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주가 만난 '비즈니스 한류의 개척자들'

"검은 대륙 닦고 조이고 기름칠합니다"

2013-09-23 17:12:58 게재

나이지리아의 '영원한 대우맨' 조홍선 대우오토랜드 사장

혹시 일자리를 찾고 계십니까. 그런 당신은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닌지요. 눈과 귀를 활짝 열고 글로벌 무대를 살펴보십시오. 지구촌 곳곳에서 '비즈니스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개척자들이 많습니다. 그 생생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실래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더군요.

 

 

꽃은 한번 진다고 영원히 죽는 게 아니다. 꽃은 지면서 자신의 씨앗을 천지사방으로 흩날리고, 그 씨앗들은 어딘가에서 새로운 싹을 틔운다.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은 한 시대를 풍미한, 화려한 꽃이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 방침에 따라 대우맨들은 지구촌 곳곳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1997년 시작된 외환위기는 이른바 대우사태를 불러왔다. 지구촌 곳곳에 화려한 꽃을 피웠던 대우는 쓸쓸히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영원히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대우자동차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프리카 대륙 한 구석에서 꿋꿋하게 그 이름과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지리아 경제수도 라고스에서 우리나라 버스와 승용차를 수입하면서 정비회사까지 운영하고 있는 조홍선 대우 오토랜드 나이지리아 Ltd. 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나이지리아 대우 법인장으로 근무하던 중 대우사태를 맞은 조 사장은 2004년 2월 대우가 문을 닫은 이후에도 여전히 대우 간판을 내걸고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자칭 타칭 '영원한 대우맨' 이었다.

창업 10년째인 대우 오토랜드는 현지인 80여명을 고용하고 연간매출 1000만 달러 이상을 올리는 알짜기업으로 성장했다. 조 사장은 대우 오토랜드 이외에도 비닐 포장제 생산공장인 썬(SSUN INTEGRATED SERVICES)도 운영하고 있다. 100여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썬은 아프리카 최대 가발생산 업체인 솔피아에 가발을 포장하는 PVC 비닐백을 만들어 공급해 연간 3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어두운 나이지리아의 밤거리를 밝히는 태양광 가로등 사업도 상당한 진척을 이루고 있다. 한 마디로 조 사장은 나이지리아를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어둠까지 밝히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아프리카 최대의 상업도시인 라고스는 1600만 명의 인구와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을 안은 채 출렁거리고 있었다. 라고스 이케자 지역의 옥바 산업단지를 관통하는 카나우드 메탈 로드 대로변. 높다란 담장 위엔 'DAEWOO AUTOLAND'란 큼지막한 입간판이 우뚝 솟아 있었다. 아프리카 땅에서 대우의 세계경영 불씨를 이어가고 있는 조 사장의 일터였다.
 


<조홍선 대우 오토랜드 사장이 라고스 버스 터미널에서 차량점검을 하고 있는 직원들을 돌아보고 있다. 대우 오토랜드 정비공들은 라고스 시내 9개 버스 터미널에서 정규노선 버스 450대에 대한 정비를 담당하고 있다.>

사장실은 아주 검소했다. 그리 크지 않은 책상 하나에 회의용 테이블과 응접세트 등으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아, 그런데 저게 누군가. 중앙벽면의 액자 속에 들어 있는 저 사람. 깔끔하게 빗어 넘긴 은발에 시원한 이마, 검은 뿔테 안경…. 대우그룹 임직원 30여만 명을 이끌며 세계경영을 주도하던 '시대의 풍운아' 김우중 전 회장이 환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 세계 기업 중에서 아직도 김 회장님 사진을 걸어놓고 있는 기업은 여기 뿐 일겁니다. 저는 대우자동차 법인의 청산 절차를 마무리한 직후 개인사업을 시작했어요. 2004년 2월 이곳에 대우 오토랜드라는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대우 유니폼을 입은 정비공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차분하면서도 기강이 있는 모습이었다.
 


<대부분 한국으로 기술연수를 다녀온 베테랑인 대우 오토랜드 정비공들이 조홍선 사장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우리 직원들은 나이지리아뿐 아니라 아프리카 어디에 내놓아도 경쟁력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처음 이곳에 부임했을 때 70% 이상의 직원들이 절도를 했어요. 저는 직원들에게 '정직하면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각인시켰어요. 정직한 직원들에겐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을 해주었고, 도둑질이나 거짓을 행한 직원들은 가차 없이 해고를 했습니다. 어느 순간 절도 사건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더라고요. 작년 10월에 부품 재고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5년 만에 전수조사를 했어요. 놀랍게도 결손이 0.2%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장장 9㎞나 되는 긴 다리가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가르고 있었다. 라고스 시내 본토에서 조 회장의 집이 있는 빅토리아섬을 연결하는 써드 메인랜드 브리지다. 라고스 본토 쪽 다리 양편으로 거대한 슬럼 수상촌이 형성돼 있었다. 해안을 따라 게딱지처럼 들러붙어 있는 빈민촌은 인구 1600만 명인 대도시 라고스가 앓고 있는 거대한 부스럼처럼 보였다.

