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물리학자의 세상읽기,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2014-06-16 10:42:09 게재

제1악장 머피의 법칙

현대를 전기시대라고 합니다. 만물의 구성요소인 원자 내부를 들여다보게 된 인류가 원자핵 주위를 회전하는 전자의 힘을 이용할 줄 알면서 열린 새로운 문명시대라는 의미입니다.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전기시대로 인류역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전자기의 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정전사태가 가져올 혼란상을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전기시대를 창조한 과학기술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기본 소양이라고 하겠습니다. 과학과목이 이과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문과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해야 될 과목이며 초중등 과정에서부터 국영수 못지 않게 높은 비중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참 ‘비현실적’입니다. 전기시대를 뛰어넘어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할 후세대들에게 청동기 시대 수준의 과학마인드도 심어주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교육의 혁신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개인적 차원에서라도 과학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우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2008 서울대 신입생들이 가장 많이 읽고 감동한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입니다. 제목 그대로 현대과학의 여러 개념들로 복잡한 인간 세상을 설명해 보고자 하는 시도가 담겨 있는 스테디 셀러입니다. 실제 문이과 융합교육이 앞으로 우리 교육과 입시의 트렌드라고 한다면 진학교육에도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 그리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혀 주는 데 디딤돌이 되리라 봅니다. 

살다보면 되는 일도 있고 안 되는 일도 있다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그 때마다 생각나는 법칙이 있으니 이름하여 <머피의 법칙>이다. 머피의 법칙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잘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는 일은 반드시 잘못된다(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정리해 놓은 이 법칙은 불행하게도 중요한 순간에 어김없이 들어맞는다. 우린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하지만 낙담마시라, 다른 사람들도 당신만큼 재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머피의 법칙을 시원하게 증명해준 과학자는 로버트 매튜스다. 그는 버터 바른 토스트에 관한 실험으로 이를 증명하였는데, 출근 준비로 바쁜 그 부산한 아침시간에 실수로 토스트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재수 없이 꼭 버터나 잼을 바른 면이 바닥을 향해 떨어져서는 잡친 기분에 짜증을 더해준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우리가 일상에서 토스트를 떨어뜨리는 경우는 식탁에서 떨어뜨리거나 사람이 들고 있다가 떨어뜨리는 경우다. 어떤 면이 바닥을 향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떨어지는 동안 토스트를 회전시키는 스핀에 의해 결정되는데, 토스트를 회전시키는 힘을 토크(torque)라 부른다. 토스트를 떨어뜨릴 때 작용하는 토크는 중력이 그 역할을 담당하는데, 보통 식탁의 높이나 손 높이에서 토스트를 떨어뜨릴 경우 토스트가 충분히 한 바퀴를 회전할 만큼 지구의 중력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매튜스는 간단한 계산으로 증명하였던 것이다.
이 경우 대부분 반 바퀴 정도 돌고 바닥에 닿기 때문에 버터를 바른 면이 거의 반드시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계산해보면, 공기의 저항이나 얇은 버터층의 무게는 토스트의 회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버터 바른 면이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는 머피의 법칙은 지구의 중력과 식탁의 마찰계수가 불변하는 한은 우리에게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현금인출기나 할인점의 계산대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어느 줄에 서야할까 난감해하던 기억을 우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한 신중히 선택한 내 줄보다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드는 것을 보고, 젠장할! 재수 없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신 여러분도 많으실 줄 안다. 12개의 계산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유독 물건을 많이 산 사람이 있다거나 계산에 서투른 캐셔가 존재할 확률은 거의 같을 것이므로 12개의 계산대는 서로 별 차이가 없을 것이란 가정을 해볼 수 있다. 그런데도 왜 내 줄이 다른 줄보다 늦게 줄어드는 것이냐며 분통 터지던 기억들. 나만 유독 재수가 없고 머피의 법칙은 나만 따라 다니는 운명과도 같은 것인가.
간단한 확률 계산만으로 나의 분통과 불운한 내 재수는 결국 나의 못난 성정 탓이었음이 금방 들통 난다. 12개의 계산대가 있었고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내가 줄을 섰으므로 내가 선 줄이 먼저 줄어들 확률은 12분의 1이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여 다시 말하면,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들 확률이 12분의 11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 아니고는 결국 나는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고 이는 머피의 법칙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사는 경우에 이런 일은 당연하고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매튜스가 약간의 수학으로 증명했던 머피의 법칙들은 세상이란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훨씬 많다는 것이고, 일이 안 될 때마다 우리가 머피의 법칙을 떠올리며 ‘나는 굉장히 재수가 없구나’라고 생각하지만, 매튜스의 계산에 의하면 이는 ‘재수의 문제’가 아님을 말해 준다.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바라왔던 것들이 이 세상에서는 상당히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나 하고 필자는 경고한다.  우리가 아는 머피의 법칙이란 이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법칙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무리하고 분에 넘치는 것들을 욕심내며 살았는지를 지적하는 법칙인 것이다.

조현기 원장 창조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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