경기침체에 대한 정의는 ‘경제 전반에 걸쳐 몇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제 활동의 상당한 감소’다. 대략 2개 분기에 걸쳐 성장률이 하락할 경우 경기침체로 판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역대 사례로 봤을 때 들쭉날쭉하고 사후적이라는 문제제기를 받는다. 오히려 미국의 경기침체 여부는 실업률 지표가 상관성이 더 높다. 따라서 7%대의 높은 실업률은 경기침제를 동반했다고 볼 수 있고 ‘높은 실업률=경기침체=재선실패’의 확률을 높인다.

1948년 트루먼(실업률 3.8%), 1956년 아이젠하워(3.9%), 1964년 린든존슨(5.1%), 1972년 닉슨(4.8%), 1996년 클린턴(5.2%), 2004년 조지 W. 부시(5.4%) 등은 모두 실업률이 3~5% 중후반으로 미국의 완전고용 실업률 기준이 4%인 점을 고려하면 안정적인 실업률로 재선에 성공한 경우다. 반면 1976년 포드(7.6%), 1980년 카터(7.5%), 1992년 조지 H. W. 부시(7.6%), 2020년 트럼프(7.8%) 등은 7% 중후반의 높은 실업률로 재선에 실패한 경우다. 다만 예외는 있다. 실업률이 7% 이상으로 높았지만 1984년 레이건(7.3%)과 2012년 오바마(7.8%)는 재선에 성공했다. 이들은 정치적 인기 등을 바탕으로 고실업률의 악재를 돌파했다고 볼 수 있다.

재선에 성공한 미국의 대통령들은 모두 안정적으로 낮은 실업률 즉 안정적인 경제상황을 바탕으로 유리한 선거를 치렀다. 역대 미국 대선에서 모든 경우에 딱 들어맞는 경우는 아니지만 대부분 경제가 좋아 일자리를 구하기 쉽고 소득이 늘면 재선에 성공하고, 반대로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고 경제상황이 팍팍해지면 재선에 실패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024년 2월 기준 미국 실업률은 3.9%로 4% 이하를 기록해 경제가 상대적으로 호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바이든의 인기는 낮고 경합주에서 트럼프에 밀리고 있다.

실업률 3.9%에도 밀리는 바이든

미국 대선은 복합적인 정치 경제 사회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미국의 실업 데이터가 보여주지 못하는 ‘가려진 현실’이 있을 수 있다. 바로 미국내 러스트벨트 대졸 이하 학력과 중위 소득 이하 백인 가정으로 대표되는 미국 태생 노동자들의 ‘괜찮은 일자리’가 세계화 기간 동안 오프쇼어링 등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전체적으로 고용이 강해지면서 미국의 일자리는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해 탄탄한 상황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이들의 일자리는 줄었다.

반면 이민 등을 통해 미국에 들어온 외국태생 노동자들은 숙련 비숙련의 차이, 고임금 분야와 저임금 분야 등의 상대적 차이는 있지만 경제활동 참가율이 늘고 늘어나는 일자리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트럼프의 대선 공약인 ‘어젠다 47’에 제시된 정책들은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 '미국을 우선하는 정치'를 원하는 미국 본토박이 정서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안찬수 오피니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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