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은 둘째 … 임기 마치는 군수 보고싶다"

2014-03-26 12:44:05 게재

전북 임실·전남 화순·경북 청도 … 민선군수 잇단 낙마에 말문 닫아

올 2월 작은 사무실을 열자마자 그가 찾아왔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한두번 봤던 사람이다. 주요 선거권역별로 제법 알려진 사람 이름 7~8명을 대더니 실제 몇몇은 소개를 해 주기도 했다.

지난 민선 3기 선거부터 활동을 했다고 했다. 자기돈 7000여만원을 들여 군수 선거를 도왔지만 당선자에게 1원 한 장 안받았노라고.

"사흘 쯤 지나서 만나자더니 읍·면사무소가 있는 곳에 식당을 하나씩 지정해 달라고 하더라고. 선거 돕는 사람들 밥이라도 사야 하니 꼭 필요하다면서. 거절했더니 그날부터 얼굴이 안 보이더라고…." 한동안 연락이 없던 그의 소식을 들은 것은 방송 뉴스에서였다. 군이 발주한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내고 군수에게 8000여만원을 건넨 혐의로 구속됐다.

브로커에 놀아난 민선자치 = 전북 임실군수 선거는 후보 능력보단 출신 지역과 준비기간이 좌우한다는 게 중론이다. 2만9700여명 가운데 인구가 많은 임실읍(6982명) 오수면(4498명) 관촌면(3811명)의 지지세가 당락을 좌우한다. 군수선거에 나설 10여명의 후보가 대부분 이 3곳의 지지세를 바탕으로 뛴다. 선거 브로커들이 활개를 칠 여건이 여전하다.

24일 전북 임실군 버스터미널 근처 시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말문을 닫았다. 어렵게 말을 붙여도 손사래를 친다. 민선 1기부터 번번히 낙마한 군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투다.

뒤늦게 군수선거에 나선 A씨를 따라 나섰다. 경로당에서 명함을 건네 받은 한 노인의 답이 걸작이다. "잉, 000한테 인사 받은 것이 몇년인디. 이번에는 거그 찍어줘야 혀. 담에나 보자고." 또 다른 주민에겐 "뭐하러 나왔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임실군은 민선 1기부터 5기까지 선거 브로커가 활개를 쳤다. 군수와 후보들은 브로커들에게 인사권과 사업권을 보장하는 각서를 썼고 당선 후 줄줄이 감옥에 갔다. 군수 출마를 선언한 이들 모두 1번 공약이 '임기 마치는 군수'다. 시장에서 만난 오 모(66)씨는 "능력은 됐고, 4년 동안 탈 없이 있다 나가는 군수가 나와야 안정을 찾지 않겠냐"고 말했다.

정 모(67)씨는 "임실 같은 곳은 야당에서 반드시 공천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가 될 만한 후보를 사전에 철저히 골라내고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유권자나 후보자들 대부분이 "1년 후에 또 선거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10여년간 군수선거를 준비한 한 입지자는 2년 전 기부행위로 선관위와 사법기관의 감시망에 들어 있다. 또 다른 예비후보는 전임 군수에게 뇌물을 전달한 혐의로 형을 선고 받은 후 피선거권을 회복한 지 얼마 안됐다.

고정표 관리하느라 선심성 예산 투입 = 부부군수·형제군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전남 화순군도 사정은 비슷하다. 25일 오후 2시쯤 군청 앞에서 만난 남 모(55)씨는 "어디 가서 화순에서 산다고 말하기가 창피하다"면서 자리를 피했다. 화순 사람들은 민선5기 동안 군수 4명이 모두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고 살았다. 각종 여론조사 응답률이 10%를 넘어서지 못한다. 민선자치에 실망한 주민들의 침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홍이식 현 군수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3년에 벌금 5000만원, 추징금 6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홍 군수의 출마가 불투명한 상태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기초단체장 무공천'을 선언하면서 군수 출마 예정자 10여명에 이를 정도로 난립해있다.

여기에는 '부부 군수'에 속하는 임호경 전 군수와 '형제 군수'로 불리는 전형준 전 군수도 포함돼 있다. 두 출마 예정자는 1만여표에 이르는 고정표를 앞세워 여전히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화순군 선거인 수는 대략 5만6000여명 안팎이다. 지난 2011년 보궐선거 투표율 62%를 감안하면 투표자수가 3만4000여명에 이른다. 이중 1만5000여표를 가지고 있으면 당선 안정권이다.

부부 군수, 형제 군수로 통하는 두 사람도 이 정도 표로 당선됐다. 이 때문에 역대 단체장들은 이 표를 관리하기 위해 선심성 예산을 투입하는 등 혼신의 노력을 다해 왔다.

"전체 군민들을 관리한답니까. 고정표만 관리해도 당선되는데 아무 이상이 없는데요."

익명을 요구한 한 예비후보가 말하는 솔직한 얘기다. 이런 기류 때문에 대다수 주민들은 침묵하고 있다. 전직 단체장들을 제외한 나머지 출마 예정자들은 침묵하는 주민들을 변수라고 판단하고 있다.

해마다 재선거 치른 불명예, 올해는… = 경북 청도군도 마찬가지다. 2005년 재선거,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재선거 등 3년 내리 군수 선거를 치르는 기록을 남겼다. 2007년엔 당시 정한태 당선자가 6억7000만원을 뿌려 읍·면·동 조직책 50여명이 구속되고 주민 1400여명이 불구속 입건 되기도 했다.

지난 1995년부터 모두 8번의 선거를 치렀다. 그래서 현직 군수는 민선 5기 8대 군수다. 2008년 6월 이중근 현 군수가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민심도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군수가 올해 군수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잠잠하던 선거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후보군들이 난립해 '악몽'이 재연될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1기부터 내리 3선에 당선됐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군수직을 상실했던 김상순(75)전 군수를 비롯, 이기환(60)전 소방방재청장, 이승률(63)전 청도농협조합장, 김재근(66) 청도군 정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 김하수(55) 경북도의회 의원 등이 군수자리를 노리고 있다. 벌써부터 한 후보가 선거법위반시비에 휘말리면서 출마의지를 접었으며 또 다른 후보도 선거법 위반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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