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주가 만난 '비즈니스 한류의 개척자들'

"최초의 가발전문매장으로 아프리카 여심 꽉 잡았어요"

2013-09-30 17:24:10 게재

짐바브웨·잠비아의 김근욱 소지키패션스 대표

짐바브웨 시장에 신선한 물류혁신… 전문화·체인화·정보화 도입 '대박'

혹시 일자리를 찾고 계십니까. 그런 당신은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닌지요. 눈과 귀를 활짝 열고 글로벌 무대를 살펴보십시오. 지구촌 곳곳에서 '비즈니스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개척자들이 많습니다. 그 생생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실래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더군요.

 

도로변 자카란다 나무들이 선정적인 진보랏빛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달콤한 꽃향기가 바람 속에 진하게 흩날린다. 짐바브웨의 10월은 꽃피는 봄이다. 봄의 정령이 도시 전체에 마술이라도 걸어놓은 걸까.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가 아른아른 춘몽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때 차 안 CD에서 흘러나오는 생뚱한 노래 한 가락.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 가라하네."

탈속의 염원을 담은 가사내용은 물론 처연한 곡조까지, 강원도 산사에서 출가를 고민하는 처사의 방에서나 흘러나올 법한 노래다. 그런 노래가 아프리카 땅 하라레의 도심을 달리는 차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법능스님의 노래예요. 80년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광주출정가'를 불렀던 분이지요. 전남대 국악과 출신인데 민중가수를 하다가 출가를 하셨어요. 애석하게도 얼마 전 타계 하셨습니다. 법능스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하고 편해집니다."

1억 6000만 원짜리 하얀 색 랜드 크루저 운전석에 앉아 가수 소개를 하는 이는 김근욱(59) 사장이다. 짐바브웨 가발유통업체인 소지키 패션스(SOJIKI FASHIONS)와 잠비아 소재의 가발 생산공장인 사나그룹(SANA GROUP)을 거느리고 있는 동포 기업가다. 두 회사 직원을 합하면 300여 명이 되고, 이들은 연간 1600만 달러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김 사장은 짐바브웨 한인회장과 짐바브웨 기아대책기구(JFHI) 고문까지 맡고 있었다. 불교신자이면서도 기독교계 비정부기구(NGO)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물론 선교사들 후원을 하는 데도 가장 큰 손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하라레 다운타운에 위치한 김근욱 사장의 가발전문 매장에서 젊은 여성들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차가 멈춘 곳은 하라레 다운타운의 한 가운데인 유니온 애비뉴 앙가와 스트리트였다. 김 사장이 짐바브웨에 가지고 있는 20개 가발가게 중 1호점인 오뜨레 매장이었다. 매장 안에는 각양각색의 가발들이 사방 벽 가득 전시돼 있었다. 대부분 젊은 여성들인 고객들로 매장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매장 안쪽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는 작은 사무실이 있었다. 매출 장부를 들여다보는 김 사장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흑인 여성들은 왜 가발을 쓰나요."

"이곳 사람들은 모두 곱슬머리입니다. 그냥 놔두면 돌돌 말리거나 심한 경우 두피를 파고 들어갑니다. 아프기까지 하지요. 머리카락이 얇아서 펴려고 하면 끊어져 버려요. 그래서 머리를 짧게 자른 뒤 거기에 가발을 땋아 붙입니다. 두피 쪽으로 파고드는 모발을 가발이 밖으로 잡아 당겨주는 역할을 하는 거지요. 가발은 단순한 치장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 여인들에게 젖가슴 보여 줄래, 맨 머리 보여 줄래, 양자택일 하라고 하면 젖가슴 보여준다고 할 정도입니다. 맨 머리에 대한 콤플렉스가 그만큼 크다는 거지요."

"가발을 왜 이렇게 많이 사나요. 옷 갈아입듯 매일 다른 것으로 바꿔서 착용하나요."

"가발은 모자처럼 쓰고 벗는 통 가발과 기존 모발에 붙이는 위빙(weaving) 등 두 종류로 나뉩니다. 통 가발 비율은 1% 정도도 안 됩니다. 대개 위빙을 사용하는 데 웬만한 직장여성들은 2주에 한 번 정도 바꿉니다. 위빙 가발은 한번 착용하면 머리를 감을 수가 없어요. 원래 머리에다가 가발을 한 가닥 한 가닥 땋아 붙이기 때문에 머리를 감으면 다 풀어지지요. 그렇다고 너무 오래 쓰면 냄새 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끼니는 걸러도 가발은 갈아줘야 합니다. 이곳 사람들에겐 중요한 생필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생활비에서 가발을 사는데 지출하는 돈이 꽤 많겠네요. 가발 하나 가격이 얼마나 하나요."
 


