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좋아 책과 함께 ‘책방, 허송세월’

늘 바쁘고 치열하게? 잠깐 멈춰 허송세월해도 괜찮아~

2016-01-16 00:58:56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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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허송세월 전경. 가까이에 구제숍 골목이 있다.

책이 멀어졌다. 주변을 둘러보면 죄다 고 작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모습뿐이니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서점도 사라졌다. 대형서점 또는 온라인서점이나 되어야 그나마 이름을 지킬까 친근하던 동네마다의 서점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러한 때 문을 연 동네서점이니, 더욱이 사람들 발길 뜸한 천안시 원도심에 둥지를 틀었다니 뒷걸음치는 듯한 그 행보에 관심이 갈 수밖에. 게다가 이름마저 ‘허송세월’이라니…. 바쁘고 열심히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에 지쳐서인가 그 기꺼운 나른함에 마음이 바짝 다가갔다.


책방, 허송세월 내부. 어른들을 위한 동화, 만화, 그림책 등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다.

나만의 속도 따른 공간 하나쯤 있어도…

‘책방, 허송세월’은 지난해 11월 천안시 동남구 대흥동 명동길에 문을 열었다. 책방 주인은 박소산(29)씨. 처음부터 서점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단다.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다니던 회사에서 독립하게 되며 개인 사무공간이나 작업실쯤이 필요했어요. 이왕 공간을 갖게 된다면 책을 좋아하니 책과 연관된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렇다고 자기만족, 혹은 현실을 모르는 젊은 치기에서 나온 생각만은 아니었다. 마침 전국적으로 동네서점 혹은 독립서점들이 하나 둘씩 생기고 있어 제법 알려지는 곳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50~60곳 정도 운영되는 중에 서울의 ‘풀무질’ ‘이음’이나 전주의 ‘우주계란’ 대전의 ‘도어북스’ 등은 명소로까지 인정되어 가는 시점이라 우리 지역에 이제 동네서점이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곧이어 알아본 곳은 책방의 터전. 마음이 간 곳은 원도심인 천안역 인근이었다. “일단 비용이 저렴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고요(웃음), 무엇보다 어릴 적 살았던 동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그것이 지난해 8월의 이야기. 박소산씨는 뜻을 같이 하는 청년들과 3개월 동안 직접 치우고 두드리고 칠하고 정리해가며 공간을 꾸며 나갔다. 아슬아슬 서있는 오래된 건물이지만 골목길의 추억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는 지금의 장소에서 ‘책방, 허송세월’은 11월, 그렇게 문을 열었다. 동네. 마을. 골목길. 그리고 책방…. 잊고 지냈던 정겹고 그리운 이름이 ‘책방, 허송세월’과 함께 찾아왔다.


책방, 허송세월 주인 박소산씨

누구든 들러 털썩 앉아 책과 함께 편안히

‘책방, 허송세월’은 자그마하고 아기자기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널찍한 테이블 하나. 사방에는 다양한 책이 꽂혀있다. 그림책, 만화, 어른들을 위한 동화 등 분야가 다양하다. 시나 책, 소설은 물론, 독립출판물까지 모든 서적들을 판매한다.
문을 연지 이제 두 달 남짓. 아직 책방을 찾는 사람은 손에 꼽는단다. 주말이나 되어야 열 손가락을 다 쓸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은 뜨문뜨문 조심스레 문을 연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큼 오래되지 않았고 여기저기 홍보를 하지도 않았기에, 게다가 오다가다 들를 수 있는 위치도 아니기에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 신기할 수도 있을 노릇. 그렇건만 제법 단골이라고 부를 사람도 늘어나고, 종종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물론, 책을 사는 것이 목적이면 굳이 일부러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문을 닫으면 바깥과는 확 달라지는 ‘책방, 허송세월’만의 공기를 호흡하며 좋아하는 책과 함께 편안히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기에 향한 발걸음이일 것. 하긴, 마라톤 전 구간을 100M 달리기 하듯 전력으로 살아가야 하는 치열한 하루하루건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서서 뻗대주니 찾고 싶을 수밖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끔은 세상의 균형을 유지시켜 준다’는 유리문에 적힌 문구가 ‘책방, 허송세월’을 설명해준다.
“올해는 ‘책방, 허송세월’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려고 해요. 매월 16일 세월호를 기억하는 모임을 운영해 책을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죠. 영화 읽어주기도 매월 진행할 계획이에요. 이번 달은 오는 23일과 30일 진행합니다.”
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간이 되기 위해 독서모임을 하는 이들에게 공간을 열어두려고 한다. 책과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살지 않고 그저 나른한 순간을 갖는다 해도 조바심 내지 않고 나만의 속도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책방, 허송세월’은 골목길 한 구석에 불을 켜고 문을 열어둔다.

위치 : 천안시 동남구 대흥동 명동길 13.


따로 또 같은 공간 ‘스물일곱_스물아홉’


지난해 12월 스물일곱_스물아홉에서 진행된 그림일기 수업 ‘손난로 프로젝트’ <사진제공 책방, 허송세월>

‘책방, 허송세월’의 2층에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co-working 공간 ‘스물일곱_스물아홉’이다. 책방 주인 박소산씨와 세 명의 청년들이 공간을 나누었다. 작업공간인 동시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으로 운영한다.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두고 있어 공동체 영화상영이나 소모임, 교육세미나, 스터디 등의 모임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스물일곱_스물아홉’이라는 이름은 원도심에 처음 들어온 때의 나이 스물일곱과 건물에 머물기로 계약한 나이 스물아홉까지를 의미한단다. 이름에마저 청년들의 발랄함을 묻힌 ‘스물일곱_스물아홉’은 ‘책방, 허송세월’과 함께 원도심에 재미를 더한다.
‘스물일곱_스물아홉’이 담는 재밌는 이야기는 페이스북(www.facebook.com/2729SPA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나영 리포터 naym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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