고급 주택가들이 줄지어 서 있는 레끼 지역의 한 저택 앞에선 차가 경적을 울린다. 흑인 문지기가 냉큼 육중한 철문을 열어준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현지인 가정부가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며 맞는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고, 편안한 반바지로 갈아입은 뒤 조 사장이 풀어놓는 긴 인생 스토리를 듣기 시작했다.

조 사장은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80년 성균관대 무역학과에 들어간 그는 한동안 행정고시를 준비했지만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1986년 7월 대우에 입사를 했다. 대우가 월드카 컨셉으로 내놓은 르망을 앞세워 세계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처음에 대우자동차 수출부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제가 담당한 일은 승용차가 아닌 버스 관련 업무였어요. 버스는 기피부서였어요. 어떤 이들은 버스 담당이라고 하면 한 단계 낮춰 보기도 했어요. 승용차는 수출규모가 크고, 폼이 나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주 재미있게 했어요."

해외지사 근무는 대부분 직장인들이 동경하는 꿈이다. 조 사장에게도 해외 근무 기회가 주어졌다. 입사 11년 만인 97년의 일이었다. 95년 과장 진급을 하고, 96년 부장 혹은 고참 차장들이 맡는 팀장 자리를 꿰어 차고, 곧바로 1년 만에 또 다시 맞은 호사였다. 모두가 선호하는 미국 남서부 판매 법인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용꼬리보다는 뱀 머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아프리카를 자원했다.

97년 2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땅을 밟았다. 혹독한 신고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프리카 중에서도 진짜 아프리카에 왔구나 하는 사실을 실감케 하는 살벌한 일들이 연일 벌어졌다.

"전임 법인장의 첫 업무 인수인계 품목이 자동소총 4정과 20발들이 탄창 4개, 실탄 200발, 가스총 10정, 가스총 탄알 한 무더기 였습니다. 그래서 난 군대는 갔다 왔지만 총 한방 안 쏘는 부대에서 근무했다, 난 총은 사용하지 않겠다, 하고는 총을 분해해서 창고에 집어넣어 버렸어요. 부임한 지 두 달 째 되던 날인 4월 24일 밤에 강도가 들었어요. 지붕을 뚫고 회사 안으로 잠입을 했습니다. 금고에 있던 120만 나이라(약 1만 5000달러)를 싹 털어가 버렸어요. 다음날이 월급날이라 금고에 현찰이 많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범행을 한 겁니다."

지나친 과속 탓이었을까. 아니면 시대적 불운이었을까. 신화적 질주를 계속하던 대우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1997년 말 시작된 외환위기 쓰나미를 끝내 넘지 못한 것이다. 조 사장처럼 지구촌 오지에서 수출 최전선에서 뛰고 있던 대우맨들은 갑자기 회사 간판을 내린다는 소식에 아연실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마침 대우차를 인수한 GM에서 조 사장에게 스카우트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나 한번 대우맨은 영원한 대우맨! 조 사장은 '대우'라는 이름으로 승부를 걸어보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더군다나 나이지리아는 한반도 넓이의 4.2배인 92만 4천㎢의 영토를 자랑하는 대국이었다. 인구는 아프리카 최대인 1억 7000만. 확인된 원유 매장량만 총 372억 배럴로 세계 8위에 올라 있으며, 천연가스 매장량 역시 세계 8위인 182조cf(큐빅 피트)를 자랑한다. 아프리카 최대의 구매력을 가진 나라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천연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수 있는 매력적인 나라였다.

"나이지이라에서는 대우 브랜드의 힘이 어마어마 합니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대우 오토랜드'라는 자동차 판매 회사를 차렸어요. 당시 제가 손에 쥔 거라고는 대우 퇴직금 8500만원 뿐이었습니다. 대우라는 브랜드와 그동안 제가 쌓아놓은 신뢰를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지요."
 


