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총장 패싱, 수사 차질 빚나

2024-05-16 13:00:34 게재

돈봉투·명품백 등 수사 지휘라인 모두 교체

이창수 “법과 원칙 따라 제대로 진행될 것”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강력 비판했던 ‘총장 패싱 인사’가 현 이원석 검찰총장 임기 만료 4개월을 남긴 시점에 재현돼 ‘내로남불’ 인사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이런 검찰 고위 인사의 문제는 현 정권의 민감한 수사와 관련이 있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에 관심이 쏠린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정부 당시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 수사에 반발해 이뤄졌던 검찰 고위 인사에도 불구하고 검찰 내부에서 끝까지 수사를 밀어붙였다. 이원석 총장의 경우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등을 수사하는 수사 지휘라인이 전면 교체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새로 부임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김 여사 수사에 대한 관심을 야권 관련 수사로 희석시키지 않을까 하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16일 중앙지검으로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주요 수사팀 지휘부가 전면 교체되면서 김 여사 수사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인사와 관계없이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법과 원칙에 따라 제대로 잘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여사의 검찰 소환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기는 지금 단계에서는 어렵지만 제가 업무를 빨리 파악해서 수사에 필요한 충분한 조치들은 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 모씨의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 사건을 전주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하는 방안이 논의된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는 “제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인사와 관계없이 누가 맡더라도 사건은 제대로 수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3일 윤석열정부는 대검검사급(검사장급) 인사를 발표하면서 ‘총장 패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총장은 14일 오전 9시 5분 대검찰청 현관 앞에서 “어제 법무부의 검찰 고위 간부(검사장) 인사가 충분히 사전 조율을 거친 게 맞느냐”는 질문에 “어제 단행된 검찰 인사는…”이라고 운을 뗐다가 갑자기 침묵했다. 7초간 침묵 후 그는 “이에 대해선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말은 안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을 침묵으로 보여줬다는 게 현장 기자들은 물론 법조계의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이번 인사에스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과 1~4차장이 모두 승진 형태로 교체됐고, 검찰총장의 손발 역할을 하는 대검찰청 참모진도 7명 중 6명이 바꼈다.

이 총장이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전담 수사팀 구성을 지시한 지 11일,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이 임명된 지 엿새 만에 이뤄진 인사에서다.

법조계에서는 김 여사 수사 등을 놓고 용산과 갈등을 빚어온 이 총장을 ‘패싱’한 인사라는 해석이 나왔다. 최근 본격적으로 시작된 김 여사 수사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당장 차장검사 후속 인사와 부장검사 인사가 있을 때까지 사실상 수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선 수사팀 교체여부도 주목된다.

이 총장이 전담 수사팀을 구성한 것에 대해 오는 9월 임기 만료 이전에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돼 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이 지검장이 수사지휘부로 오면서 김 여사 소환조사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수사가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 지검장이 야권 수사에 더 집중할 가능성도 제기되기도 한다. 그는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사건을 수사했다. 또 바로 직전 근무지인 전주지검장 시절에는 문 전 대통령의 전 사위인 서 모씨의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 수사를 지휘하는 등 야당에 불편한 수사를 담당했었다.

문제는 이 지검장이 이 총장과 마찰없이 좋은 호흡을 보일지다.

일반적으로 일선청에서 하는 모든 수사는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통제를 받아야 한다. 중앙지검에서 담당하는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 민주당 돈봉투 수수 의혹 사건, 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 사건 등도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관건은 김 여사 의혹 수사다.

이 총장은 ‘김 여사 수사 방침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질문에는 “어느 검사장이 오더라도 수사팀과 뜻을 모아서 일체의 다른 고려없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인사는 인사이고 수사는 수사”라고 했다. 이는 곧바로 후배 검사들을 향한 당부이자 용산을 향한 메시지로 해석됐다. 그는 총장직 조기 사퇴설에 대해서도 “검찰총장으로서 제게 주어진 소임과 직분, 소명을 다 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처럼 이 총장이 원칙대로 수사할 뜻을 밝혔으나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수사를 지휘하던 김창진 1차장검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수사를 담당하던 고형곤 4차장검사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당분간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입장에서는 한 번은 김 여사를 부르려고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과의 마찰이 예상된다”면서도 “검찰이 (김 여사 수사와) 더불어민주당이나 이재명 대표, 문재인 정권 관련 수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한편 박성재 법무부장관은 16일 출근하면서 ‘총장 패싱 인사’에 대해 “검찰총장과 인사 다 협의했다”며 “(검찰총장의)요청 다 받아들여야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박 장관은 김 여사 수사와 관련 “검찰 인사로 김 여사 수사 끝났나”라며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선일·구본홍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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