<아프리카 여성들은 2주에 한 번 정도 가발을 바꿔 쓴다. 가발은 의식주의 주요항목을 차지하는 생필품이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 하나 해 드릴까요. 한 때 가발 하나에 20조 짐바브웨 달러까지 치솟은 적이 있어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물가가 매년 1000만% 이상 뛰었어요. 물건 가격표를 하루 세 번 바꿀 때도 있었어요. 가발의 경우는 우리 가게가 시장가격의 기준을 정했습니다. 다른 잡화점 직원들이 하루 몇 번씩 우리 가게로 와서는 가격표를 보고 갔으니까요. 당시엔 100조, 50조, 20조, 10조짜리 화폐가 통용됐어요. 은행 전산망에 숫자를 다 담지 못할 정도로 계산 단위가 늘어났습니다. 쇼핑 한번 하려면 트럭으로 돈을 실어 와야 할 정도였어요. 그나마 가게에 살 물건도 거의 없었어요. 그때 우리 동포들끼리 대사관을 통해 라면과 쌀, 설탕, 식용유 등 생필품을 조달하기도 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부터 컨테이너로 실어왔지요. 짐바브웨 정부는 결국 2009년 4월부터 짐바브웨 달러를 폐지하고 미국달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물류와 유통은 돈이다. 선진국들의 상권은 이미 대형백화점과 대형마트 및 아웃렛, 대형 전문매장 등이 시장을 장악한 지 오래다. 타이어와 신발, 의류 등 각종 대규모 전문매장 혹은 체인점들이 곳곳에 우후죽순 격으로 들어서고 있다. 물류와 유통의 현대화, 전문화는 곧바로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김 사장의 탁월한 사업가적 감각이 아프리카에서 처음 들여다본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하라레 다운타운 남쪽 끝머리에 해당하는 그라나다 사이드 지역. 정연하게 정리된 구역별로 소규모 공장들이 들어서 있었다. 김 사장이 그 중 한 건물로 차를 몰고 들어선다. 단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앞에는 대형 컨테이너를 적재한 대형트럭들이 주차돼 있었다.

"우리 회사 물류창고예요. 1500㎡ 정도 됩니다. 40피트 컨테이너 10개 분량 정도를 소화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창고 안으로 들어서니 가발을 담은 박스들이 천장 높이까지 빼곡히 쌓여 있었다. 후덕한 인상을 한 초로의 한국인 부인과 젊은 백인 남자가 현지인들과 섞여 일을 하다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제 아내 장성자 여사와 맏사위인 캘립 스왈츠입니다. 장모와 사위 두 사람이 오전마다 이곳에서 전국 20개 매장으로 나가는 물건들을 배송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스왈츠는 고등학교 때부터 큰딸 소이를 쫓아다니던 친군데 결혼까지 했습니다."

"사장님은 가발 유통사업과 생산 사업을 모두 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 비중이 더 큰가요."

"가발생산은 이제 겨우 1년 반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그에 비해 유통은 올해로 10년째입니다. 이곳 가발생산 사업은 중국과 레바논, 한국인이 주도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나이지리아의 린다와 케냐의 앤젤스 등 우리 동포들이 생산하는 가발제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가발을 하는 한국인들 중 유통 쪽으로 사업을 키운 건 제가 처음입니다."

"무엇 때문에 유통분야에 주목을 하셨나요."

"유통 즉 물류는 돈입니다. 세계경제의 성장이냐 퇴보냐를 가르는 요인이 뭡니까. 바로 원자재 가격과 더불어 물류비용 그 방향을 좌우합니다. 가발은 아프리카의 주요 생필품 중 하나인데 그 물류망이 확보돼 있지 않다는 점이 제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아, 저 유통망을 체계화 시키면 돈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거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인지 감이 잘 안 옵니다."

"한 마디로 가발 유통시장에 처음으로 전문화와 체인화, 정보화를 도입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쓰고 다니는 가발인데도 제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전문매장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잡화점에서 다른 물건들과 함께 취급을 했을 뿐입니다. 보따리 장사 수준이었던 거지요. 그런데 제가 가발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매장을 20곳이나 열었어요. 하라레에 14곳, 제2도시인 남쪽 블라와요에 4곳, 북쪽 우타레 1곳, 서쪽 치퉁기자 1곳입니다. 우리 매장에 오면 상품 종류도 많고, 가격도 싸고, 신상품도 가장 빨리 들어오고 하니까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할 수밖에요. 선택과 집중 작전이 성공을 한 겁니다."

아침 8시쯤 호텔 방 전화벨이 울렸다. 막 아침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김 사장이 로비에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아침도 먹지 못한 채 부랴부랴 김 사장의 차에 올랐다.

"아침 7시부터 우리 점포는 물론 한인들 가게를 죽 둘러보고 오는 길입니다. 현지인들은 9시 반 넘어야 문을 열지만, 우리 동포들은 일찍 일을 시작을 합니다. 제가 한인회장을 맡고 있으니까 한번 둘러보는 거지요. 제가 돌아볼 때까지 문을 열지 않은 한인 점포가 있으면 듣기 혼을 내주기도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부지런해야 해요."

