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주가 만난 '비즈니스 한류의 개척자들'

"위기의 땅이 바로 기회가 넘실거리는 블루오션"

2013-08-05 08:46:21 게재

중동건설 '헝그리 정신'의 산 증인 카타르 도하 이말재 사장

혹시 일자리를 찾고 계십니까. 그런 당신은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닌지요. 눈과 귀를 활짝 열고 글로벌 무대를 살펴보십시오. 지구촌 곳곳에서 '비즈니스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개척자들이 많습니다. 그 생생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실래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더군요.

"위기의 땅이 바로 기회가 넘실거리는 블루오션"

만물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안정된 상태로 바뀔 때 큰 에너지를 방출한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보다 안정적인 물질로 바뀌면서 막대한 에너지와 빛을 내뿜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인간사회에도 이런 자연법칙은 똑같이 적용된다. 사회변혁의 혼돈 속에서 사람들은 떼돈도 벌고, 벼락출세도 하고, 개천에서 용도 나고 하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카타르 19년을 포함, 모두 30년째 중동생활을 하고 있는 이말재 사장은 중동 격변의 과정에서 하나하나 사업의 기틀을 다진 사람이다. 이 사장이 들고 다니는 명함은 모두 다섯 종류다. 코리안 가든 레스토랑 사장, 유나이티드 아랍 스틸 대표, 퀄리티 이큅먼트 대표, 재 카타르 한인회장, 주카타르 재외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걸프전이 터지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철수하는 마당에 식당을 계속하며 큰돈을 벌었고, 모래바람 날리는 뜨거운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현장식당(함바집)을 차려 또 한 번 대박을 터트렸다. 쉼 없이 진행되는 중동건설의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철공소와 장비대여 분야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이 사장은 70~80년대 중동건설 '헝그리 정신'의 산 증인이다. 그는 지금도 힘주어 말한다.

"헝그리 정신만 있으면 됩니다. 돈을 벌고 싶으면 지금 당장 리비아로, 이라크로, 이집트로 달려가십시오. 무너지고, 부서지고, 혼란스런 나라엔 반드시 돈이 땅에 굴러다니게 마련이에요. 위기가 있는 땅이 곧 블루오션입니다."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3개 회사 중 하나인 '유나이티드 아랍 스틸'을 찾은 이말재 사장이 작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세계적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철공기술과 정확한 납기일 때문에 카타르 각지의 건설 현장 및 공공기관 등으로부터 제품 주문이 쏟아지고 있는 곳이다. >

중동의 카타르는 수도인 도하만 살짝 벗어나면 곧바로 모래밭이다.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은 거대한 송전탑들뿐. 카타르는 경기도 면적만한 크기에 인구 170만 정도의 작은 나라다. 그 손바닥 만한 모래사막이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3위인 26조㎡, 석유 276억 배럴을 품고 있다. 검은 황금이 그처럼 버려진 사막 아래 감추어져 있음을 누가 알았으랴.

이말재 사장은 카타르를 닮았다. 오일 발견 이전의 카타르처럼 젊은 시절 그에겐 세상에 내세울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사장은 부산 영도에서 6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방끈은 야간 공고를 다니다가 중퇴를 한 게 전부다. 젊은 시절 인천에서 철공소를 차렸다가 일찌감치 들어먹었다. 지하철 공사장 막일 자리를 전전하기도 했다. 명동에서 한때 포장마차를 차리기도 했지만 변변치 못했다. 이 사장이 스스로를 발견하고 개척한 곳은 열사의 사막이었다. 우리나라 고도성장의 밑거름을 마련한 중동 건설현장과 미사일이 날아드는 걸프전 상황 등에서 그는 자신의 놀라운 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사장의 차를 타고 수도 도하로부터 북쪽으로 80㎞ 정도 달렸을까. 시뻘건 불기둥을 내뿜는 거대한 굴뚝들이 허허로운 모래벌판 위에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시뻘건 화염을 내뿜는 불기둥들이 앞으로는 하얀 모래사막을 안고, 등 뒤로는 파란 바다를 이고 있는 모습이 강렬한 색감의 대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유명한 라스 라판 공업단지예요. 카타르 부의 원천인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현장이지요. 이곳에 있는 라스라판 복합화력발전소는 우리나라 현대건설이 만든 겁니다. 복합화력발전소는 2008년 5월 시공을 해서 3년 동안 공사를 했어요. 공사기간 동안 이곳에서 일하던 현대건설 기술자 80여명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현장식당을 제가 맡아서 했습니다."

