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경제력집중 막자│① 허술한 지주회사제
순환출자 막았지만 수직계열화로 덩치 커져
GDP 대비 재벌그룹 자산비중 두배로 늘어
지주회사제, 경제력집중 가장 용이한 형태
총수일가 지분율 낮은데 자회사만 수십개
"모방형 경제틀 재벌체제, 이제는 바꿔야"
재벌개혁의 핵심 의제로 재벌의 경제력집중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지주회사 제도가 재벌이 덩치를 키우는 데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다.

◆지주회사 규제 대폭 완화 = 지주회사제도가 1987년 이후 금지된 이유가 경제력집중 때문이었다.
재벌의 순환출자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1999년 지주회사가 도입됐다. 2007년 법 개정을 거쳐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주회사제도 규제 완화가 경제력집중이 심화하는데 역할을 했다"며 "지주회사체제를 따르지 않은 재벌과의 비대칭적 규제 문제를 해결한다는 논리로 규제를 완화해주고 지분율로만 규제하려고 한데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을 40%로 규정하고 있다. 도입당시보다 10% 줄었다. 자회사가 사업관련성이 있는 손자회사를 둘 수 있는데 도입당시 지분율 100%에서 40%로 크게 후퇴했다. 증손회사도 1999년에는 금지했으나 지금은 손자회사가 100% 지분을 보유하는 경우 허용하고 있다.
기업단위별로 지주회사를 지정하는 방식이어서 기업집단(재벌)체제에 맞지 않는다. SK나 GS는 재벌 계열사 일부만 지주회사체제에 편입되고 있다. 지주회사와 순환출자가 공존하는 기형적 지배구조도 있다.
기업단위 지정이다보니 지주회사 자회사가 지주회사로 지정된다. SK그룹의 SK이노베이션은 지주회사이면서 동시에 지주회사인 SK(주)의 자회사이기도 하다. 규제당국이 자의적인 판단을 할 여지를 제공한 셈이다.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시 자사주 의결권을 인정하는 문제는 최근 국회에서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 부분은 경제력집중을 완화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홍명수 명지대 법대 교수는 "지주회사제도는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역할을 했다"며 "우리나라 재벌의 경제력집중은 심각한데 이를 막는 데 도움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박상인 교수도 "예전의 모방형 경제에서는 재벌체제가 효과적이었다"며 "하지만 혁신형 경제에서는 지나친 수직계열화와 문어발식 경영으로 대표되는 재벌체제는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산업경쟁력 진화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집중 문제"라며 "모든 분야에 재벌이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화되는 경제력 집중도 = 경제학계에 따르면 재벌의 경제력 집중도는 재벌그룹의 총자산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백분율로 비교한다. 이는 경제력집중을 측정할 때 국내외에서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박사)이 분석한 GDP대비 전체재벌 자산 비중 추이를 보면 2001년 88.8%에서 2003년 85.9%로 최저를 기록했다가 이후 상승세를 기록, 2013년 154.3%로 최고수준을 보인다. 2015년 현재 GDP 대비 재벌자산 비중은 150%였다. 2003년에 비해 거의 두배 가까이 비중이 높아진 꼴이다.
30대재벌만 한정해도 비슷한 곡선을 그린다. 지주회사제도가 금지된 1988년의 30대재벌 자산의 GDP 비중은 46.14%였다. 이후 서서히 상승세를 타다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85.30%까지 급등했다. 이후 하락하기 시작 2003년 51.75%까지 떨어졌다. 이후 재차 상승해 2009년 78%, 2013년 96.3%까지 치솟았다. 2003년의 두배에 근접했다. 이후 곡선은 옆으로 가고 있다.
5대재벌가문인 범삼성ㆍ현대ㆍLGㆍSKㆍ롯데의 자산규모는 2001년 이후 2015년말까지 전체 재벌(공기업 포함) 자산의 평균 47.91%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재벌의 경제력집중 특히 상위재벌가문의 경제력집중에 대한 특별한 정책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IMF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83%(2014년)으로 명목GDP 1조달러 이상 15개 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 다음이 영국의 BP가 12.01%이고 나머지 기업은 모두 10% 이하였다.
◆품목 절반 가까이가 독과점 상태 = 재벌의 경제력집중은 각 산업 또는 특정 거래분야에서 독과점 양상으로 나타난다. 최근 10년간 품목별 시장집중도는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상위3개사 시장점유율합계 평균을 통한 시장집중도를 보면 2003년 59.5%에서 2011년 67.6%으로 악화됐다. 상위3개사 시장점유율이 50%를 넘는 고집중 품목 비중도 45.6%에 달했다. 총 품목 가운데 절반 가까이 독과점 상태인 셈이다.
시장집중도 곡선은 2005년 이후 급격히 상승했다. 이는 참여정부 말부터 시작된 시장친화적 대기업정책과 이명박정부의 747공약과 노골적인 기업친화적 정책이 초래한 결과로 해석된다.
삼성 현대차 SK LG 상위그룹의 총수 지분율은 2011년 1.0%에서 2015년 0.9%로 큰 변화가 없다. 친족과 계열사 지분 등을 더한 내부지분율도 49.8%(2011년)에서 49.6%(2015년)로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중위(5~10위)나 하위(11~30위)그룹도 비슷한 양상이다. 대부분의 그룹들이 계열사 지분에 의존하는 형태다. 한국 재벌의 총수일가는 총 주식의 5%도 안되는 주식을 소유하면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경제력집중 문제는 시장집중, 소유집중, 일반집중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안일한 방식으로는 경제력집중으로부터 비롯된 경제력남용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대자본(재벌)의 경제력 남용은 경제력이 커진 결과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은 경쟁보호차원에서 시장집중에 대한 통제를 강하게 시행했다. 회사를 분할하고 손자회사를 인정하지 않는 등 강력히 대처해 왔다.
경제력집중은 특정인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이 너무 커져서 사회적 의사결정이 공익보다 특정인의 이익에 의해 이뤄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각종 사건과 정부정책에서 드러났듯이 재벌은 법조계 정계 관계 학계 언론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재벌의 경제력 남용은 담합이나 사익편취처럼 일상적 형태로 나타난다.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편취 사례는 부지기수다. 일부 재벌들은 지주회사형태를 취한 뒤 자회사 손자회사로 회사를 늘리고 수직계열화를 통해 새로운 사업영역확장에 나서면서 경제력집중이 심화됐다.
◆재벌, 중소기업 서비스 적합업종에 진출 = 재벌그룹은 계열사 숫자가 꾸준히 늘었고 영위업종도 확대됐다.
2009년 1139개사에서 2014년 1616개로 477개 계열사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제조업 계열사 비중은 32.3%에서 28.3%로 감소했고 서비스업 계열사 비중은 67.7%에서 71.7%로 증가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서비스 적합업종 관련 대기업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재벌그룹 계열사들이 서비스 적합업종분야에 진출해 있다. 롯데칠성음료나 코카콜라음료 동아오츠카는 서비스적합업종 적용대상인 자동판매기 운영업을 영위하고 있는 식이다. 10개 중기 서비스 적합업종에 33개 재벌 또는 대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재벌의 경제력집중 막자' 연재기사]
▶ ① 허술한 지주회사제│ 순환출자 막았지만 수직계열화로 덩치 커져 2017-02-23
▶ ② 규제 강화한 이스라엘│ 자회사만 허용해 … 기업지배구조 2단계로 단순화 2017-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