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EBS 연계, 공교육 발목잡아

2015-01-07 11:29:59 게재

학교 90%가 EBS 수능교재로 수업 … 교사들 "교육과정 파행운영 불가피"

교육부가 사교육을 억제해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2010년 도입한 '수능-EBS 교재 연계율 70% 정책'이 오히려 공교육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교육부가 '수능개선위원회'를 구성해 현행 수능의 개편 방향을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연계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어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이런 가운데 교육업체 유웨이중앙교육이 지난해 12월 수능을 치른 수험생 12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 중 62.1%가 '현행과 같은 수능과 EBS교재 70% 이상 연계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 입장을 밝힌 응답자는 37.9%에 불과했다. 특히 수능 영어에서 EBS 교재 지문을 그대로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수험생의 71.9%가 반대했다.
공교육 강화를 목적으로 교육부가 도입한 수능-EBS 교재 연계 강화 정책이 교육과정을 파행 시키는 등 오히려 공교육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2014년 12월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대입 정시 배치 참고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이런 설문조사 결과를 사교육업체들의 상술로 치부하기에는 교사를 중심으로 학교현장에서도 반대여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교육당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지난 2013년 7월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고교수학 개선안 마련을 위해 현직 수학교사 1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52%의 교사가 EBS 연계정책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향후 연계의 방향에 대해서는 '강화해야 한다'가 7%, '현상을 유지한다'가 31%, '연계 퍼센트를 낮춰야 한다'가 24%, '연계를 하지 말아야 한다'가 30%로 나타났다.

교사들의 이런 반응에는 고3 교실에서 EBS 교재가 교과서를 대체하는 현상이 심각해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수도권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연계율이 워낙 높아 고3의 경우 EBS 교재 풀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ㅅ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원칙이 입시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수능 문제가 EBS 교재와 유사 또는 거의 베끼는 수준으로 출제되고 있어 학교에서 이를 무시하기 쉽지 않다"며 "영어 영역의 경우 EBS 교재 지문을 크게 변경하지 않고 출제하고 있어 첫줄만 외우고 나머지는 번역본을 달달 암기하는 학생까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2012년 일반고, 자율고, 외국어고 108개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60%의 학교에서 EBS 수능 교재를 정규수업에 활용하고 있었다. EBS 수능 교재를 보충수업에 사용하는 학교도 27.5%에 달했다.

이에 반해 학교수업에서 EBS 수능교재를 사용하지 않는 비율은 13.3%에 불과했다. 결국 90%에 가까운 학교가 EBS 수능교재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2013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3 수업에서 EBS 수능 수학교재 활용 비율은 90%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고1·2학년 교실로도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5월 실시한 'EBS-수능 연계 70% 정책으로 인한 교육현장 영향 평가 토론회'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선 경기도 군포시 흥진고 권희정 교사는 "고 1·2학년 영어 수업시간에도 EBS 교재로 교육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권 교사에 따르면 경기도의 신도시인 H시의 B고는 고1 때부터 교과서와 EBS 교재(수능 비연계 교재)를 4:6 혹은 3:7로 사용했다. 이 학교 K교사에 따르면 EBS-수능 연계 실시 이후로 1·2학년까지도 특정 학기에 아예 EBS 교재로만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한석수 대학정책실장은 "학교 현장서 문제 제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연계율 문제도 수능개선위원회의 주요 안건으로 삼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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