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인_ 치킨보이 천태우/‘치킨은 내 운명’, 치킨으로 키워가는 큰 꿈

2015-10-31 00:33:47 게재

 강동역 부근 주택가에 자리 잡은 25㎡(7.5평) 치킨집은 치킨보이 천태우의 베이스캠프다. 그만의 레시피로 겉은 바삭바삭, 속은 부드럽게 튀겨낸 ‘맛있는 치킨’은 그의 프라이드. “황금 비율로 섞은 밀가루 튀김 반죽을 써 기름은 덜 스며들면서 바삭바삭한 맛이 오래 유지되죠.”
 치킨에 빠질 수 없는 단짝 메뉴 맥주. 동네 치킨집인데도 생맥주 외에 브래스트포인트, 로얄더치 같은 미국, 벨기에, 스페인 등 나라별 수제 병맥주를 고루 갖추고 있다. 맥주 맛의 특징, 브랜드 탄생을 줄줄 꿰고 있는 그는 자신만의 ‘지식 창고’를 늘 손님들에게 개방한다.
 “일부러 주방을 오픈 키친 형태로 중앙에 배치했고 그 둘레를 바처럼 만들었어요. 손님들과 실컷 이야기하려고요. 혼자 온 손님도 주인장과 수다 떨며 부담 없이 한잔 할 수 있지요.”

 17살 때 알바하며 치킨집 사장 꿈 꿔
 1988년생 20대 치킨집 사장은 패기가 넘쳤다. ‘치킨은 내 운명’이라 말하는 천태우, 그는 강동키드다.
 “가난한 집 외아들로 태어났는데 6살 때 엄마는 집을 나갔어요. 새엄마는 걸핏하면 나를 때렸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외톨이였지요. 초등생 꼬맹이가 한겨울에 빈 병 주우러 천호동 거리를 헤집고 다녀도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죠.”
 꽁꽁 얼어붙은 그의 마음에 한줄기 햇살이 비춘 건 12살 무렵, 우연히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을 만나고 부터다. 호기심으로 들른 센터는 별세계였다. 식사와 간식을 챙겨주고 따스한 말을 건네며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어른’이 있었다.
 “지역아동센터를 만난 건 내 인생의 행운이었죠. 난생 처음 존중, 보살핌을 받았으니까요.”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서울역 앞 KFC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17살 때 찾아왔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태어나 처음 먹어본 치킨 맛은 황홀했어요.” 그에겐 하루 종일 치킨을 튀겨내는 주방이 신세계였다.
 “치킨집 사장이 꼭 되고야 말겠다는 꿈을 갖게 됐어요.” 고교 졸업 후 일터도 치킨집이었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하필 가해 차량이 무보험이라 그가 모아둔 돈은 몽땅 병원비로 나갔다. 치킨집 사장의 꿈이 점점 멀어져가는 듯했고 삶은 온통 잿빛이었다.


 1000 대 1 경쟁률 뚫고 창업오디션 1등
 우연히 tVN 창업 오디션 ‘부자의 탄생’ 참가자 모집 광고를 봤고 고심 끝에 도전장을 냈다. 현직 셰프, 내로라하는 경력자들 1천여 명과 경쟁해야 했던 그는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은 장사 경험을 밑천 삼아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다.
 “기적처럼 1등을 했어요. 마법처럼 내가 홍대 앞 40여 평 매장의 주인이 된 거지요.” 실낱같은 꿈을 부여잡고 혹한의 24년을 버텼더니 어느 날 봄이 찾아왔다. 홍대 치킨 집 매출이 꾸준히 오르자 여기저기서 사업 제휴 제안이 들어왔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는 기분이었죠.”
 홍대앞을 시작으로 여러 군데 매장을 냈고 라이브클럽까지 맡아 운영했다. 20대 사장으로 정신없이 지내며 2년여가 흘렀다. 사업 영역을 계속 확장해나가다 보니 마음 한켠에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고심 끝에 ‘스톱’을 선언했다.
 “6개월쯤 네팔, 그리스, 불가리아를 여행하면서 치킨보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겠다 결심했죠.” 어린 시절 자신을 품어줬던 지역아동센터가 있는 강동으로 돌아와 17살에 꿈꾸던 작은 치킨집을 올해 5월 오픈했다.
 “홍대 같은 대형 상권의 임대료, 권리금의 모순 구조를 속속들이 경험했기 때문에 동네 치킨집은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임대료가 저렴한 주택가에 점포를 얻고 종업원을 따로 두지 않아 지출을 최소화했다. 대신 치킨 값을 낮춰 동네 손님을 폭넓게 공략해 나갔다. 가게가 자리를 잡자 그는 마을 청년들과 새로운 사업을 구상중이다.

 청년창업자들에게 치킨집 사장 노하우 전수
 “마을 청년들에게 내가 10년간 밑바닥부터 배운 노하우를 알려주며 큰 돈 없이도 창업할 수 있는 청년창업협동조합을 만들고 싶어요. 강동구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머리를 맞대고 사업을 구상중입니다.”
 뚝도시장, 강동 마을축제 같은 먹거리 장터에 참여하며 청년 네트워크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매장을 찾아와 청년 창업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하루가 신이 나요. 마을의 청년창업자들에게 내가 롤모델이 돼야 하니까 우선 치킨보이를 탄탄하게 키워야겠죠.” 가장 좋아하고 잘 아는 치킨으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그에게는 싱싱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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