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안전 우선하는 의료문화를 | ③ 의료소송
환자에 입증책임, 힘겨운 의료소송
감정 거절로 소송지연 많아 … 승소율 낮고 소송 장기화
2014년 1월 전예강(여·당시 9세) 양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했다. 전양은 병원을 찾기 얼마 전 코피를 쏟았고, 이날 어지럼증을 호소해 병원을 찾았다가 숨을 거둔 것이다. 의료사고를 의심한 어머니 최윤주(39)씨는 "1년 차 레지던트 2명이 요추천자 시술(신경계통 질환을 진단하기 위해 척수액을 얻으려 허리뼈 사이에 긴 바늘을 넣는 것)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그 과정에 저혈량성 쇼크가 왔다"며 병원 측의 과실을 주장했다. 병원 측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자, 결국 최씨는 같은 해 6월 19일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해마다 수많은 의료사고가 발생하지만, 환자들이 병원을 상대로 의료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여전히 힘겨운 싸움이다.
◆일반 민사사건 비해 긴 소송기간 = 2014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처리된 민사본안 사건 가운데 제1심의 경우 일부 승소를 포함한 원고승소판결이 60.8%, 항소율은 27.4%, 판결에 의한 평균처리기간이 단독사건 165.7일, 합의사건 282일이었다.
이에 비해 의료소송은 원고승소판결이 54.4%이었고, 항소율은 70.1%로 월등히 높았다. 판결의 의한 평균처리기간은 통계로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의료소송은 전문지식 확보와 입증곤란 등으로 인해 보통의 민사사건에 비해 처리기간이 긴 것으로 알려진다. 예강이 사건도 2014년 6월 19일 소송을 제기한 이후 1년 8개월째 1심 소송이 진행 중이다.
법무법인 에이치스의 이형찬 변호사(35)는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의료계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환자가 원하는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의료소송이 갖는 고유 특성으로 인해 일반적인 민사사건에 비해 소송기간도 길다"고 말했다.
◆의료과실 입증기록 모두 병원에 = 의료소송에서 입증책임은 기본적으로 환자에게 있다. 의료사고와 관련해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손해배상소송의 일종이다. 이런 이유로 민사소송 입증책임에 관한 대원칙에 따라 피해자가 입증책임을 지는 게 원칙이다.
이 변호사는 "환자 측은 의사에게 과실이 있다는 점과 그런 의사의 과실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의사의 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진료기록부와 증인은 거의 모두 병원 측에 집중돼 있고, 환자가 의료 행위 과정을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다"며 "막말로 의사가 매스를 뱃속에 넣고 꼬매지 않는 이상 의료과실을 밝혀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지적되자 법원은 판례를 통해 환자 측에 입증책임에 대한 부담을 완화시키고 있는 추세다.
법원 관계자는 "환자 측에서 의사에게 과실이 있고, 환자가 의료 행위 이전에는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사정 정도만을 증명하면 의사의 과실이 추정될 수도 있다"며 "그러면 의사 측에서 다른 원인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과거에 비해 환자가 부담해야 할 입증책임이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환자에게 의료소송은 여전히 길고 험난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인간관계 얽힌 의사들 감정 거부 = 전문가들은 의료소송이 길어지는 이유가 '감정'에 있다고 지적한다.
감정의가 의료사고를 일으킨 의사와 연고가 있는 경우 소송이 지연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 감정인으로 지정되는 의사들은 인지도 높은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의 교수진들이라 대학 선후배, 스승과 제자, 친인척 관계로 엮이는 경우가 많다고 전해진다.
이 변호사는 "의료소송이 장기화되는 이유는 감정 때문"이라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소송에서도 의료사고를 낸 의사와 대학 동문이라는 이유로 감정의에게 4번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의료소송을 진행 중인 또다른 변호사도 "소송 경험상 감정의와 의료사고를 낸 의사가 선·후배 관계면 대개는 거부하는데, 지방일수록 심하다"며 "감정 거부에 대해 별다른 강제수단은 없기 때문에 소송기간이 길어진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들어 이를 개선하려는 조짐이 보여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감정제도 개선은 감정 절차나 감정 비용과 같은 문제와 맞물려 있어 제도개선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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