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당국 '트럼프 쇼크' 대응 고민

2016-05-18 10:53:14 게재

정책 혼선 가능성 경계 … "인기영합주의로만 치부해선 안돼"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의 외교안보관에 외교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냉탕온탕을 넘나들며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전통적 동맹관계마저 뒤흔들만한 발언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철수, 방위비 분담비 증액, 한미 FTA 전면 재협상, 핵무장 용인 등 메가톤급 발언들이 줄을 잇는다. 또 최근에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김정은에 대해 '미치광이'라며 표현하며 "더 이상 나가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고 말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다.

외교당국에서는 이 같은 트럼프 발언이 국내 외교정책이나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면밀히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위해 각종 공식·비공식 외교채널도 가동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미국 대선 과정에서 특정 후보가 발언한 것에 대해 정부 당국자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미국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강력한, 최상의 상태라는 초당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행정부가 바뀌든 안 바뀌든 강력한 한미동맹 정책이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미국 조야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본다"며 "(주한미군 주둔비용 같은) 특정 이슈만 본다면 급속히 발전하는 한미동맹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윤 장관은 이런 점을 해당 후보의 주요 조언자와 참모들과도 소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 역시 17일 정례브리핑에서 "대선과정에 있어서 나오는 여러 가지 언급들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코멘트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대선과정에서 한미동맹 문제라든지, 한반도 이슈라든지, 북한 핵 문제라든지, FTA라든지 이러한 정책에 대해 방향이 좀 더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 각 후보 정책에 대해 보다 면밀한 분석과 검토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선캠프 뿐만 아니고 전반적으로 의회, 학계, 싱크탱크 등 각계와의 네트워크 구축을 강화해 나가면서 우리 외교정책에 대한 이해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며 "미 대선결과에 관계없이 한미동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공동가치에 기초해서 더욱 발전해 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외교당국은 트럼프 발언이 가져 올 파장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기존 한미동맹관계는 확고하다는 인식의 변화는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좀 더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신(新)고립주의 얘기를 많이 하는데 신고립주의는 사실 트럼프만의 문제는 아니고 오바마 행정부, 부시 행정부 때부터 확장했던 개념"이라면서 "미국이 전세계적인 군사개입이나 방위공약 축소하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공약뿐 아니라 미국의 큰 추세변화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만약 트럼프가 당선돼 한국 일본 유럽연합 국가들에 '너희 방위는 너희가 책임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서 방위비 분담이나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한다면 그것을 피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그렇다면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많은 권한을 갖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봉 연구원은 "트럼프가 말하는 방식이 거칠지만 그렇다고 인기영합적 발언으로만 볼 수는 없는 것"이라며 "미국 내 여론을 반영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대선과정에서 나온 이슈에 대해 누가되든 묵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당선과 무관하게 이 같은 이슈가 제기된 이유에 대해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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