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추천하는 오늘의 책│세계사 브런치

'45권의 역사 고전' 한권으로 맛있게 먹기

2016-01-08 10:12:10 게재
정시몬 지음 / 부키

"2차 대전의 영웅. 헤밍웨이와 프로스트를 누르고 노벨문학상 수상. 풍부한 어휘력을 바탕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중웅변가. 영국의 총리."

이는 모두 한 사람에게 붙는 수식어다. 바로 20세기 현대사의 거인, 윈스턴 처칠이다. 그런 그를 있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역사 고전 탐독이었다. 그는 로마시대부터 19세기까지에 걸쳐 영국과 유럽 역사에 대한 열렬한 독서광이었다.

처칠 못지않은 독서광인 저자 정시몬은 역사의 고전을 읽으며 느꼈던 짜릿한 흥분을 독자와 공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45권의 역사 고전이 저자의 해설과 알맞게 곁들여져 세계사의 매력이 한층 더 극대화된다.

세계사 주요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방대한 내용이 주는 부담감은 아이스크림 녹듯이 사라진다. 제목 그대로 마치 브런치를 먹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한다.

책에는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의 '역사', 로마사의 으뜸이자 처칠의 역사 입문서였던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역사 고전들이 영어와 한자로 수록되어있다.

곳곳에 원전의 토핑을 더하니 깊이와 풍미가 넘친다. 물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팍스 로마나'라고 불렸던 영광의 과거를 뒤로한 채, 성공에 도취되어 쇠락의 길을 걷는 로마 제국의 모습을 역사가 기번은 이렇게 기록했다.

원전을 곁들여 이야기하다

"지극히 용맹한 지도자의 자손도 시민과 종복이라는 지위에 만족했다. 그나마 큰 포부를 가진 젊은이들조차 궁전에서 일하거나 황제의 근위대에 가입했다. 그리고 정치적 세력이나 결속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버려진 속주들은 서서히 나른한 개인주의의 무관심 속으로 침잠해 갔다."

개척 정신없이 일신의 안위를 좇아 편안한 길을 가려하는 세태를 꼬집는 기번의 쓴소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십자군과 IS

십자군은 IS와 같은 과격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테러의 명분과 이슬람의 단결을 위해 즐겨 쓰는 표현이다. 이들은 서방 국가들이 중동에 발을 들이는 것을 '십자군 운동'이라 빗댄다.

그러나 오리지널 십자군 운동은 그리스도교의 이슬람 침략 전쟁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 놀랍게도 역사적으로 중동 지역을 먼저 '찜'한 것은 이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서기 6~7세기 초만 해도 그리스도교는 유럽보다도 중동에서 더 활기차게 번성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7세기 중반. 선지자 마호메트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이슬람교의 세력 확장 때문이었다.

이슬람 세력이 본격적으로 유럽에 침략해오자 위협을 느낀 그리스도교가 방어전을 펼친 것이 십자군 운동이다. IS의 테러와 십자군 전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저자는 전 인류가 공유하는 역사의식이란 인간을 문명적 종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기준이라 말한다. 기억을 상실한 개인이 더 이상 자신을 규정할 수 없듯이, 역사를 모르는 집단 또한 스스로의 정체성을 알지 못한다. 반성하고 성찰하는 행위 없이는 현재의 나도 없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 속에서 우리 또한 과거를 어떻게 반성하고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지, 먼저 '세계사 브런치'를 통해서 생각해보아도 좋겠다.

김혜린 국립중앙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