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소와 예술의 아름다운 만남

2015-04-08 00:56:03 게재

지난 주말, 사진작가들의 출사지로 유명한 '문래동 예술촌(창작촌)'을 찾았다.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오자 주변은 온통 아파트들이다. 이런 아파트촌에 무슨 예술촌이 있지? 궁금해 하며 조금 걷다보니 '문래예술공장 550m'이라고 쓰인 이정표가 보인다. 그 아래에는 철공소에서 사용하는 각종 도구 및 부품으로 만들어진 특이한 말 형상의 조각상이 서있다.

 
 

고층 아파트에 갇힌 철공소들
'아! 제대로 찾아왔네.' 속으로 생각하며 왼쪽 길을 따라 올라갔다. 입구에서 철 용접할 때 사용하는 커다란 눈 보호대 모형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종로 이화동 벽화마을의 생동감과는 달리 이곳은 매우 한가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해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여기가 문래동 예술촌이 맞나요? 어떤 코스부터 봐야 하나요?"라고 물으니 "특별히 정해진 구역이 있는 게 아니고 여기 철공소 근처를 예술촌이라고 하더군요. 그냥 둘러보시면 돼요." 무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그들에게는 고된 삶의 현장인 만큼 한량처럼 사진이나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는 주택가 골목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골목에 다다르자 묘한 광경이 나타났다. 물고기 벽화가 그려진 벽, 그 옆의 철제로 된 닭장, 그리고 그 닭장 안에는 실제로 암탉과 수탉이 살고 있었다. '벽화와 닭장에 갇힌 닭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낡은 집들 사이로 난 비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어떤 벽에는 나비가 날고, 어떤 벽에는 소녀가 새와 함께 노닌다. 그러다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음울한 낙서 같은 그림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예술가들의 새로운 둥지, 문래동 예술촌
'문래동 예술촌'은 원래 철공소들이 밀집한 구역이다. 1960년대 후반 청계천에서 이전한 철공소들이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된 곳이다. 지금은 폐업중인 철공소도 많지만 당시에는 철판을 실은 화물차가 차례를 기다리면서 오랫동안 대기할 정도로 일감이 많았다고 한다. 그 후 이 골목에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부터. 비싼 임대료 때문에 홍대 쪽에서 밀려난 작가나 예술가, 음악가들이 하나 둘씩 옮겨와 문래동에 새로운 둥지를 마련했다고 한다. 더구나 공장용으로 지어진 건물이어서 넓은 공간과 높은 천장, 저렴한 임대료가 예술가들에게는 딱 맞는 조건이었다.
허름한 단독주택을 공방이나 카페, 식당 등의 상업시설로 개조해 멋스러운 공간으로 탈바꿈한 곳도 있다. 골목 구석구석을 순례하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주변의 고층 아파트단지에 갇혀 버린 공간, 이곳에는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은 적막감이 흐른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동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
미로와 같은 주택가를 조금 벗어나니 생경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 이곳이 철공소지역이구나' 주말이어선지 철공소들의 문은 굳게 닫혀있다. 그림이 그려진 셔터 앞에서 광고사진을 찍는 듯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성대고 있다. 삭막하고 차가운 느낌의 철공소들이 벽화와 어우러져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때, 어디선가 쇠를 깎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온다. 주말이지만 문을 연 철공소에서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용접을 하고 있다. 신성한 노동과 예술의 절묘한 만남, 갑자기 동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처럼 느껴진다. 골목 중간쯤에 'ON &OFF 춤 공장' 이라고 쓰인 간판이 걸려있다. 호기심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낡은 복도 벽에 생생한 모습의 강아지 그림이 그려져 있고 지하에서는 묘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온다. '정말 춤 공장인가?' 기발한 이름 때문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문래예술공장'
영화 세트장 같은 철공소 거리를 돌다가 반대편 길로 나왔다. 인도 위에 빨간색 고깔모자와 하늘색 옷을 입은 피노키오를 닮은 인형이 앉아 있다. 옆에 서서 같이 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가니 길가에 망치모양의 긴 벤치가 설치돼 있다. 그곳에 앉아 여유롭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평범한 벤치였으면 모두가 그냥 지나쳤을 텐데.'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과 그림에서 예술가들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돌아오는 길에 인터넷에서 검색한 맛 집 '영일분식'에 들렀다. 양쪽으로 빼곡히 들어선 공구 상가들 사이로 저 멀리 빛바랜 '영일분식' 간판이 보인다. 낡고 오래된 분식집 앞에는 사람들이 제법 길게 늘어서있다. 20분여를 기다려 맛본 바지락 칼국수와 메밀만두는 가격은 물론 맛도 훌륭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정표에 쓰인 '문래예술공장'은 예술가들에게는 창작공간을, 시민들에게는 문화공간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지난 2008년부터 운영하는 시설이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문래동 예술촌(창작촌)'은 '문래예술공장'이 아니라 철공소가 밀집해 있는 지역을 통 틀어 지칭하는 것이라고 한다.

-TIP/ 문래역 인근 맛 집
*영일분식
메뉴/ 칼국수, 소면, 칼 비빔국수, 소면(비빔국수), 메밀만두, 국수와 밥은 무한리필
위치/ 영등포구 문래동 4가 8-26(문래동 공구 상가 근처)


 
 

*바로바로 전집
메뉴/ 해물파전, 모듬전, 녹두전, 깻잎전, 홍어무침, 가정식백반
위치/ 영등포구 문래동 3가 440-7

-TIP

철공소 셔터에도 특색 있는 그림이 많다.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면 평일보다는 철공소가 문을 닫는 주말이나 공휴일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김선미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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