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대기업 주총
이사 숫자 줄이고 '경영권 방어'에만 몰두
집중투표제 도입 등 소액주주 권리 강화 외면 … "상법 개정 대비용"
23일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 따르면 SK 롯데 한진 CJ 등 재벌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24일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정관 변경안을 상정했다.
변경안은 3자 배정액을 상향조정하거나 신주 발행을 허용해 지배주주의 경영권 보호장치로 사용될 수 있고 소액주주 권리 행사를 제한한다는 지적이다.
◆SK 롯데 CJ 한화 등 정관 변경안 상정 = SK하이닉스는 발행주식의 100분의 30을 넘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주를 인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정관변경안을 상정했다. 인수 대상은 주식총수 100분의 5 이상 소유 주주와 우리사주조합원, 계열사와 임원 등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이에 대해 최대주주 등에게 별도로 3자 배정을 허용하는 것은 기존 주주들의 주식이 희석화될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의견을 냈다.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가 3자 배정액 상향조정 등의 정관 변경에 나섰다.
롯데케미칼은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시 제3자에게 배정할 수 있는 한도를 증가시키는 개정안을 상정했다. 롯데쇼핑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한도를 1500억원에서 2조원으로 상향조정할 방침이다. 이는 3자 배정한도 증가로 이어진다.
이같은 과도한 수준의 3자 배정한도 상향조정은 기존 주주의 주식희석화 위험이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CJ와 CJE&M CJ헬로비전은 정관변경안에 이사회 결의로 발생주식 총수의 2분의 1 내에서 의결권 배제주식이나 전환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서 유상증자나 무상증자, 주식배당을 실시하는 경우 의결권 배제 주식에 대한 신주 배정을 이사회 결의에 따라 다른 종류의 주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우호주주에 의결권 배제 주식을 발행했다가 이사회 결의로 의결권 있는 보통주 배정이 가능한 셈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이에 대해 이 조항은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용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반면 외부주주의 정당한 경영 참여를 막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의견을 냈다.
한화투자증권과 한화생명보험, 한화손해보험도 발행주식의 2분의 1 범위 내에서 의결권 배제 주식이나 전환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개정안을 상정했다. 나중에 다른 종류 주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단서도 달았다.
이들 기업은 주식 배정에 대한 사전공지 의무를 축소하는 정관 변경도 추진한다. 신주발행시 제3자 배정과 관련 '금융위원회와 거래소에 공시함으로써 통지와 공고를 갈음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정관에 신설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주들이 3자 배정의 내용을 사전에 알 수 없게 된다.
◆이사회 수 축소는 소액주주에 불리 = 재벌그룹들은 이번 주총에서 이사 수를 줄이는 정관 변경안도 상정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이사 수 상한을 정하는 경우 소액주주가 추천할 수 있는 이사 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SK하이닉스는 정관개정안에 6인 이상으로 구성하는 이사회 인원 규정을 6명 이상 10인 이하로 변경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롯데칠성음료도 이사 임기를 3년 이내로 연장하고 이사 수를 3~9명으로 제한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킬 방침이다. 한진중공업도 이사회 구성원을 기존 3인이상 7인 이내에서 3인 이상 5인 이하로 줄이는 정관 일부 개정안을 상정했다.
롯데정밀화학은 이사회 결의로 사장 등 임원을 선임할 수 있는 정관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상정했다. 이는 이사회 인사권한을 축소하는 셈이다.
현대HCN은 기존 정관에서 1억5000만원을 초과하는 계열사와 특별관계인과의 거래에 대해 이사회 7인 가운데 6인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번에 삭제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또 급여 시스템의 변경과 이사 이상의 임원 선임 및 해임, 10억원 이상의 지출과 투자 등 거래, 중요자산의 처분 등을 이사회 결의사항에서 제외한다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이같은 정관 변경안은 이사회 권한 축소를 가져오기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대기업들이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에 대응하기 위해 정관을 변경하려는 것 같다"며 "소액주주 권리 강화를 위한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채택하는 곳은 한 곳도 없고 지배주주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정관변경만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