김 사장과 함께 도착한 곳은 다운타운 인근 아본데일 지역에 있는 한 카페였다. 대형마트와 레스토랑, 카페 등이 몰려있는 곳이었다. 커피 한잔과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있는데, 하나 둘 동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8시30분을 전후로 이곳에서 동포들끼리 모입니다. 적게 모일 땐 5~6명, 많을 땐 10여 명이 모이지요. 무슨 약속을 하고 모이는 게 아니에요. '짐바브웨 한인회 모닝커피 사랑방' 쯤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차 한 잔을 함께 나누면서 얼굴을 본 뒤 하루 일을 시작하는 거지요."

산뜻한 아침 공기 속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맛도 좋았지만, 동포들끼리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따뜻했다. 그날 모닝커피 사랑방에는 송성기 한인회 고문과 잡화 무역업을 하는 이창헌 사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날 주제는 짐바브웨 기아대책기구(ZFHI)의 밥퍼봉사에 관한 것이었다. 김 사장과 송 고문은 ZFHI 밥퍼봉사단 이사로서 그날 밥퍼 봉사현장에 함께 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송 고문과 이 사장이 영문을 모르는 나그네에게 친절하게 배경설명을 해 주었다.

<송 고문> "ZFHI는 참 특이합니다. NGO중 유일하게 동포들 중심으로 설립됐어요. 대개 한국 본부에서 나온 분들이 주축이 돼서 지부를 만들잖아요. 여기는 이곳 한인들이 중심이 돼서 ZFHI를 만들었습니다. 한 가지 더 특이한 점이 있어요. 기아대책기구는 기독교 계통의 NGO잖아요. 그런데 이곳 ZFHI의 경우 이사진 대부분이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분들이에요. 대표적으로 김근욱 사장이 ZFHI 고문을 맡고 있는데 불교도입니다. 그러면서도 ZFHI의 가장 큰 후원자 노릇을 하고 있지요. 밥퍼봉사 뿐 아니라 짐바브웨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재정지원을 해주고 있는 분도 바로 김 사장입니다."

<이 사장> "불교도인 김 사장님은 개신교 선교사님들 뿐 아니라 가톨릭 수녀님 활동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박치영 수녀님이 하라레 서쪽 25㎞ 지점에서 짐바브웨 노튼 청소년센타를 운영하고 계세요. 노튼 지역의 빈민 아동들을 대상으로 방과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요. 김 사장님은 그곳에 매달 2500달러 안팎의 후원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큰 행사가 있으면 별도로 몇 천 달러씩 기부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 사장> "짐바브웨는 제가 잠시 머물다가 돈만 벌고 떠날 땅이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 두 딸과 손주 놈들이 살아가야 할 터전입니다. 그 땅을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할 책무가 저에게도 있습니다."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던 김 사장이 송 고문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밥퍼 현장에 가야 할 시간이라고 했다. 김 사장이 운전하는 차는 하라레 북쪽으로 난 4차선 도로로 접어들었다. 20여 분 만에 도착한 곳은 하라레에서 40㎞쯤 떨어진 치퉁기자라는 곳이었다.

 


<김근욱 사장은 짐바브웨의 가발전문판매 업체인 소지키 패션스와 잠비아 소재의 가발 생산공장인 사나그룹을 운영하면서 아프리카 땅에 유통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짐바브웨 기아대책기구(ZFHI)를 후원하는 큰손이기도 한 김 사장이 수도 하라레 인근 치퉁기자 마을의 밥퍼봉사 현장에서 만난 마을 어린이들 옆에서 잠시 포즈를 취했다.>

꽤 규모가 커 보이는 단층짜리 건물 세 동이 널찍한 대지 위에 'ㄷ'자 모양으로 들어서 있었다. 입구엔 태극기와 짐바브웨 국기, ZFHI 깃발, 그리고 Seke Agricultural Training Institute(SATI), POSCO Children Development Centre(CDC), Nazarene Mission Church(NMC)라는 간판들을 담고 있는 표지판이 우리를 맞았다. ZFHI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선교단체 등이 협동으로 농업훈련학교와 유치원, 선교 사업 등을 하는 곳이었다.

교회 앞 가건물 안 간이식당이 분주했다. 현지인 아주머니들이 대형 솥을 가득 채운 옥수수 가루 죽을 커다란 주걱으로 휘휘 젓고 있었다. 이곳 주민들의 주식인 '싸자'를 만드는 중이었다. '싸자'는 옥수수로 만든 백설기 비슷한 음식이다. 다른 한 쪽 솥에서는 고기를 썰어 넣은 걸쭉한 스프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끓고 있었다. 10여 명의 어린이들이 어느 새 자기 머리통만한 오렌지를 하나씩 받아들고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샛노란 오렌지와 까만 피부, 활짝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새하얀 이빨이 참 예쁘게 어울린다. 이를 지켜보던 김 사장이 한 마디 던진다.

"예수님의 이웃사랑이나 부처님의 중생제도나 모두 내가 사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자기 이웃을 챙기고, 베풀다보면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가장 이타적인 행위가 가장 이기적인 행위인지도 모르지요."

언론인·오지여행가 sangjo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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