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주가 만난 '비즈니스 한류의 개척자들'

"아라비아 광야에서 신화와 역사를 팝니다"

2013-12-23 11:11:56 게재

요르단 손종희 '아르테미스 트래블&투어리즘' 사장




어린 시절부터 미지의 해외세계를 동경하던 한 여인이 있었다. 경북 문경의 가난한 농사꾼 집 딸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부산 신발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오기 하나로 똘똘 뭉쳐있던 그는 산업체부설 야간학교를 다니며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한 끝에 부산외국어대학에 진학을 했다. 웬만한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꿈조차 꾸지 못하던 1980년대 후반, 그는 배낭을 메고 지구촌 유람을 떠났다. 3학년 때 두 달 동안 뉴질랜드와 싱가포르를 돌았고, 4학년 땐 석 달 동안 유럽 구석구석을 누볐다. '바람의 딸'로 불리는 한비야 보다 훨씬 앞서 지구촌을 유람한 '원조 배낭족'이었던 셈이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91년 3월, 그는 달랑 편도 비행기 표 한 장을 들고 그리스 행 비행기를 탄다. 까마득한 미지의 세계 속으로 번지 점프를 한 것이다.


<손 사장은 가구사업 및 웨딩 플래닝 사업을 하는 요르단 남편 칼릴 알마사이드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중학생 아들 함재와 초등학생 딸 하나는 아빠랑은 아랍어, 엄마랑은 한국어로 대화를 한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성경의 땅' 요르단에서 연간 5000~1만여 명의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중견 여행사의 사장으로 변신했다. 아라비아의 광야에서 신화와 역사를 팔고 있는 것이다. 손종희 아르테미스 트래블 & 투어리즘(Artemis Travel & Tourism) 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손 사장은 지금 가구사업 및 웨딩 플래닝 사업을 하는 요르단 남편 칼릴 알마사이드와 중학생 아들 함재, 초등학생 딸 하나 등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일구고 있다.

요르단 암만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손 사장의 첫 인상은 카리스마 있는 여군 장교를 닮아 있었다. 아마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조네스 여전사의 모습이 저렇지 않았을까. 에두르는 법 없이 직선적인 말투에다 걸음걸이마저 거침없고 당당했다. 손 사장이 안내 해준 한국인 민박집에서 짐을 푼 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첫인상이 그리 틀리지 않았음이 금방 드러났다. 무심코 나이를 물었더니 금방 까칠한 답변이 되돌아온다.

"굳이 나이를 밝혀야 하나요. 외국 언론에선 인터뷰할 때 나이 따위는 물어보지 않던데요. 왜 한국 언론만 그런 걸 묻는 거죠. 나이를 생각하면 행동과 생각에 제약이 생기지 않나요."

세상에 이런 호강이 어디 있나. 손 사장이 직접 암만 인근의 유적지들을 안내해 주겠다고 나섰다. 여행사 사장이 직접 가이드로 나서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 행선지는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북쪽으로 45km 지점에 위치한 고대 유적인 제라시다. BC332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처음 건설된 제라시는 로마제국의 동방거점도시로 성장한 곳이다. 40여 분 만에 도착한 제라시에는 평일인데다가 비교적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관광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매표소를 통과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하면서도 아름다운 아치형 석문이다. 높이 13m의 하드리안 개선문이다. 손 사장의 입에서 꿈틀꿈틀 역사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다른 중동국가들과는 달리 요르단은 석유 대신 신화와 역사를 팔아먹고 사는 나라다. 요르단에서 20년 가까이 여행사를 하고 있는 손종희 아르테미스 트래블&투어리즘 사장이 암만 북쪽 45km 지점에 위치한 로마유적지인 제라시에서 한인동포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AD129년 하드리아누스 로마황제가 이곳에 온 것을 기념해 세운 문입니다. 이 문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제 그리스, 로마 시대로 되돌아가는 겁니다. 유적 대부분은 1900년대 초부터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전체 유적의 20% 정도에 불과합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요르단 남부의 페트라 유적지를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

여행은 두근거림이다. 낯선 사람과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는 데서 오는 작은 흥분, 아릿한 고독이 여행의 맛이다. 손 사장은 여행하는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린다. 자신이 학창시절부터 평생을 여행의 두근거림과 긴장을 ?아 다녔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여행객이 아니라 여행사 사장이다. 여행사 사장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저에게 여행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저는 유명한 유적지들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사람 사는 모습과 자연을 즐기는 걸 좋아해요. 가이드로 현장을 뛸 때는 고객들이 저에겐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손님들이 툭툭 던지는 말 한 마디 속에 제가 겪지 못한 경험과 지혜가 숨어있었어요. 가이드라는 직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없었을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여행업은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인연을 귀하게 관리해야 성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예요. 저는 가슴으로 사람을 만납니다. 가슴은 닫아놓고 입으로만 사람을 대하면 상대방이 금방 눈치 챕니다. 무슨 경영기법이나 테크닉 같은 것보다도 진정성 있게 인연을 중시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손 사장의 여행사인 아르테미스 트래블&투어리즘 사무실은 암만 도심 서쪽의 마디나 무나와라 거리에 있었다. 상점들과 오피스 빌딩, 음식점 등이 들어선 번잡한 상업지구였다. 아르테미스 트래블&투어리즘는 여행사라기보다 아늑한 미술관 혹은 고풍스런 박물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색과 아이보리색 벽지에 검은 가죽소파, 그 위에 밝은 미색 쿠션, 고풍스런 인도네시아 산 원목책상…. 게다가 진열장 안에 가지런히 전시된 도자기 등 골동품들이 사무실에 정갈한 품격을 더하고 있었다.

