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5개중학교 '게임 과몰입'│'숲으로 가는 행복열차'
"인터넷 게임 중독엔 '숲 게임'이 해독제"
기계에 중독된 도시아이들 벌레 흙 만지며 숲 놀이 치유
"저는 휴대폰과 인터넷 게임에 심하게 빠진 죄(?)로 이곳에 오게 됐어요. 휴대폰을 부모님한테 빼앗겨서 답답하고 속상해요. 머릿속에 자꾸 게임만 떠올라요"
"그런데 숲 게임(런닝맨)을 하고 나니 속도 후련하고 휴대폰 생각도 없어졌어요" 최현우(가명. 경산중 1학년)군이 장난을 치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최 군은 첫날과 달리 얼굴색이 환하게 달라졌다. 친구들을 귀찮게 하던 심한 장난질도 줄어들었다. 식사시간에는 설거지 당번을 자처해 멘토나 운영자들을 놀라게 했다.
경북지역 5개 중학교 남학생 30명이 지난 4일 2박3일 일정으로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에 몸을 실었다. 대부분 학교 '부적응학생' 이거나 '게임 과몰입'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다. 이들은 3일 동안 숲해설가와 숲 생태계를 공부하고 미술 음악 놀이 치유를 체험했다. 부모 곁을 떠난 낮선 여행이지만 조별 책임자인 형 누나 같은 멘토가 있어 안심이다.
◆태어나 처음 밥하고 설거지 = 경북 경산역을 출발한 아이들은 영동역에서 내렸다. 전통시장 체험과 시장 상품권을 이용, 자율적으로 조별식사를 해결했다. 덕유산 자연휴양림에 여장을 푼 아이들은 곧바로 미술치유 프로그램인 '꽃들에게 희망을'에 참여했다. 휴양림 주변 단풍잎 등 자연물을 이용한 나만의 티셔츠를 만들고 발표회와 전시회도 열었다. 수업시간에 주의가 산만해 항상 지적을 받았던 승현이(문명중 2학년)는 미술프로그램을 마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집중했다.
붓에 물감을 찍기 전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읽으며 존중과 배려를 배웠다. 자신이 만든 나뭇잎 티셔츠를 교복 안에 입겠다며 정성을 쏟았다. 친구들이 작품을 들고 무대 위에 서자 박수를 치거나 소감에 경청했다.
저녁식사는 조별로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먹었다. 김치 나물 멸치조림 등 운영진이 만들어 온 반찬을 타다가 상에 올렸다. 밥과 메인 메뉴인 불고기는 당번을 정해 쌀을 타다 직접 짓고 후라이팬에 구웠다. 다른 학교 또래아이들과 함께 한 저녁상이지만 오래된 친구들처럼 편안해 보였다. 설거지는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다.
밤 프로그램인 '온전한 나와 만나기' 명상 시간에는 스님의 좌선(?) 흉내도 냈다.
깜빡 깜빡 졸던 아이들도 경건한 분위기 때문인지 잠을 떨쳤다. 태어나 한 번도 명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심오한 철학적 질문과 답을 구했다. 지그시 눈을 감은 아이들은 그동안 살아온 과정과 자신의 미래를 그렸다.
◆게임한다고? 그건 우리전공이지 = 다음날 숲에 든 아이들은 조금씩 숲 환경에 적응해갔다. 오늘 프로그램이 '게임'이라는 말에 소리를 지르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게임요? 그럼 우리전공이지요" 아이들은 숲 게임에 빠져들었다.
'런닝 맨' 게임에서 유감없이 승부욕을 불태웠다. 한 치 양보도 없었다. 그냥 걸으라면 화를 내거나 거부할 두 시간 남짓 거리다. 휴양림 둘레를 한 바퀴 돌면서 군데군데 숨겨 논 미션을 찾아내는 게임이다.
