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캘리그래피 작가 ‘한국캘리그라피협회’ 유현덕 회장

2017-01-20 00:00:01 게재

“시대정신 담아 글로 그리는, 나는 캘리그래퍼입니다”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칼로스(kallos, 아름다움)와 그라페(graphe, 쓰기)라는 그리스 어원에서 따온 말이다.
캘리그래피의 태생은 아름다운 글씨에서 출발하지만, 그 속에는 삶의 가치와 인생의 희로애락이 절절이 담겨 있다.
시대정신을 담아 ‘글로 그리는’ 1세대 캘리그래피 작가 유현덕 회장(한국캘리그라피협회)과의 만남은 그래서 더 즐겁고 여운이 남는다. 



역사와 전통 어우러진 선정릉 인근 둥지
캘리그래피로 현대인의 삶을 어루만지다

10여 년 전 선릉역에 둥지를 튼 ‘캘리그라피 여행'은 일연(一淵) 유현덕 작가의 작업공간이자 그의 제자들에게 캘리그래피를 가르치는 교육현장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캘리그래피 작가들이 인사동이나 홍대에 밀집해있지만 그는 전통과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선정릉에 매료돼 강남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강남 사람들은 축복받았죠.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멋진 자연과 역사, 전통이 어우러진 선정릉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강남 곳곳에 남아있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 위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현덕 작가는 광고디자인을 전공한 뒤 대기업 디자인실에서 18년간 근무했다. 이후 국내에 캘리그래피가 알려질 즈음부터 작가로 활동해 전통의 큰 줄기에 새롭고 역동적인 현대인의 애환과 시대정신을 담아 ‘글로 그리는’ 일을 계속해왔다. 아름다운 글씨는 기교와 기능에 머물지만, 정신과 가치를 담은 그의 캘리그래피 작품에 사람들은 공감하기 시작했고, 삶을 치유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캘리그래피는 예쁜 글씨? 솔직한 글씨!
시대 아픔 함께 하는 것이 작가의 자세

10년 전과 지금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캘리그래피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평생교육의 홍수 속에서 캘리그래피 강좌도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가르침’과 ‘배움’의 참 의미가 사라지고 기능을 배우는 가르침과 배움이 공존하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예쁜 글씨를 쓴다는 기능에만 초점을 맞춰 가르치고 배우다 보니 캘리그래피가 지닌 솔직한 감정과 시대정신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예든 회화든 음악가든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면 시대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적인 성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 작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캘리그래피의 가치를 바로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예쁜 글씨가 아니라 솔직한 글씨, 삶이 담긴 글씨라는 걸 말이죠.”
그의 말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중립적이면서도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다. 유현덕 작가는 세월호 참사 다음 날, 한국캘리그라피협회 소속 작가 6명과 함께 자발적으로 단원고를 찾아가 캘리그래피로 희망의 메시지를 써서 나눠주었다. ‘00야, 돌아와라’는 희망의 메시지는 다음날 부르짖음의 메시지로 바뀌었고, 작가도 울고 그곳에 함께 했던 남녀노소 모두가 울며 애타는 마음을 캘리그래피에 담아냈다.  
글귀 하나하나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한 시는, 지금도 유현덕 작가의 작업실 한 쪽 벽면에 걸려 통곡하고 있다. 



캘리그래피는 배워서 남 주는 것
삶의 절반은 나눔 가치 실천 

유현덕 작가는 제자들에게 ‘배워서 남 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그것이 봉사의 기본이자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며,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소통’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작가들이 함께 하는 ‘한국캘리그라피협회’를 이끌며 지금까지 삶의 절반은 나눔의 가치를 퍼뜨리는데 앞장서왔다. 협회 소속 작가들과 함께 유니세프나 환경재단 등 각종 NGO 행사에서 재능기부를 해왔고, 에이즈협회의 ‘세계 에이즈의 날’과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1회 한국여성대회’에도 재능기부를 했다.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광고 수익을 포기하고 진행하는 공익사업의 일환으로 아름다운 영상과 유현덕 작가의 캘리그래피 시 한 편을 상영하기도 했다. 사회적기업 ‘버트니닷컴’에서도 유현덕 작가가 재능기부한 작품이 새겨진 상품들을 만날 수 있다.
유명한 캘리그래피 작가로서 방송 프로그램 타이틀 제작은 물론, TV 광고나 잡지 등 캘리그래피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는 일상에서 얻고 누리는 만큼 나누는 것에 아낌없는 열정을 쏟아 붓는다. 돌고 도는 나눔의 가치를 캘리그래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에 관심, 방과후 학교·자유학기제 참여
캘리그래피로 지역사회에 기여

유현덕 작가는 인천 영종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캘리그래피를 가르쳤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단지 붓뿐만이 아니라 나무젓가락이나 파뿌리, 나뭇잎, 나뭇가지, 면봉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글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에게서 ‘미래’를 본 것이다.
“캘리그래피는 방과후 학교나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만한 것이 무궁무진합니다. 지난해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소속 중학교인 ‘풍납중학교’ 학생들과 자유학기제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희 연구소가 속한 강남구나 서초구 중학교와 연계해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교육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그는 이미 7년째 성북구 캘리그라피 디자인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서초구 양재복지관에서도 강의하고 있다. 서초구 삼성디자인센터가 후원하고 복지관이 주최한 바자회 행사에도 재능기부로 참여한 바 있으며, 지난해 한국캘리그라피협회 작가들과 함께 서초구 ‘서리풀축제’에 참여하는 등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다채로운 활동을 해왔다. 이외에도 역삼동 충현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캘리그래피 지도봉사를 했으며, 남양주시 장애인복지관에서도 캘리그래피로 ‘진정한 교감과 소통’을 해나가고 있다.
시대정신을 갖고 진정한 소통을 하고 싶다는 유현덕 작가.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요,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캘리그래피 작가로서의 행보는 2017년에도 ‘여전히 맑음’이다.

피옥희 리포터 piokhee@nvaer.com
내일신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