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 위기' 책임주체가 없다 ①
국책은행에 구조조정 맡겨, 사실상 '방치'
청와대·금융당국, 부실기업 수명 연장 … "국회 조사 통해 책임 규명해야"
조선업계 위기의 출발은 대우조선해양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선 수주가 급감했지만 유가가 상승하자 조선 대형 3사가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치열한 수주 경쟁이 벌어진 결과 대형 3사는 '저가수주'라는 거대한 부실 폭탄을 떠안게 됐다. 저가수주의 방아쇠를 당긴 건 대우조선해양이다. 조선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뒤늦게 해양플랜트에 뛰어들어 가격을 대폭 낮춰 입찰에 들어가면서 저가수주 경쟁이 촉발됐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대우중공업에서 분할 설립됐다. IMF 외환위기 직후 대우중공업이 워크아웃절차에 들어간 이후다.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가 출자전환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가 됐고 2001년 워크아웃종료 이후 16년 넘게 이 같은 지배구조는 바뀌지 않고 있다.
◆'매각가치 극대화'에 민영화 놓쳐 =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 호황에 힘입어 2006년까지 승승장구했다.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 매각에 나섰다. 시장 가치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제시한 한화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자금 동원력이 떨어진 한화측이 거래조건 변경을 요구했지만 정부의 '매각가치 극대화' 원칙에 발목이 묶여 매각은 결렬됐다. 대우조선해양의 민영화 시기를 놓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이후 해양플랜트 분야에 뛰어들어 큰 손실을 입고 부실화됐다. 대형 부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분식회계 의혹까지 받게 됐지만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금융감독당국은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금융당국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지난해 10월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하고 3조2000억원을 투입했지만 고강도 자구안을 통한 경영정상화가 가능할지 미지수다.
STX조선해양은 2013년 위기를 맞았고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4조5000억원을 투입했지만 경영정상화에 실패하고 결국 법정관리절차를 밟게 됐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정치적 논리에 휩싸여 금융당국의 동조 하에 국책은행들의 자금 지원이 이뤄진 것이다. 제대로 된 구조조정 노력 없이 돈만 투입된 무책임한 방치였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장은 "더 이상 자체 생존이 불가능한 한계 기업의 구조조정은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고 관치를 통해 막으려 하면 더 큰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대주주와 경영진 등 책임을 져야할 이들에 대한 책임추궁조치가 분명하지 않으면 이익은 사유화되고 부담만 사회화된다"며 "미흡한 책임추궁조치는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적 저향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업무 손 놓은 금융위원회 = 국책은행에 의한 구조조정은 사실상 금융위원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3월 취임한 이후 금융개혁에 '올인'했다. 취임 후 국회 정무위 보고에서도 금융개혁과 관련한 내용이 중심이었을 뿐 기업구조조정 관련 내용은 없다. 금융위는 대우조선해양의 분식 회계 의혹이 일었던 7월 이후에서야 구조조정에 관심을 기울였다. 금융위는 지난해 한국금융연구원에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상시법제화 방안' 연구를 맡겼다. 지난해 11월 나온 연구보고서는 해운업과 조선업의 불황에 대해 경고했다. 보고서는 해운업과 관련해 "최근 세계 해운시장의 공급초과율 축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성장세 둔화, 신흥국 경기부진 등을 감안하면 단기간 내 업황개선이 어려울 전망"이라고 밝혔다. 조선업에 대해서는 "2013년 세계 및 국내 조선사 수주량이 일시적으로 반등했지만 2014년 상반기 다시 감소하는 등 불투명한 업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조선·해운업에 대한 경고가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임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금융개혁에만 집중했다"며 "구조조정 업무를 드러내 놓고 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우선 순위에서 밀린 것은 맞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확대하는 등 꾸준히 진행해 왔다"며 "금융개혁에 매진하느라 구조조정을 등한시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책은행과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구조조정을 전면 중단하고 국책은행 도움없이 더 이상 회생할 수 없는 기업에 대해서는 청산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며 "국책은행과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회 조사를 통해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 청와대·금융당국 면피 급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