손 사장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소파에 던져놓고는 이것저것 바쁘게 챙기기 시작한다. 직원들을 불러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꼬치꼬치 묻기도 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면서 목소리 톤을 높이기도 한다. 거 참 영어 한 번 똑 소리 나게 잘하는 여자다. 한 바탕 이리 뛰고 저리 뛴 끝에 번지는 불길을 잡은 소방관이 한 숨을 돌리기라도 하듯 손 사장이 차 한 잔을 마주한다. 손 사장은 어떤 경영방침을 가지고 여행사를 운영할까.

"고객 만족 실현이 최고의 경영 목표입니다. 그런데 고객 만족은 여행사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예요. 고객이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여행사는 물론 호텔과 관광버스회사, 식당 등을 접촉하게 됩니다. 호텔에 가서 잠을 자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는 과정에서 고객이 불만을 품게 되면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호텔은 청결하고 편안해야 하고, 버스회사는 차량정비를 제대로 해야 하고, 식당은 무조건 맛있는 음식을 내 놓아야 합니다. 호텔이나 음식점이 형편없는 데도 좋다고 그냥 넘어가면 저는 적어도 그들에게는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결국 손님들의 불만이 제기될 수밖에 없고, 그런 업체는 다시 찾지 않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여행사와 호텔, 관광버스 회사, 식당을 '우리'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함께 잘하지 않으면 그 우리를 구성하는 하나하나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강조하지요. 우리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칠 것은 고치자, 그래야 당신도 살고 나도 산다, 그리고 당신이 최선을 다해 줄 거라고 굳게 믿는다, 이렇게 말을 해 주고는 하지요."

손 사장은 처음 어떻게 여행사를 시작하게 됐을까. 하고 많은 나라 중에서 어떻게 요르단까지 와서 여행사를 차렸을까.

"저는 대학을 졸업하면 외국으로 무조건 나간다고 일찌감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일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대학 졸업식을 마친 후 한 달도 채 안 된 1991년 3월, 손 사장은 달랑 편도 비행기 표 한 장을 들고 그리스행 비행기에 몰을 실었다. 짐이라고는 당장 입을 옷 한 가방, 오빠가 사준 전통타자기 한 대, 그리고 600달러가 전부였다.

"아테네에 도착해보니 비수기인데도 불구하고 호텔 숙박료가 너무 비싸더라고요. 들고 간 여행 안내책자를 보면서 여기 저기 호텔로 전화를 돌렸습니다. 방 값 싼 곳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비수기라서 그런지 전화 안 받더니 딱 한 군데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가 장기간 투숙을 해야 하는데 싸게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요. 싸게 줄 테니 어서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 다음날 호텔로 갔지요. 호텔 리셉션에 아주 착하게 생긴 젊은 친구가 앉아 있더라고요. 그게 바로 지금 우리 남편인 칼릴 알마사이드였어요."

처음 해외 무대 신고식은 참으로 혹독하기만 했다. 낮에는 선박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에는 관광객들을 공항으로 실어 나르는 야매택시 영업까지 뛰는 등 3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4년 손 사장은 요르단으로 삶의 무대를 옮기게 된다. 중장비 수입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기 나라인 요르단으로 돌아간 칼릴이 손 사장에게 동업을 제안한 것이었다. 마침 사람들과 부대끼는 여행사 가이드 일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칼릴이 사업을 시작한 곳은 자기 고향인 요르단 북쪽 마프락 지방이었어요. 그 곳을 기반으로 인근 농촌 마을에 트랙터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중장비 사업이 지지부진하더라고요. 사업이 안 되니까 남는 건 시간뿐이잖아요. 그리고 평소 책을 읽지 않으면 머리가 도태되는 것 같아 불안하거든요. 그래서 펼쳐든 게 바로 성경입니다. 그때 새삼스럽게 깨우친 게 있어요. 제가 발을 딛고 있는 요르단이 말 그대로 성경의 땅이더라고요. 그 무렵 또 요르단 지사에서 근무하던 우리 기업인 한 분으로부터 책 한 권을 얻었어요. 그런데 그 책이 요르단에 있는 성지들을 죽 소개한 내용이었습니다. 어머머 하면서 책 속으로 빠져들었어요. 내가 완전히 역사의 땅에 들어와 있구나. 갑자기 다시 여행사 일에 대한 흥미와 욕구가 솟구치기 시작했어요. 1995년 1월 '컬춰 클럽'이란 여행사 간판을 내걸었지요. 낮에는 현장 가이드를 하는 사원으로 뛰었고, 밤에는 전동 타자기를 이용해 한국으로 견적서를 보내는 사장 일을 했지요. 원 없이 잠을 한 번 자 봤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어요. 혼자서 한국의 여행사에 서류 보내고, 이곳에서 호텔과 버스, 식당 일일이 섭외해야 하고, 현장도 직접 뛰어야 했거든요. 그래도 제 사업이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1997년 말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한 뒤 베란다에 앉아 칼릴과 함께 느긋하게 차를 한 잔 할 때였다. 머뭇거리며 뜸을 들이던 칼릴이 불쑥 청혼을 했다. 오랫동안 숨겨두고 있던 마음을 열어 보인 것이었다.

