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와 카다피, 아랍의 봄에 어떤 연관 있었기에…

2016-07-12 12:05:59 게재

리비아 카다피, 석유달러 대신 금본위통화 창설하려다 제거돼 … 미 경제학자 엥달 "힐러리 개인이메일 속 추악한 미국"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수년째 지속된 '이메일 게이트'에서 벗어나는 형국이다. 미 사법당국은 불기소 처분으로 힐러리에게 면죄부를 선사했다. 하지만 그의 범법 여부를 떠나 간과해선 안될 게 있다며 미국의 저명 전략경제학자 윌리엄 엥달이 장문의 글을 올렸다. 바로 2011년 리비아내전이다. 미국이 달러패권 지키기에 얼마나 혈안이 돼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 힐러리의 이메일은 이미 2013년 해킹돼 러시아투데이(RT)에 일부 내용이 공개된 바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사적 이메일 계정을 통해 보좌관 시드 블루멘설(Sid Blumenthal)과 주고받은 내용은 가히 경악스런 내용이다. 2011년 리비아내전 당시 최고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이 담겼다. 동시에 세계 기축통화인 미 달러에 대한 카다피의 위협, 즉 금을 기반으로 한 통화를 만들어 아프리카와 중동의 산유국이 통용시키자는 계획 등도 포함됐다. 힐러리의 부주의함은 미 국민에게 안보불안감을 안겼지만, 전 세계 나머지 나라들은 그 덕분에 미국의 추한 속살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다음은 엥달의 글 전문.

최근 공개된 힐러리의 이메일을 보면 2011년 리비아 카다피를 제거하기 위해 미국이 국제적으로 조직한 전쟁의 전모가 잘 드러나 있다. 미국은 '보호책임원칙'(R2P), 즉 특정국가가 반인도 범죄, 인종청소 등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유엔이 나서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워 카다피를 제거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리비아에 대한 전권을 국무장관이던 힐러리에게 위임했다.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때 이 지역 나라들의 정권교체를 지지했던 힐러리는 리비아내전에 개입할 때 R2P원칙을 들어 미국의 전쟁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전쟁으로 승급시켰다. 힐러리는,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열린사회연구소'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카다피가 무고한 리비아 시민을 폭격하고 있다"며 전쟁의 정당성을 설파했지만,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은 바 없다.
힐러리 클린턴 미 민주당 대선후보.

당시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급인사를 인용해 "힐러리와 사만사 파워, 수전 라이스 3인방이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해 리비아 카다피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승인받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만사 파워는 당시 국가안전보장이사회 선임 자문역이었고(현 UN 미국대사), 수전 라이스는 유엔 대사(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였다.

당시 파워와 라이스를 측근으로 둔 힐러리의 힘은 대단했다.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와 국가안보보좌관 톰 도닐런, 대테러센터장(현 CIA국장) 존 브레넌이 리비아 개입을 극구 만류했지만 묵살했다.

클린턴은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일련의 사태에 깊게 관여하기도 했다. 중동 지역 전역에서 정권교체 바람을 일으킨 아랍의 봄은 2003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점령한 직후 마련한 중동개혁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2011년 미국은 프리덤하우스 등 인권단체의 뒤에 숨어 '아랍의 봄' 작전을 폈다. 벤 알리의 튀니지와 무바라크의 이집트, 카다피의 리비아 등 당시 미국이 정권교체 목표를 내세운 국가는 3곳이었다.

중동 국가들을 전복하려는 미국의 '아랍의 봄' 작전이 2011년을 목표시점으로, 리비아 등 3개국가를 목표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힐러리와 참모 블루멘설이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해 드러났다. 참고로 블루멘설은 빌 클린턴 전임 대통령이 재직 당시 저지른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륜스캔들과 이에 따른 탄핵정국에서 법적 조언을 해주던 변호사였다.

카다피가 꿈꾼 '골드 디나르'

2011년 10월 20일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진 것은 왜 미국과 나토가 이집트의 무바라크처럼 감옥에 보내는 대신 카다피를 살해했어야 했느냐는 것. 미국이 지원한 알카에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보고를 받은 힐러리는 카다피 살해 당일 미 CBS와의 인터뷰에서 그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의 말을 인용해 "왔노라, 보았노라, 죽었노라(We came, we saw, he died)"고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최고지도자.

카다피가 자신의 나라인 리비아와 아프리카, 아랍지역에서 어떤 일을 진행중이었는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카다피와의 전쟁을 수행한 힐러리의 당시 이메일이 공개되면서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카다피 제거와 리비아 붕괴는 힐러리 개인의 결정이 아니었다. 그 결정은 바로 미국의 극소수 금융계 거물들이 내린 것이었다. 카다피가 석유거래에서 달러를 쓰는 대신 금을 기반으로 한 통화를 만들어 유통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1년 브레턴우즈체제를 파기하면서 달러와 금의 연동을 깨버렸다.

이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내세워 석유달러체제를 확립하면서 달러패권을 이어갔지만 중동과 아프리카의 석유생산국기구(OPEC)은 이를 지속적으로 반대했다. 석유판매로 받은 달러의 가치가 끝모르게 추락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2001년까지 달러 인플레이션은 무려 2000%를 넘었다.

