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 윤정원 '언니네 텃밭' 사무장

전산학도 '텃밭 공동체'로 농부 꿈 찾다

2015-05-22 10:46:46 게재
"대학전공은 전산이지만 인생의 전공은 농업입니다."

윤정원(44·사진) 사무장은 '언니네 텃밭'에서 여성농민이 가꾼 텃밭 농산물을 도시 가정에 공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유통되는 농산물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제철에 나는 것만 취급한다. 둘째, 토종씨앗으로 키운 것들이다. 셋째, 친환경농사를 통해서 자랐다.

운영방식도 색다르다. 텃밭 가꾸는 여성농민과 도시 소비자 가정이 짝지어지면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물류센터 없이 직거래만 한다.

소비자는 자신이 꾸준히 먹는 '제철꾸러미(농산물)'에 해당하는 값을 매달 농가에 지불한다. 일종의 지원금이다. 농가에서는 소득이 보장되는 만큼 보다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작물에도 더 많은 정성을 쏟게 된다.

소비자는 정기적으로 텃밭농가를 방문해 서로 인사를 나누고 편지도 주고받는다. 정부 인증보다 더 믿음직한 '참여형 인증'이다.

전남 장흥에서 농민가정의 6형제 중 맏딸로 태어난 윤 사무장은 어릴 때부터 농부가 되고 싶었다. 부모는 맏딸이 공무원이 되길 내심 바랐지만 꿈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윤 사무장은 학생회 활동을 하며 농활에 열심히 참여했다. 이른바 '우루과이라운드'로 한국 농업시장이 대폭 해외에 열리려던 시기라 사회적 관심이 높기도 했다.

넓은 논밭에서 크게 짓는 농사는 위험이 컸다. 돈을 버는 건 매년 한 번. 흉년이면 값은 뛰지만 생산량 자체가 적어 손해였다. 그렇다고 정부가 수입농산물을 풀면 그마저 값이 떨어지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대거 수입되기 시작한 외국 농산물은 식량주권을 위협했다.

졸업 후 직접 농사를 지으며 지역 여성농민회에서 활동하던 그는 지난 2008년 서울에 올라와서 이 사업준비에 참여했다.

"텃밭은 남성 중심의 농업에서 여성이 책임과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다양한 작물을 가꾸면 병충해 위험도 단일작물을 키울 때보다 낮습니다.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더 정성을 쏟는 곳이라는 상징성도 있고요."

2009년 전국 여성농민회총연합이 식량주권 사업단을 출범하면서 시작된 이 사업은 현재 생산자 공동체 16개에 회원 200명가량, 소비자회원은 2000명 정도 된다.

간헐적으로 필요한 농작물을 공급하는 '장터(온라인)' 회원까지 계산하면 7000명에 달한다. 다른 단체나 지자체 중에도 이들의 사업모델을 따라하는 곳이 늘고 있다.

윤 사무장은 "텃밭을 시작으로 죽어가는 땅과 공동체를 살리고 건강도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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