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자살' 개념도, 정확한 통계도 없어

2017-02-06 10:38:24 게재

연 2113시간 노동 OECD 두번째 … "과로사방지법 제정해야"

# 보건복지부가 이달부터 소속 공무원의 토요일 근무를 전면 금지했다. 최근 세자녀의 엄마인 김 모(35) 사무관이 지난달 15일 공휴일에 출근했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했다. 김 사무관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뒤 6일간 새벽 출근, 야근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해 12월 31일 토요일 경기 가평우체국 집배원 김 모(49)씨가 한 빌라 3층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좁은 복도에 택배물품이 떨어져 있었고 오토바이는 시동이 걸린 채였다. 김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 지난해 12월 경북 성주군 농정과 9급 공무원 정 모(40)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AI 소독업무를 강행군한 끝에 과로사했다.

우리나라 산재보상시스템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에 의한 뇌·심혈관계 질환자는 2015년에 630여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46%가 사망했다. 또한 업무상 스트레스나 과로로 인한 자살도 부지기수다. 이에 과로사방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정병욱 변호사(법무법인 송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부위원장)는 일과건강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주최로 3 ∼4일 양일에 거쳐 열린 '2017 노동자 건강권 포럼' 중 '죽도록 일하면 죽는다'라는 주제 발표에서 "우리나라 뇌·심혈관계 질환자는 연간 630여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46%가 사망해 업무상질병 중 근골격계, 진폐 다음으로 많았다"며 "뇌·심혈관계 질환의 산재승인률도 15%밖에 안되고 노동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취업자의 규모가 무려 70%에 달해 심각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과로사나 과로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법제도를 제(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뇌·심혈관계 산업재해 46% 사망 =고용노동부 2015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적용사업장 236만7000여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1796만8931명 가운데 4일 이상 요양이 필요한 재해자는 9만129명으로 사망은 1810명, 부상 8만999명, 업무상질병 7064명으로 나타났다. 업무상질병 가운데 뇌·심혈관계 질환자는 341명으로 근골격계질환, 진폐에 이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업무상질병 사망자 855명 중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자는 293명으로 나타나 진폐(427명) 다음으로 많았다.

유성규 노무사(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는 "뇌·심혈관계 질환이 업무상 질병 사망통계에서 2위를 차할 정도로 과로사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관련법은 과로사 예방을 위한 내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사업주의 의무로 신체적 피로와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작업환경 조성과 근로조건 개선을 명시하고 있으나 법 위반시 처벌 규정이 없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도 장시간 노동, 스트레스, 직장 내 괴롭힘 등 과로사의 원인이 되는 다양한 유해요인을 예방하기 위한 법률상 규정이 미흡하다. 또한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노동시간 규제가 없고 5인 이상도 고용부의 법해석으로 1주 100시간 노동이 가능하다. 게다가 운수업 등 특례업종에는 장시간 노동을 무한정 허용하고 있다.

유 노무사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자살의 경우 상당수가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의한 과로자살로 추정된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살을 과로사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으며 그 실태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2014년 과로사법 제정 = 세계적으로 '과로사'란 단어가 일반화된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6년 8월 발표한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5년 한국 노동자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나타났다. 일본(1719시간)보다 394시간이나 길다. 하루 8시간씩 일한다면 50일이나 더 일하는 셈이 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5.8%로 OECD 평균(12%)보다 두 배 이상 높다. 2015년 사망원인의 5위로 1만3513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본은 과로를 사회 문제로 인식해 2014년 11월 과로사 등 방지대책추진법(과로사방지법)을 제정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과로사법에 따라 지난해 5월 처음으로 '과로사 백서'를 공표했다. 백서에 따르면 일본의 노동자 22.7%가 산업재해 인정기준 '과로사라인'인 월 80시간 이상을 초과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외 근무 시간(연장근로) 사유는 '고객의 불규칙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44.5%)', '업무량이 많아서(43.3%)' 순이었다. 일본은 더 나아가 지난달 노동자의 연장근로 상한선을 낮추는 노동기준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노사협정을 통해 연장근로를 월평균 45시간, 연간 360시간으로 정하고 위반한 기업은 벌금을 물릴 계획이다. 연장근로 상한선을 월 60시간, 연 720시간으로 제시해 성수기에 노동자가 한달에 100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한 조항도 연 720시간을 넘지 못하게 된다. 성수기가 2개월간일 경우는 월 80시간을 넘길 수 없다.

유 노무사는 "과로자살을 포함함 과로사의 합리적 산재인정 기준마련과 예방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만들기 위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한 '과로사예방센터'를 설립하고 과로사법을 제정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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