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그만! 릴레이 인터뷰 │ ①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 본부장

아동학대예방시스템은 '가분수' … 현장인력 늘려야

2016-03-25 11:07:31 게재

"우리나라 아동학대 예방 시스템은 가분수예요. 정작 밑바닥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적다 보니 밀려드는 신고를 감당할 수가 없어요. 아동보호전문기관 1곳당 상담사들이 12명에서 15명 정도 있는데 낮밤도 주말도 없이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요. 아동학대행위가 감지됐을 때 상황을 판단해서 응급조치를 취하고, 아이들의 안전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상담사들인데 어떻게든 현장 인력을 늘려서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프라를 갖춰야 합니다."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46·사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김 본부장은 아동학대 상담 현장에서 18년을 보냈고 2014년부터는 본부장으로서 관련 활동을 총괄하고 있는 아동학대문제 전문가다.

굿네이버스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물론 아동학대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1996년 아동학대상담센터를 설립·운영하며 피해아동을 구제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 학대피해 신고를 접수해, 사실확인 후 지속적으로 사례관리를 해 나가는 일반화된 아동학대 대응 프로세스를 처음 만든 곳도 굿네이버스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굿네이버스 본부에서 만난 김 본부장이 아동학대 상담사들의 고충을 이야기한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연이어 발견되고 있는 아동학대 사망사건 때문에 온갖 정책이 쏟아지고 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아동보호전문기관에 가고 있는데 정작 상담사 인력이나 예산에 대한 배려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전국 55개 아동보호전문기관(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외)의 상담사들이 관할하는 아동인구는 1만8000명에 달한다. 이는 미국의 10배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 수준은 더 부끄럽다. 이웃나라인 일본의 아동학대예방예산은 1조3588억원으로 우리나라(185억원)의 73배다. 전체 정부예산 중 비율을 따져도 일본은 0.13%, 한국은 0.0047%로 일본이 한국에 비해 예산편성비율이 27배 높다.

가장 먼저 아동학대 사례를 접하는 현장이 이렇게 열악하다면 전체 체계에는 더 큰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최근 발견된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아이들도 이런 성긴 아동보호시스템이 제대로 건져내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허망한 죽음을 막으려면 또 무엇을 해야 할까. 김 본부장은 국민 전체적인 인식 개선을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꼭 해내야 할 일로 꼽았다.

"90년대에는 온몸에 시퍼렇게 멍 든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내가 아이 잘 키우고 있는데 무슨 문제냐며 빗자루 들고 항의하는 아주머니도 있었어요. 동네 사람들까지 나서서 옹호하고요. 지금은 그런 정도는 아니니까 많이 나아진 거겠죠. 하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어떤 것이 아동학대인지, 어떤 행동이 바람직한 양육인지, 아이가 어떤 징후를 보였을 때 아동학대가 아닌가 의심해야 하는지 이런 걸 국가적인 공익캠페인으로 끊임없이 펼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동학대를 근절할 수가 없고, 수면 밑에 숨어 있는 많은 학대사례들을 끄집어낼 수가 없습니다."

최근 사건에서도 일반 국민들의 인식 개선이 이뤄졌더라면 끔찍한 사태까지 가는 걸 막을 수 있던 사례가 있었다. 지난 2월 아버지의 학대로 인해 숨진 후 유기돼 밀랍 상태 주검으로 발견된 부천의 여중생은 교사와 아파트 경비원 등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들은 모두 이 양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만 했다.

"아이들이 집에 가기 싫어하면 보통 어른들은 그걸 가정의 문제로 생각하기보다는 아이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하지만 그 아이가 왜 집에 가기 싫어할까라고 관점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학대를 당하더라도 학대 사실을 잘 털어놓지 못해요. 왜 그럴까요. 자기 가족 이야기고 자기 부모님 이야기이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성적이나 남자친구 같은 고민을 털어놓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은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털어놓지 않아도 주변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보고 물어봐줘야 한다는 거죠."

이같은 인식 변화는 여전히 학대예방대상에서 누락돼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고등학생 등 연령대가 높은 학생들을 발굴하는 데 필수적이다. 2014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학대피해아동 중 고등학생 비율은 9.3%로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흔히 고등학생 정도면 다 컸으니 학대를 당하고 있다면 털어놓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학대의 지속기간과 빈도, 가해자와의 관계 등에 따라 자아가 형성되지 못해 자기가 당한 일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쉼터로 온 아이들 중에 얼굴이 뽀얀 한 고등학생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방에 들어오면 항상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요. 말을 걸면 가까이 다가가야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요.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학대를 오랫동안 당했기 때문에 자아가 형성되지 못하고 의사표현을 거의 못하는 상태가 된 겁니다. 이런 아이들은 그 자체로 이미 SOS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죠.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그 아이가 왜 이야기를 못 하는지 미루어 생각해 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 그런 인식의 개선이 필요해요."

김 본부장은 스스로부터 학대부모가 아닌지 성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사건이 터지면 무슨 저런 부모가 다 있느냐고 비난하지만 사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일 것 같아요. 자녀들에게 욕하고, 소리지르고, 모욕감을 주고 그러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인식 개선도 더 빨리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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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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