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어떻게 죽을 것인가

현대의학이 놓친 삶의 마지막 순간

2015-06-05 12:21:26 게재
아툴 가완디 지음 / 김희정 옮김 / 부키 / 1만6500원

요즘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죽음, 특히 인간답게 죽기, 즉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참살이 또는 '잘살기' 정도의 뜻을 지닌 웰빙(well-being)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잘죽기'가 새로운 문화코드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인간답게 죽기'에 대한 강연에 사람들이 몰리고 죽음에 관한 책들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죽음을 소재로 한 웹툰도 선보이고 있다.

'웰다잉'을 '좋은 죽음'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어감이 어색하다.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잘 먹고 잘 살기'뿐만 아니라 '인간답게 죽기'가 눈길을 끄는 것은 노인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여기에다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랜 병고와 고독, 빈곤에 시달리다 고통 속에 힘겹게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주변에서 늘고 있는 것도 그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장애를 가진 남편을 40년간 수발하다 자신도 우울증에 걸리는 등 몸과 마음이 황폐해져 결국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어느 할머니의 슬픈 이야기는 더는 어쩌다 생기는 사건이 아니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에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텔레비전도 볼 수 없으며 움직이지도 못한 채 끼니마다 죽이나 유동식으로 생을 연장하고 있는, 무의미한 삶을 꾸려가는 노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곳에서 그런 분들을 보며 지내는 사람이라면 열에 열 모두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의사 아툴 가완디도 삶의 마지막 단계에 놓인 많은 노인들을 진료하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뇌했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적나라하게, 진솔하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원제 Being Mortal)'란 책으로 펴냈다.

죽음은 실패 아닌 정상적인 일

이 책은 전문가들이 쓴 여느 책들과는 달리 각주나 참고문헌 등이 없다. 그런데도 <뉴욕타임스> 31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가완디는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에서 공중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버드 의과대학과 보건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외과의사이며 '뉴요커'지 고정 필진으로 활동하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 여러 권의 의료·의학 관련 저술로 저명한 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00인에 이름을 올렸고 2015년 영국의 '프로스펙트'지가 선정한 세계적 사상가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냉혹하고 가차 없는 삶의 사이클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우리의 습성 때문에 늙고 병든 구성원들이 병원 중환자실이나 요양병원, 요양원에서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모든 것, 다시 말해 친구, 가족, 친지들로부터 고립된 채 인간답지 못한 마지막 생을 보내고 있다고 진단한다. 아주 조금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뇌를 둔화시키고 육체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치료를 받으며 저물어가는 삶의 마지막 나날들을 모두 써 버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생의 종말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조망하는 책을 쓰게 된 동기이다.

죽음은 실패가 아니며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데도 살만큼 산 노인이나 건강 상태가 더는 의미 있는 삶을 꾸리기 힘들다는 것이 명백한데도 심폐소생기를 작동하거나 인공호흡기로 의미 없는 삶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 이 책에 등장하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더 나은 해결책은 없을까? 이 책은 저자의 이런 고민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 책은 가완디 자신과 같은 고민을 일찍이 했던 노인전문가나 노인학자들의 노력과 연구 등을 소개하고 있다. 생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냈던 노인들을 두루 만나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도 전하고 있다. 자유나 자율, 개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감옥에 다를 바 없는 요양시설과는 전혀 다른, 자기 집 같은 노인주거문화를 만들어보기 위해 '어시스티드 리빙'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노인주택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어 미국의 새로운 노인주거문화로 정착시킨 윌슨 부부 이야기는 고령 사회의 문턱에 있는 우리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 1991년 뉴욕주 북부의 소도시 뉴 베를린에서 빌 토머스라는 젊은 의사가 한 요양원에서 벌인 실험도 영화처럼 무척 흥미롭다. 좋은 삶이란 독립성을 극대화한 삶이라고 믿은 토머스는 '요양원에 존재하는 세 가지 역병'으로 무료함, 외로움, 무력감을 꼽고 이를 '박멸'하기 위해 금기시됐던 개와 고양이, 새 등을 들여와 그곳 노인들의 생각과 삶을 확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국가와 같은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같은 비참한 질병에 걸려 갑작스럽게 죽음에 이르는 건 예외적인 일이 됐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의식이 없어지고 신체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인체 각 기관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저자는 "지난 몇십 년 사이, 의학은 죽음에 관해 수백 년 동안 내려온 경험과 전통, 표현들을 더 이상 쓸모없게 만들어 버렸고, 인류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새로운 문제를 안겨주었다."는 진단을 내린다. 그의 처방은 말기 전이성 암이나 치료 불가능한 심부전, 치매와 같은 질환을 지닌 노인에 대해서는 심폐소생술을 사용하거나 관 또는 정맥주사로 영양공급을 받거나 기계적 인공호흡기 치료보다는 호스피스를 권한다.

이 책에 대해 '타임'은 '아름다우리만치 너무나 잘 쓰인 책'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인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부모 또한 의사였으며 아버지는 힌두교도였다. 책의 마지막은 아버지 임종과 유언에 따라 갠지스 강에 유해를 뿌리는 모습을 정말 감동 주는 수필처럼 묘사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한 아버지 임종

"공기는 청량하고 쌀쌀했다. 하얀 안개가 수의처럼 도시의 탑들과 강물을 뒤덮었다. 치직거리는 스피커에서는 사원에서 외는 염불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찌감치 비누를 챙겨 목욕하러 나온 사람들, 돌판에 옷을 쳐 대며 빨래하는 사람들, 정박용 밧줄 위에 앉은 물총새 위로 그 소리가 퍼져나갔다. 강 한가운데까지 충분히 나아갔을 때 안개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게 보이기 시작했고, 힌두 성자는 베다 성가를 낭송하며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의 유해를 뿌린 다음, 우리는 잠시 조용히 강 위에 떠서 강물이 인도하는 대로 흘러갔다. 안개를 걷어 내며 햇살이 타올랐고, 우리는 뼛속까지 온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뱃사공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가 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땅으로 향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장면이었다.

안종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