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영국, 친구로 남을 수 있을까
블룸버그BW "과도한 통합 욕심 대신 중첩된 이익 내에서 다양함 찾아야"
영국의 시인이자 성직자인 존 던이 1624년 쓴 시다. 마치 4세기 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예견한 듯한 내용이다.
유럽은 오늘날 힘이 약해졌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최근호에서 "대중들의 산더미같은 분노가 유럽으로부터 쓸어간 것은 돌 한 덩어리에 그치지 않았다"며 "인구 6400만명, 유럽 2위 경제대국 영국을 앗아갔다"고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라트비아 전 대통령인 바이라 비케 프라이베르가는 브렉시트 투표 가결 직후 인터뷰에서 "절친의 장례식에 온 느낌"이라며 "우리가 어렵사리 만들었던 EU는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슬퍼했다.
그가 비통해하는 이유는, EU가 단지 경제적 이익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는 데 있다. EU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야기했던 국수주의와 대결주의, 증오 등을 막고자 한 보루였다.
브렉시트 투표 직전 EU정상회의 의장(전 폴란드 총리) 도널드 터스크는 독일 일간 빌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역사학도로서 봤을 때,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EU는 물론 서양의 정치적 문명사회 역시 붕괴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블룸버그는 "이제 할 일은 슬픔을 빨리 잊는 것"이라며 "동시에 터스크의 경고가 현실화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전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총리가 사임을 발표하고 금융시장이 출렁이면서 전 세계에 공포가 엄습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영국은 EU와의 새로운 관계를 개척해 나갈 것이다. 이전의 결혼생활보다 더 많은 이익을 누리는 절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블룸버그는 "물론 그 길은 브렉시트 찬성파가 주장한 대로 안락하고 호화스런 길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반대파가 경고한 것처럼 암울한 길도 아니다. 더 큰 도전과제는 EU가 붕괴하는 걸 지켜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중앙은행 전 총재이자 최신작 '연금술의 종언 - 돈과 은행, 세계경제의 미래'를 쓴 머빈 킹은 "국민투표를 벌이는 과정에서 찬성파나 반대파 모두 지킬 수 없는 장밋빛 약속을 했다"며 "이제는 무대 뒤에 있는 사람들이 팀을 이뤄, 새로 선출될 총리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유럽을 벤다이어그램으로 살펴보면, 단일한 이해관계의 대륙이 아니라는 점을 한눈에 알 수 있다(그래프 참조).
유럽은 이미 연합과 동맹이 복잡하게 중첩된 거대한 원들의 집합체다. 브렉시트가 가결되기 전에도 영국은 유럽의 여러 집합체 외부에 있었다. 공통화폐인 유로를 사용하는 유로존 회원국이 아니었고, EU 회원국간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셍겐조약국도 아니었다. 영국은 EU관세동맹과 유럽경제지역 회원에 만족했다. 영국이 EU를 떠난다 해도 이 협약에서 나가지는 않을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달리 말하면 영국의 선택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가 아니다"라며 "영국이 EU를 떠나려는 것은 텍사스주가 미국에서 분리독립하려는 것보다 훨씬 충격이 덜하다"고 진단했다.
스위스취리히연방공과대학 유럽정치학 교수인 프랭크 쉬멜페니히는 "차등적인 통합은 시스템이 갖는 장점이지, 약점이 아니다"라며 "각국이 각기 다른 관계를 맺도록 허용한 것은 국가별 차이를 인정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이는 포퓰리즘 정당의 압력을 완화하는 안전판 역할도 한다.