<라고스 시내의 한 터미널을 가득 메운 노란 승합차들은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이다. 유럽에서 폐차 직전에 수입한 승합차들이다.>

어림으로 100여대의 버스가 정연하게 세워져 있었다. 산뜻한 빨간 색 옷을 입은 버스들의 머리엔 대우버스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라고스 주정부 산하의 '락버스 애셋 매니지먼트 Ltd.(LAGBUS Assets Management Ltd.)'에서 운영하는 버스 터미널이다. 2008년 조 사장이 대우버스 200대를 라도스주에 납품하면서 설립된 회사다. 버스 터미널 한쪽에서는 대우 유니폼을 입은 현지인 정비공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라고스 시내에 모두 9개 버스터미널이 있습니다. 이곳은 그중에서 가장 큰 곳이에요. 이곳에만 우리 직원 26명이 나와서 버스 정비를 담당하고 있어요. 나머지 8군데에는 모두 22명이 나가 있습니다. 여기에 파견된 우리 정비공들은 대부분 한국으로 기술연수를 다녀온 베테랑들입니다. 울산 대우버스공장과 인천의 두산엔진 등을 2주 정도 돌며 기술교육을 받은 친구들이지요.

우리 정비공들이 하는 기본적인 일은 정기점검과 일반수리입니다. 1만㎞를 뛸 때마다 엔진오일과 오일필터, 연료필터를 갈도록 하고 있어요. 하루 15대 정도의 버스가 정기점검 및 일반수리를 받기 위해 들어옵니다. 물론 고장으로 인해 들어오는 버스들도 있지요.

대부분 아프리카 나라에서 운행하는 버스들은 1~2년이면 다 퍼집니다. 정비를 제대로 안 해서 그래요. 더군다나 부품 공급도 제대로 안 되는 실정이지요. 그들이 하기 어려운 정비 서비스를 우리가 맡아서 해주는 거지요. 정비만 잘하면 다른 나라에서 1년 쓰는 거 10년을 쓰게 할 수 있어요."
 


<파인애플과 망고 바나나 등을 파는 라고스 거리의 행상.>

퇴근 길 조 사장이 대형 쇼핑센터로 들어선다. 아프리카 소매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남아공 소매유통체인인 숍라이트(Shoprite)다. 과일과 고기, 맥주 등을 카트에 주섬주섬 싣더니 인도미(Indomie)라는 현지 라면도 한 박스와 종이컵도 챙긴다.
 


<라고스 시민들이 유일한 휴양지인 바비치 해안을 산책하고 있다.>

"이곳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입니다. 인도계 회사에서 만드는 라면이에요. 오늘이 우리 한인교회 32돌 생일입니다. 축하잔치 끝마치고 동포들과 함께 근처 고아원에 갔다가 줄 물건입니다."

숍라이트는 쇼핑센터 뿐 아니라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서점, 음식점, 잡화점들이 함께 들어선 복합 쇼핑몰이다. 쇼핑을 마친 뒤 중앙 홀로 빠져 나오는데 영화관 입구의 한 가게에 바글바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미국계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전문점인 '콜드스톤 크리머리' 앞의 풍경이었다.

"이곳 아이스크림 값은 한국의 2~3배나 됩니다. 그래도 달콤한 아이스크림 맛을 처음 본 손님들이 저렇게 몰려들고 있어요. 우리나라 아이스크림 기계 몇 대 들여와서 팔면 장사 될 거예요. 어디 아이스크림뿐이겠습니까. 인구가 무려 1억 7000만 명이나 되는 나라입니다. 치안이나 사회적 여건이 좋지 않지만 고생할 각오만 한다면 정말 무궁한 기회의 땅입니다. 컴퓨터 게임시장과 정보기술(IT), 문화 등 분야는 정말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미개척지나 다름없습니다. 언젠가 빵 터질 거예요."

쇼핑을 마치고 나오니 라고스 거리엔 두툼한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의 중심부인데도 가로등들은 대부분 꺼져 있었다.

"저 어두운 나아지리아의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싶어요. 제가 태양광 가로등 사업을 하려는 이유입니다. 많은 주에 샘플을 설치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조 사장 집에 도착하니 그 집 앞은 대낮처럼 환했다. 조 사장이 설치한 태양광 가로등 덕이었다. 한 낮에 철철 넘치는 태양 빛을 담뿍 저장했다가 밤의 어둠을 밝히고 있는 것이었다. 비즈니스의 요체는 어느 한 쪽에 넘치는 물건 혹은 서비스를 그것이 부족한 다른 장소 혹은 시간대로 옮겨다가 파는 일이다. 그게 바로 돈도 벌고 사회발전에도 이바지하는 길이다. '영원한 대우맨' 조홍선 사장은 나이지리아에서 마당 쓸고 돈 줍는 상생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언론인·오지여행가 sangjo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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