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린이날 맞은 이상경 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

"아이 행복한 사회 만드는 게 가장 시급"

2016-05-04 11:01:04 게재

'불행하다'는 어린이 비율 OECD 최고 수준 … "우리 사회구조를 돌아봐야 할 때"

소파 방정환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어른들도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를 통해 만났던 중절모를 쓴 소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방정환 선생은 단순히 '어린이날을 처음 제정한 선각자'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어린이를 처음 인격체로 대한 사상가이기도 하다. 제94회 어린이날을 맞아 방정환 사상을 널리 알리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어린이들을 지원하고 있는 방정환기념재단 이상경 이사장을 만나봤다.

육영사업한 아버지 유업 = 3일 서울 종로구 현대리서치 대표이사실에서 만난 이 이사장은 방정환재단과의 인연을 먼저 소개했다. 이 이사장은 "육영사업을 하셨던 아버지가 소파 선생의 어린이 사랑과 자신이 학교를 설립했던 정신과 통한다고 판단해 재산을 정리해 2006년 상당 부분을 기부했다"며 "전임 이사장이 퇴임한 2008년 당시 이사였던 내가 재단 운영을 맡게 됐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 취임 후 방정환재단이 가장 정성을 들이는 사업 중 하나가 2009년 시작한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조사'다. 방정환 사상을 시대적 상황이 변한 현대사회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대상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현재 생각과 상태를 아는 것이 전제조건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이사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현대리서치가 재단에 연구비를 기부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3일 오후 서울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2016 어린이날 기념 전시 '들어봐~ 그려봐!'를 찾은 한 모녀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일대기를 관람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5월 어린이날과 가정의 달을 맞아 5일 어린이날 큰 잔치 '박물관은 놀이터', 7일에는 가족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3일 방정환재단이 발표한 '2016년 제8차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연구'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들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조사대상 OECD 회원국 22개국 중에서 가장 낮았다. 주관적 행복지수란 어린이와 청소년 스스로 생각하는 행복의 정도를 OECD 평균(100점)에 비교해 점수화 한 것으로 우리나라는 82점을 기록했다.

한국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2009년 첫 조사 이후 2014년까지 6년 연속 최하위였다가 지난해 23개국 중 19위를 차지했지만 올해 다시 최하위로 추락했다.

5%, 자살충동 위험군 = 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학과 사회발전연구소는 지난 3~4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 7908명(초등학생 2359명, 중학생 2538명, 고등학생 3011명)을 대상으로 주관적 행복지수 외에도 주관적 건강 상태, 학교생활 만족도, 개인 행복감 등에 대해 설문을 실시했다. 이 결과 한국의 어린이·청소년은 신체적인 건강 행동을 하는지, 흡연·음주·마약·성관계 등 위험 행위에서 안전한 정도를 평가한 '행동과 생활양식'(1위)을 비롯해 물질적 행복(3위), 보건과 안전(3위), 교육(3위)의 항목 등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다. 그 비밀은 가족관계에 있었다. 어린이·청소년의 삶의 만족도에는 성적이나 집안의 경제 수준보다는 부모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은 경우에는 성적과 경제 수준에 관계없이 행복감이 컷다.

성적이 똑같이 '중'일 때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으면 47.7%가 삶에 만족했지만 아버지와 관계가 좋은 경우 75.6%가 삶에 만족하다고 답했다. 경제 수준이 '상'일 때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49%만 삶에 만족해했지만,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으면 81%가 만족감을 표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이상경 이사장은 "장시간 근로 등으로 지친 부모 특히 아버지들이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여력이 없다"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데 정작 자녀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하니 우리 사회 구조를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 이사장은 특히 "전체의 5%, 40만여명의 어린이·청소년들이 자살충동 위험집단에 속한다"며 "우리 자녀들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무척 시급한 일이다"고 덧붙였다.

전국 작은물결문고 확산 = 방정환재단은 방정환의 호 '소파'에서 착안한 '작은물결문고'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50여곳의 지역아동센터에 책과 책꽂이를 기증했다. 중국 2곳과 올해 설치예정인 미얀마 1곳 등 외국도 기부대상이다. 또 서울, 경기, 강원지역에서 지역아동센터와 어린이집을 직접 또는 위탁운영하면서 방정환 정신의 확산에도 노력하고 있다. 특히 경기도 평택지역에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직역아동센터보다 학업에 촛점을 맞춘 '더함배움터'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인근에 함께 운영하는 '더함장터'의 수익금으로 운영비 상당부분을 채우고 있다.

이 이사장은 "배고픔의 시대는 끝났지만 방치된 아이들이 많다"며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 줄 것인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하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재단의 목표는 '우리 지역 아이들은 우리 지역이 돌본다'이다"며 "작지만 성공한 모델을 만들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확산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부터는 이른바 '방정환 사상'의 학술적 재정립을 위한 재단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 재단은 2011년부터 방정환을 연구하는 사학분야 2명, 아동문학부문 1명 등 3명의 젊은 연구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했다. 이들은 해마다 논문을 발표했다.

재단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모아서 올해 연구총서를 낼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준비하고 있는 이른바 '방정환 전집'도 연말이나 내년 초에 발간한다.

이 이사장은 "방정환 선생은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인데도 그 시대의 왜 그런 일을 했으며 어떤 작품들을 남겼는지 잘알지 못한다"며 그의 사상을 확산시키는 활동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단의 목표는 방정환 선생을 단순히 한국의 안데르센이나 디즈니 같은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는 다만 후대의 기성세대들이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 기여하는 이상과 현실을 소파 정신에서 찾고 그의 훌륭한 이상을 이어나가는 가운데 그의 숭고한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방정환재단은 29일까지 어린이 참여형 전시 '들어봐∼ 그려봐!'를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에서 연다. 서울역사박물관과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행사에선 방정환 관련 자료, 1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어린이날 행사 사진, 어린이날 표어·포스터·기념우표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방정환의 창작동화 '시월그믐날 밤' 등의 자료도 전시된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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