공사장의 현장식당은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리는 곳이다. 이역만리 해외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노동자들에겐 김치와 고추장 등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소일 뿐 아니라, 술을 구하기 힘든 중동지역에선 동료들끼리 편하게 소주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카타르는 물론 예멘과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전역을 안방과 건넌방 오가는 것처럼 뛰어다니며 현장식당 사업을 벌였지요. 예멘의 아덴 항만공사 현장 때는 무려 4000명 인부들에게 3년 동안 세끼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60~70명의 직원들이 매달려 작전을 펼치듯 음식준비를 했지요. 투르크메니스탄 정유공장 건설 현장에서는 2500여명의 숙식을 책임졌어요. 가장 힘든 일은 배추와 무를 구하는 일이었어요. 한국 인부들 식탁에 김치 빠지면 안 되잖아요. 투르크메니스탄 현장에서는 배추와 무를 구할 곳이 없었습니다. 궁리 끝에 투르크메니스탄 농대교수에게 무씨를 구해다 주고 키워달라고 부탁을 해서 김치를 깍두기를 담그기도 했답니다."



이 회장이 오던 길로 다시 차를 돌린다. 10여분쯤 되짚어 갔을까. 알콜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도로 쪽으로 차가 빠진다. 알콜의 거리엔 한낮의 햇볕이 워낙 뜨겁기 때문인지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회장은 조용한 골목의 이층짜리 빌라 앞에서 차를 세웠다.

"라스 라판 공단에서 일하는 우리 기술자들이 생활하는 현장식당 겸 게스트 하우스입니다. 우리 기술자 70여명이 먹고 자고 하는 곳이지요. 이 집을 포함해서 주변의 빌라 9채를 빌려서 사용하고 있어요. 메사이드 공단 가는 길목에 있는 알와크라시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모두 14채의 현장식당 겸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지요."
 

<현대건설이 지은 라스라판 복합화력발전소 인근에 있는 이말재 사장의 게스트하우스 주방에서 직원들이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한국 기술자들이 먹을 만두를 빚고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인상 좋아 보이는 퉁퉁한 아주머니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 사장의 알콜시 현장식당 겸 게스트하우스의 주방을 5년 동안 지켜온 천선희씨였다. 주방에서는 네팔출신 직원 10여명이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저녁 식사에 내놓을 만두를 빚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본채 건물 일층에 있는 식당에서 이 사장과 식사를 했다. 방금 빚은 만두가 무럭무럭 김을 내면서 상위로 올라온다. 배추김치, 오이무침, 열무김치, 야채 전, 과일 샐러드 등 한국의 어느 식당 부럽지 않은 깔끔한 상차림이다. 그날 주 메뉴는 한국의 전통 영양탕 조리법으로 만들었다는 양고기 탕. 깊은 맛이 우러나는 국물에 쫄깃한 육질의 고기와 우거지, 대파, 고춧가루를 넉넉하게 집어넣고 끌인 얼큰한 탕이었다. 통으로 넣은 들깨가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또한 일품이었다.

도하 중심가인 웨스트 베이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알 사아드 스트리트에 위치한 한 한국음식점. 날렵한 청기와지붕을 한 한국식 대문을 들어서니 제법 아담한 정원이 나타난다. 한꺼번에 200명 정도의 손님을 받을 수 있는 규모의 식당이라고 했다. 이말재 회장이 거느린 기업들의 지주회사격인 곳이 바로 이곳 코리안가든 레스토랑이다.