"그리스 있을 때부터 남편은 내게 맘이 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칼릴이 남자라기보다는 친구였어요. 너무 빼빼했고, 애 같았거든요. 몇 차례 접근을 해 올 때도 농담으로 돌렸으니까요.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칼릴이 그날 그러더라고요. 지금 결혼을 해도 우리 함께 살 시간이 너무 짧다. 그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는 거 같아서 안타깝다, 나랑 결혼해 줄 수 없겠니, 그 말에 넘어 가고 말았어요. 1998년 2월 22일 부산 안락동 충렬사에서 우리나라 전통 혼례식을 올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선택이었어요. 우린 지금도 진짜 친구이자 진짜 동반자이거든요."

손 사장에게 요르단에서의 첫 10년은 산전수전의 현장경험, 그리고 호황과 불황에서의 경영수업을 두루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었다. 199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와 2003년 걸프전을 거치면서 여행업계는 급격한 등락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10년 단련의 과정을 거친 손 사장은 마침내 2005년 5월 지금의 '아르테미스 트래블&투어리즘'이란 회사를 세우게 된다. 기존의 '컬춰클럽'과는 달리 요르단 관광청의 승인을 받은 공식 여행사를 설립한 것이다.


<요르단은 이스라엘 못지않은 성경의 땅이다. 사진은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던 요르단강변 베다니 성지.>

"1995년 요르단에서 관광업을 시작한지 처음 몇 달 동안은 손님이 없었어요. 마땅히 거쳐야 할 준비기간이라고 생각하고 견뎌냈지요. 마침내 그해 말 서울에서 초등학교 꼬마 손님들이 30여명 왔습니다. 단체로는 첫손님이었어요. 그 꼬마 손님들이 복을 몰고 왔나봅니다. 그 이듬해인 1996년부터는 연일 대박행진이 계속됐습니다. 성수기엔 20팀씩 밀려들어왔어요. 비수기에도 5~7팀씩 꾸준히 들어왔고요. 2005~2008년 1월 성수기엔 우리 여행사에서 월 최대 60그룹까지 받아야 할 정도였어요. 그 기간에는 연간 만 여명 정도의 고객을 모셨습니다. 2009년 이후 세계 경제가 내리막길 걸으면서 호황국면은 아니지만 꾸준히 관광객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전반적으로 안정 국면으로 들어선 것이지요."

이제 손 사장은 배움에 대한 또 다른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성경의 땅과 인류 4대 문명 발상지를 직접 누비면서 그 갈증이 더 깊어졌다고 했다.

"이곳은 관광객들 뿐 아니라 세계적인 석학들이 연구를 하기 위해 몰려오는 지역입니다. 하버드대 출신의 배철현 서울대 교수, 프린스턴 신학교 출신의 박준서 박사, 조철수 전 히브리대 교수 등이 이곳에 자주 들리셨던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제 꿈은 하버드 대학에서 고대 근동학 박사 학위를 따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공부를 하면서 깨우침의 즐거움을 느끼면 그만이지요."

아, 참! 손 사장에 관해 빼먹을 뻔했던 중요한 이야기 한 가지. 손 사장은 2009년 3월 15일 예멘 남부의 고대 유적도시 시밤 지역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당시 부상자 중 한 사람이다. 국제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의 10대 조직원의 자살폭탄테러로 알려진 당시 사고로 한국인 관광객 4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 손 사장은 당시 여행사 사장이 아닌 관광객 중 하나로 모처럼 휴가를 갔다가 지옥 문턱까지 밟고 왔다고 했다. 그 사건 이후 손 사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더 값지고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했다.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꿈과 욕망도 오히려 더 늘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요르단에서 호텔사업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체인 호텔로 키우고 싶어요. 어느 곳을 가던 지 그곳 호텔의 구석구석을 세세히 들여다보고 메모를 합니다. 호텔 직원들이 손님을 대하는 언행도 늘 눈여겨봅니다. 하나하나 준비하다보면 꿈은 꼭 이루어질 겁니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우리의 삶은 미래의 꿈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는 달콤한 여행인지도 모른다. 하긴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보다 더 짜릿하고 달콤한 여행이 또 어디 있으랴. 주어진 순간순간을 여행하는 것처럼 맛있게 살 일이다.

박상주 언론인·오지여행가 sangjo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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