2011년 4월 2일 블루멘설이 힐러리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카다피가 제거돼야만 하는 이유가 나온다. 블루멘설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고위층'으로부터 나온 정보임을 언급하면서 "카다피 정부는 143톤의 금과 비슷한 양의 은을 갖고 있다"며 "리비아가 금을 모은 이유는 이를 기반으로 한 '골드 디나르'(golden dinar)를 만들어 범 아프리카 통화로 사용하려 한다. 이같은 계획은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들을 대상으로 프랑화를 대체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적었다.

디나르는 리비아(LYD)를 비롯해 알제리(DZD)와 바레인(BHD), 이라크(IQD), 요르단(JOD), 쿠웨이트(KWD), 튀니지(TND), 세르비아(RSD)가 쓰는 화폐단위다. 하지만 카다피의 계획은 프랑화를 대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뉴욕·런던 금융가 분노케한 카다피

2000년대 들어 사우디와 카타르 등 걸프아랍지역의 오펙 국가들은 석유와 가스 판매로 얻는 막대한 수입의 상당 부분을 국부펀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 최대 연기금으로 성장한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유가 있다. 아랍오펙 국가들은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중동 정책 등에 신물을 내던 차였다. 예전같으면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 등 국제금융가에 돈을 맡겼겠지만, 이제는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펀드로 굴리려는 것이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와 중동의 많은 산유국 정부들이 석유 수입을 직접 통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뉴욕과 런던 금융가가 바짝 긴장했다. 수조달러에 이르는 산유국 자금은 금융가를 먹여살리는 막대한 유동성이었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 프로젝트가 2011년으로 잡힌 것은 산유국의 석유거래 흐름뿐 아니라 이들 나라의 막대한 자금이 국부펀드로 대거 이탈하는 것을 통제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2011년 4월 2일자 이메일은 월가와 런던금융가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새로운 도전이 제기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리비아의 카다피와 튀지니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는 미 달러에 독립적인, 금 태환 가능한 이슬람 통화를 통용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2012년 초 스위스에서 열린 금융지정학 컨퍼런스에서 제기됐지만, 당시로선 이를 공식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이 2011년 당시 아랍의 봄을 시급히 성사시켜야 할 이유가 해명됐다.

미국 입장에서 시급히 성사시켜야 했던 아랍의 봄

카다피가 골드 디나르를 공식 제안한 때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아프리카연합(AU) 수장이었던 카다피는 회원국들에 "경제적 빈곤을 겪는 아프리카는 골드 디나르를 채택해 부를 일궈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AU는 유럽연합(EU)형 국가연합을 추구하는 모임이다.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의 동의를 기반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리비아 침공을 승인받기 몇달 앞서, 카다피는 아랍오펙 국가는 물론 아프리카 산유국이 석유대금 결제에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금 태환 디나르 창설을 조직하고 있었다. 카다피의 계획에 따르면 석유대금 결제에는 오직 골드 디나르만 사용된다.

물론 이같은 계획의 단초는 2004년 아프리카 53개국 의원들이 모여 범 아프리카 의회를 열면서 시작됐다. 당시 의원들은 아프리카경제공동체를 창설해 2023년까지 금에 기반한 공통통화를 창설하자고 합의한 바 있다.

카다피를 제거한 직후 당시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스 사르코지는 "리비아는 세계 금융질서 안정성을 해치는 심각한 위협이었다"고 주장했다.

리비아내전 당시 미국이 지원한 반군들은 중앙은행을 먼저 만드는 기이한(?) 행동을 해 눈길을 끌었다. 2011년 3월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반군 지도자들은 "카다피가 소유한 국영은행 지배권을 대체하기 위해 독립적인 중앙은행을 설립했다"고 선언했다.

내전의 승패가 가려지기도 전에 중앙은행을 설립했다는 선언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이코노믹폴리시저널의 로버트 벤젤은 "대중봉기 와중에 중앙은행을 창설했다는 얘기는 듣도보도 못한 일"이라며 "반군이 오합지졸이거나 아니면 복잡미묘한 외부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힐러리 이메일에서 드러나듯, 복잡한 외부 개입은 월가와 런던금융가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었다. 2011년 3월 리비아내전에서 반군을 이끈 주동인물은 칼리파 히프터로, 미국 버지니아주 외곽에서 20여년 살았던 인물이다. 이곳에 CIA본부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새로운 금의 실크로드

아랍과 아프리카 지역을 대상으로 금본위제 복귀를 꾀한 카다피의 꿈은 사그라들었다. 카다피는 100% 지분을 소유한 국영은행을 통해 통화주권을 행사했지만 이제 리비아엔 달러와 연동된 화폐를 찍어내는 중앙은행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금본위 통화시스템을 추구하는 또 다른 그룹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 1위 금생산국인 중국과 3위인 러시아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추진중인 일대일로(신실크로드) 프로젝트에는 160억달러 규모의 골드개발펀드 계획이 포함돼 있다.

중국은 또 상하이금거래소를 키워 뉴욕과 런던을 능가하는 금거래 중심지로 삼을 계획이다. 유라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금본위 시스템이 등장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달러헤게모니를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다. 이같은 도전이 성공한다면, 전 세계 대다수 시민들은 지금과 전혀 다른 경제적 조건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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