혼자서는 할 수가 없고 반드시 조별로 움직이도록 했다. 창의력과 협동심, 자존감을 높이도록 게임 목표를 세웠다. 앞서 진행한 숲 해설가 설명과 체험을 게임에 응용시켰다.
숲 나무들의 공존, 겨울을 나는 식물의 지혜, 인간과 숲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게임으로 만들었다. 컴퓨터나 휴대폰에 길들여진 도시아이들은 나뭇잎을 들추고 곤충을 만지거나 흙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칡덩굴을 잘라 고리던지기 재료를 만들었고, 비석치기 돌을 다듬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게임이지만 구슬땀을 흘리며 지혜를 모았다.
해가 지고 산중에 어둠이 몰려왔지만, '런닝 맨'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저녁식사는 뒷전이고 승부욕이 더 불타올랐다. 자신들이 칡 줄기를 잘라 만든 고리로 '고리던지기'를 할 때는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하며 목표물을 겨냥했다. 아이들은 비석치기 놀이를 하면서 머리에 돌을 얹고 조심조심 걸어가는 친구모습을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엄마의 모습' 같다고 표현했다.
최동수(가명. 관평중 2학년) 군은 "숲에서 땀 흘리며 노는 게임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학교에 돌아가서도 휴대폰 게임보다 친구들과 조를 짜서 비석치기나 런닝 맨 게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껐다. 한 친구가 가져온 트럼프카드로 도둑잡기 게임을 시작했다. 경북지역 중학교 세 곳 학생들이 모였기 때문에 아이들이 잘 섞이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카드게임을 하면서 아주 친한 동네 친구처럼 어울렸다. 휴대폰에서 손을 떼면 불안해하던 아이들. 하지만 프로그램 시간에는 멘토가 내민 주머니에 자진해서 휴대폰을 담았다.
숲 게임을 진행한 김흥민 강사는 "숲에 쉽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것들을 게임으로 응용했다. 승부욕이 많은 남학생들이라 숲 게임에 높은 집중력을 보였다"며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신나게 두드린 게 연주라고? =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악기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프리카 북을 서로 차지하려고 장기자랑에 나섰다. 난타 공연 영상을 보고 조원들과 토론에 들어갔다. '우리 조는 어떤 연주를 할 것인가' 토론을 하고 스케치북에 음표를 그려가며 즉석 작곡을 했다. 처음해보는 난타지만 충만한 호기심 덕분에 참여도가 높았다. 다른 조가 무대 위에 서자 박수를 치며 공연을 감상했다. 마무리는 전체 조원이 악기를 두드렸고, 악기소리는 조화를 이루며 휴양림 강당을 울렸다.
마지막 밤은 '멘토와 대화시간' 3일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가정에서 친구들과 서운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눈물 콧물을 찍어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친구와 다퉈서 마음이 항상 찝찝했다던 동수는 "털어놓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 아침. 등산을 한다는 말에 '절대 갈 수 없다'며 울상이다. 아이들을 태운 버스는 덕유산 막바지 단풍속으로 들어갔다. 무주리조트 곤돌라를 보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이들을 태운 곤돌라는 천년 이상을 살다 리조트 개발로 생을 다한 주목군락지 위를 날았다. 향적봉 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같은 학교 친구가 아니라서 헤어지기가 더 아쉽다는 아이들. 심한 장난기도, 욕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인솔 교사들도 아이들 변화에 놀라는 눈치다. 2박3일 동안 진행한 모든 프로그램을 학생들과 함께한 이윤기(구미 광평중 교사)는 "숲 치유 프로그램 효과가 대단하네요. 여러 학교 아이들이 모여서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게임 과몰입 학생들이 숲에서 뇌와 몸을 새롭게 깨우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며 "시간이 갈수록 창의력과 협동심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였다"고 평가했다. 여행 첫날부터 친구와 다툰 정환이가 장난을 치며 물었다.
"선생님! 우리 내려가면 점심으로 뭐 먹어요?" "탕수육과 짜장면!" "앗싸~! 난 짬뽕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