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집단 지정기준 자산 10조원으로 상향

2016-06-09 10:59:11 게재

공기업도 제외

"기준변경 불합리" 지적도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운영중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제도의 지정기준이 현행 자산총액 5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대폭 상향된다. 공기업은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된다.


정부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개선방안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일괄 조정된다. 이는 2008년 자산총액 5조원 기준이 도입된 이후 8년이 경과하면서 경제규모가 커지는 등 바뀐 경제여건을 반영해야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데 따른 것이다. 실제 지난 4월 공정위가 자산 5조1000억원인 카카오를 대기업집단으로 분류하자 348조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삼성그룹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대기업집단 소속회사에는 상호·순환출자 금지, 채무보증제한,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공시의무 등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가 적용된다. 또 공정거래법 외에 중소기업·조세·언론·고용·금융 등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원용한 38개 법령의 규제를 받게 된다.

공정위는 8년간 국내총생산(GDP)이 49.4% 증가한 점, 지정집단 자산합계 증가율이 101.3%, 자산평균 증가율은 144.6%에 달한다는 점, 최상위 집단과 최하위 집단간 자산규모 격차가 103.3%에 이른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정기준을 10조원 이상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와 함께 공기업을 자산규모와 상관없이 대기업집단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2002년부터 공기업도 대기업집단에 포함시켜왔으나 알리오(공공기관 공시시스템) 개설, 중장기재무관리계획 작성 의무화, 출연·출자기관 설립시 정부사전 협의절차 등을 통해 공정거래법 수준의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을 10조원 이상으로 올리고 공기업집단을 제외할 경우 2016년 4월 기준 대기업집단 수는 65개에서 28개로 줄고, 계열사 수는 1736개에서 1118개로 감소한다.

공정위는 9월까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작업을 완료하고 새로운 지정기준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원용한 법령 38개 가운데 36개는 별도의 개정 없이 상향된 기준이 자동 적용된다. '5조원 이상'을 명시한 고용보험법 시행령과 수산업법 시행령은 별도의 개정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다만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와 공시의무는 현행 5조원 기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부의 부당한 이전을 차단하고 시장감시를 통해 소유지배구조와 불합리한 경영행태 개선을 유도하는 등 경제력집중 외의 고유한 목적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는 아울러 국민경제 규모 변화와 지정집단 자산총액 변화 등을 고려해 3년마다 대기업집단 지정기준 타당성을 재검토하는 것을 시행령에 명문화하기로 했다. 지주회사 자산요건도 현행 1000억원 이상에서 5000억원으로 상향하고, 3년 재검토 기한을 설정하기로 했다.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을 상향해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을 상위집단에 집중,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면서 "지정 제외되는 하위집단에게는 38개 법령상 규제가 일괄 면제돼 신사업 진출, 사업영역 확대 등 성장 여건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과도하게 높여 잡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정집단의 자산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은 경제력집중이 심화됐다는 의미인데 이를 근거로 대기업지정 자산기준을 상향조정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산 5조원 미만의 중견 재벌 중에도 문제가 있는 곳이 많다"며 "이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전날 의견서를 내고 "대기업집단 지정기준 변경은 공정거래법 시각에서만 결정할 사안이 아니며 대기업에 대한 일반적인 규율장치와의 보완관계 등을 체계적으로 고려해야한다"며 "정부 시행령보다는 국회 상임위의 충분한 검토를 거쳐 법률로 결정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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