본채 홀에는 막 저녁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홀 한 가운데 기둥에 사진을 곁들인 메뉴판이 붙어 있다. 해물전골, 황태구이, 장어구이, 낙지볶음, 매운 갈비찜, 갈치조림, 냄비오뎅, 콩국수….
홀 안쪽으로 이어진 복도 좌우로 별실이 이어져 있었다. 그중 한 방에서 이 회장과 저녁상을 마주했다. 마침 새로 들어온 주꾸미가 있으니 맛을 보라고 권한다. 시뻘건 고춧가루 양념으로 버무린 주꾸미를 내왔다. 한국식 불판위에 주꾸미를 굽는다. 이런 자리에 어찌 술 한 잔이 빠질 것인가. 이 회장과 권 커니 잣 커니 소주잔을 기울인다. 지난 30여 년 동안 서리서리 묶어 두었던 지난 삶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제가 사우디아라비아 행 비행기를 탈 때 큰 딸이 초등학교 3학년, 작은 딸이 1학년이었어요. 등교 하는 두 아이에게 학교 잘 다녀 오거라 하고 인사를 하고는 5년 동안 보지를 못했습니다.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고 공항으로 나갔으니까요. 비행기를 타기 직전 아내에게 전화로 중동에 간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아내가 까무러치려고 하더군요."

이 대목에서 갑자기 이 회장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본다. 젖어드는 눈시울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라이프주택의 담맘 건설현장 작업반장으로 배치를 받았어요. 이후 카미스 무시야트를 거쳐 리야드 현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참 열심히 일했어요. 세상이 무정한 것 같지만 성심껏 산 사람에겐 반드시 보상이 주어지더라고요. 1986년인가 87년인가 노동부장관상을 받았습니다."

한 인간의 삶을 바꾸는 건 때론 운명이고 때론 인연이다. 리야드에서 일하던 이 회장은 우연히 대사관에 경비 자리가 하나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때 평소 알고 지내던 대사관 직원을 통해 그 일자리를 얻어냈고, 이후 대사관 근무를 하면서 맺은 인연이 이 회장 사업을 하는데 큰 밑천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중동지역의 대사관을 드나드는 분들은 건설사 관계자들이 대부분입니다. 6년 가까이 대사관 정문 경비를 하면서 공관을 찾아오는 분들에게 깍듯하게 인사하고, 궂은일들도 도와드리고 그랬습니다. 그때 쌓아놓은 인간관계는 나중에 제가 중동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두고두고 큰 밑천이 됐지요."

대사관 취업과 함께 생활이 안정되면서 한국의 아내 윤정씨와 두 딸을 리야드로 불러들였다. 인사도 없이 고국을 떠나온 지 5년 여 만의 재회였다. 아내가 들어온 지 얼마 후 리야드 시내에서 한국식당 겸 당구장을 운영하던 사람이 가게를 내놓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업 삼아 해보자는 생각으로 인수를 했다. 그런데 식당을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1차 걸프전이 터졌다. 이라크 스커드 미사일이 리야드 인근까지 날아 왔다. 밤만 되면 사막으로 피신을 나가야 했다.

위기는 곧 기회다. 위기를 피하면 안전할지언정,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회는 놓칠 수밖에 없다. 이른바 '고 위험, 고 수익'은 투자의 불문율 같은 것. 이 회장에게 걸프전은 사업의 기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비쳐졌다.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서둘러 한국으로 철수를 했어요. 대사관 직원과 기업의 필수 요원들만 남아서 전쟁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원래 사우디엔 놀만한 문화공간이 없어요. 거기다가 전쟁까지 났으니 남아있던 사람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었어요. 우리 식당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어 소식을 나누고 식사도 하고는 했답니다. 그땐 정말 돈을 긁어모았지요. 사업이 커지면서 대사관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삶은 인연의 얽힘이다. 인적 네트워크는 보이지 않는 재산일 수밖에 없다. 이말재 회장은 자신이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덕을 본 것은 바로 인적 네트워크였다고 고백했다. 대사관에 근무할 때 마음을 얻었던 기업 관계자들이 그를 믿고 이런 저런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이 회장이 건축 자재상에 이어 현장식당 사업과 장비 대여업, 철공사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된 계기였다.