'전부 아니면 전무'를 거부한 영국
엘리트 공무원들이 '우리의 나라를 되찾겠다'는 성난 민심을 무시하거나 폄하한다면, 이는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는 영국에서 브렉시트 가결로 나타났고,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의 선전으로 확인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특히 영국 브렉시트 가결은 대중들이 억압받고 있다고, 지도자가 자신들의 편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확실히 보여줬다"며 "EU 기준으로 볼 때 영국의 경제상황은 확실히 건강하고, 영국의 역대 총리들은 EU 규정으로부터 수많은 예외를 인정받아 왔음에도 영국 대중들이 느끼는 민심은 객관적 조건과는 크게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통 통화 유로화에 묶여 모든 규정을 다 따라야 하는 EU 내 불안한 나라들의 국민들이 브렉시트 가결을 보고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당수 마린 르펜이 스스로를 '마담 프렉시트'(Madame Frexit, 프랑스의 EU 탈퇴를 주도하는 여인)로 자청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는 브렉시트 투표 직전 "프랑스가 EU를 떠나야 할 이유가 영국보다 1000개는 더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유럽 내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은 '더욱 더 유럽화를 추진해야 한다'로 모아졌다. 1957년 로마조약에 따라 유럽 각국은 보다 밀접한 연합체를 결성키로 했다. EU 창설자 중 한 명이었던 프랑스 경제학자 장 모네는 그의 비망록에 "유럽은 위기를 겪으며 단단해질 것이며, 위기에 대처하는 해법들의 집합체가 될 것"이라고 적은 바 있다.
모네의 철학은 EU의 과도함을 부추겼다. 유럽 지도자들은 대중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보다 멀리 나아갔다. 결국 민심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주요국들에서 반EU 정당이 득세하게 된 이유다. 우파는 국경을 없앤 이민정책과 납세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구제금융정책, EU공무원의 불필요한 요식행위에 분노하고 있다. 좌파는 채권국이 강제하는 초긴축 정책에 울화를 터뜨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좌우파 가릴 것 없이 비판하는 건 'EU 내 민주주의의 결핍'"이라고 지적했다.
브렉시트 투표를 둘러싼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유럽 나라들을 보다 긴밀히 묶자는 선의의 정책은 오히려 분열의 씨앗을 심었다. 대표적 사례가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이다. 유로존을 벗어나려 해도 탈퇴 이후 안전판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영국이 유로존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로화 문제는 유럽통합의 대의 앞에 놓인 걸림돌로 여겨지는 난민문제와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통제불가능으로 여겨지는 유럽 외부로부터의 난민 문제는 너나 할 것 없이 긴급한 문제로 인식된다. 반면 EU 고위급 공무원들은 유로존을 지켜야할 가치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유로화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시행됐던 금본위제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국가 통화정책의 구속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스같이 경제가 취약한 나라들에게 유로화 가치는 너무 높다. 그리스의 상품과 서비스가 비싸지면서 경제회복의 과정은 요원하기만 하다. 반면 독일에게는 유로화 가치가 너무 낮다. 독일 산품이 엄청난 가격경쟁력을 갖추면서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 이로 인해 독일의 무역 상대국은 성장이 정체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그리스 할당 유로화 가치 낮춘다면
하지만 EU는 유로존 탈퇴 조항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또 유로존을 성공시키는 데 필요한 금융기관, 즉 과세와 재정을 담당할 중앙기구를 창설하는 데도 미적거리고 있다. 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인 세바스찬 맬러비는 "유럽은 진퇴양난에 빠졌다"며 "물러설 수도, 전진할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이론적으로 본다면, EU가 택할 최선의 선택은 완전한 재정통합, 즉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화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그는 유로존에서 한 발을 넣거나 뺄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스티글리츠는 "그리스에 할당된 유로화를 기타 국가의 유로화보다 가치를 낮춤으로써 그리스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회복시켜야 한다"며 "채권국들이 그리스 유로화로 채권을 상환받는 데 동의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독일이 유로존을 떠나는 방법이나 잘사는 북부유럽과 못사는 남부유럽이 각각의 유로화를 통용시키는 방법도 제안한다.
이탈리아 피렌체 소재 유러피언대학연구소 전직 정치공학자인 필립 슈미터는 "통합의 확대를 원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외교적 관계를 허용하느냐 여부가 유럽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EU와 영국은 더 이상 동일한 벤다이어그램 내에 있지 않다. 하지만 양측 모두 핵심 이익이 중첩되는 미지의 영역을 찾아야 한다. 블룸버그는 "어떤 사람도 섬처럼 고립돼 살 수 없다"며 "세계화의 시대,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