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조선 ‘탈탄소 공동행동’ 멈췄다
미 ‘IMO 계획’ 강력 반대
‘탈탄소 조치’ 결정 1년 연기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사회의 해운·조선부문 온실가스 감축 행동을 멈춰 세웠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는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본부에서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를 열어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조치’ 채택 여부를 논의했지만 다수 회원국이 중기조치를 이행하는 결정을 1년 연기하는 방안에 투표했다. 57개국은 연기 찬성, 49개국은 반대, 21개국은 기권이었다.
미국의 해운조선 전문미디어 지캡틴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조치 이행 결정을 1년 미룬 것은 ‘국가정치와 글로벌 규제가 충돌할 때 기후행동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했다.
지캡틴은 전 세계 무역의 90%를 운송하고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3%를 차지하는 해운 산업에서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이 한층 멀고 불확실해졌다고 진단했다.
해양수산부는 18일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IMO의 중기조치 채택 결정 관련 논의가 1년 뒤로 연기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미국이 제동건 ‘탈탄소 중기조치’는 = IMO는 2023년 7월 ‘2050년 국제해운 탄소중립’ 목표를 채택하고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작업반을 운영하는 등 국가들 사이를 오가는 국제해운 분야 탈탄소 전환을 위한 규칙마련을 위해 집중했다.
특히, 2050년 목표달성을 위해 중간 과정에서 목표달성을 위한 이행과정을 점검할 수 있는 ‘중기조치’(Mid-Term Measure)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기술 성숙도 등 산업계의 여건을 감안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과도하지 않은 비용으로 중기조치가 도입되도록 논의에 적극 참여했다.
지난 4월, IMO는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에서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조치를 승인하며 10월 회의에서 합의된 내용을 이행하기 위한 최종 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합의된 중기조치 규제안에 따르면 총톤수 5000톤 이상의 국제항해 선박은 2027년 상반기부터 강화된 온실가스 집약도 기준을 만족하는 선박 연료유를 사용해야 한다.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례해 비용을 납부해야 한다.
기준은 ‘기본’ 감축목표와 ‘강화된’ 감축목표가 있다. 선박이 기본감축목표를 지키지 못하면 사용한 연료유 온실가스 집약도와 기본 감축목표 구간까지는 온실가스 배출톤당 380달러를 내야 한다. 또, 기본감축목표에서 강화된 감축목표 구간까지는 온실가스 배출톤당 100달러를 합산 부과한다.
선박이 부과된 금액을 납부하지 않고 운항을 하면 국제협약 위반으로 회원국 항구에 입항하지 못하는 항만국 통제로 출항 정지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기본목표와 강화된 목표로 나눠 부과하는 방식을 절대 배출량을 기준으로 단순히 부과하는 방식으로 계산하면 배출량 톤당 20달러에 비슷한 규모다.
IMO 논의 과정에서 작은 섬나라들은 배출량 톤당 150달러, 유럽연합은 100달러, 일본 등은 20달러, 국제해운단체는 18.75달러를 적정 금액으로 주장한 바 있다.
IMO 중기조치는 또 부과금을 기반으로 기금을 조성·운영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연간 100억달러 정도 조성될 것으로 추산된 기금은 화석연료보다 가격이 높은 저탄소·무탄소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에 보상금 등을 지급해 해운 탈탄소화 속도를 높이는데 사용하기로 했다.
해수부는 중기조치 규제를 이행하기 위해 지금까지 선박연료로 사용하고 있는 석유류 대신 온실가스 함량이 낮은 바이오혼합유, 액화천연가스(LNG), 메탄올, 암모니아 등 저탄소·무탄소 연료를 사용하는 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4월 중기조치 내용을 합의하는데 반대하며 결정과정에 불참했다.
◆미국 “해운 탈탄소 투표하면 제재하겠다” 압박 = 미국은 10월 런던에서 최종 결정을 앞두고 IMO의 중기조치 이행을 찬성하면 제재를 가하겠다며 압박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투표를 앞둔 16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서 “나는 IMO가 글로벌 탄소세를 통과시키려고 투표한다는 데 격분했다”면서 “미국은 해운에 대한 이 글로벌 신종 녹색사기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방식, 형태, 양식으로든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 션 더피 교통장관도 공동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부당한 부담을 지우거나 미국 국민의 이익을 해치는 국제 환경협정을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지캡틴에 따르면 미국은 중기조치를 지지하는 국가의 선박에 대한 경쟁제한 행위 조사 및 규제, 해당 국가에 등록된 선박의 미국 항만 입항 제한, 비자정책 강화 등을 포함한 대응도 검토했다.
특히 △선원 비자 관련 수수료 인상 △재면접 의무화 △쿼터 조정 등을 예고했고, △미국 정부 조달사업(신규 상선 건조, LNG 터미널, 해양 인프라 등)에 대한 상업적 제재 △탈탄소(넷제로) 찬성국 선박에 대한 추가 항만요금 부과 △기후정책을 주도하는 외국 공무원에 대한 제재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