"1995년 쯤 이었을 겁니다. 카타르에서 현대건설이 최초로 가스플랜트 공사를 수주했어요. 그 때 현대건설 자재담당을 하던 분이 제가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카타르로 와서 자재 쪽으로 사업의 기반을 찾아보는 게 어떠냐고 권하더군요. 그래서 부랴부랴 사우디에서 카타르로 건너왔지요."

자재 사업 쪽을 알아보기 위해 이 회장이 도하의 한 호텔에서 묵고 있을 때였다. 현대건설의 지인이 이 회장을 찾아와 하소연을 했다. 현장식당 업자가 지나칠 정도로 높은 단가를 요구한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카타르에서 현장식당을 규모 있게 하는 사람은 그 분 뿐이었어요. 갑작스럽게 현대건설이 큰 공사를 맡아서 들어오니까 자기 말고 누가 있겠느냐면서 배짱을 부린 겁니다. 현대건설 담당자가 당신이 좀 어떻게 해 볼 수 없느냐며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당시 저는 리야드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으니까 해볼 만 한 일이었지요. 반값으로 단가를 낮추어 계약을 해 주었습니다. 현장식당 사업으로 진출을 하는 시발점이었지요. 그때부터 수천 명에서 많게는 1만여 명의 인부들이 3~4년 동안 공사를 진행하는 현장에서 현장식당 사업을 줄줄이 따냈답니다. 정말 고된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일에 매달렸던 시기였지요."

그렇다고 이 회장이 현장식당 입찰 때마다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2005년 현대건설은 이란에서 총16억 달러규모의 사우스파 가스처리시설 플랜트 공사를 수주한다. 세계 플랜트 건설 역사에 기록될 만한 큰 규모의 공사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이곳 현장식당 사업 경쟁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본다.

"워낙 큰 규모의 공사였어요. 그런 곳에 현장식당 말고도 얼마나 다른 사업 거리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란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집요하게 살폈지요. 그러다보니 장비대여 거간사업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공사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장비들을 그때그때 조달해주는 일이지요."

현대건설과 장비대여 업체들 사이를 오가며 크레인과 지게차, 크레인, 발전기 등을 현장으로 공급해주는 일을 시작했다. 현장식당에 이어 장비대여 거간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 회장이 '퀄리티 이큅먼트 대표'라는 또 다른 명함을 갖게되는 순간이었다.

"카타르는 지금 돈으로 사막을 덮으려고 하는 나라 같아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고 하는 나라입니다. 나라 전체가 거대한 건설현장입니다. 2022년 월드컵을 대비해서 어마어마한 공사판을 벌이고 있어요. 스타디움 9개, 호텔 70개, 지하철 공사, 승용차 2000대 규모의 지하주차 공원 건설 등 현기증 날 정도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사들이 줄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요즘 정보기술로 무장한 우리 젊은 사람들이 와서 찾아보면 무궁한 기회의 땅이 될 겁니다."

코리안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으로 돌아왔더니 이 사장의 어린 손자 영린과 손녀 애린이 뛰어와 할아버지의 품으로 파고든다. 매주 금요일에만 준비하는 특별 메뉴인 뷔페식을 즐기기 위해 온 가족이 모였다고 했다. 이 사장의 부인인 윤정 여사와 딸 이윤희, 사위 조광현 등이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한다. 나이 들면 다들 고향가고 싶다는 데 나는 그렇지 않아요. 여기가 나의 새로운 고향입니다. 여기서 뼈를 묻을 거예요. 이말재 사장의 말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언론인·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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