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인 이야기│ ⑧ 25년 호떡인생 김진호 대표

국내 최초 브랜드호떡, 30억 매출

2017-04-04 10:35:22 게재

흑임자·견과류 등 재료 차별화 … 남대문시장·인천공항 등 직영점 7곳 운영

인천공항 12번 게이트 앞. 달콤한 향기가 지나는 이들을 유혹한다. 향기를 따라간 이들은 놀란다.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공항에 호떡가게가 있다니" 이들의 손에는 어느새 동그란 호떡이 하나씩 들려 있다. 출국을 기다리는 외국인들도 호떡을 먹으며 연신 엄지를 치켜세운다.

김진호 대표가 인천공항점에서 호떡을 굽고 있다. 사진 김형수 기자

이곳이 바로 국내 유일의 브랜드호떡 '김진호호떡 인천공항점'이다. 2014년 터를 잡은 약 50㎡(약 15평) 크기의 매장에서 하루에 팔리는 호떡은 1500여개. 월 8000만원 가량의 매출을 올린다. 1년이면 10억원 가량이다.

김진호호떡이 인천공항 국제선 탑승동쪽에 입점한 것은 공항 요청때문이다. 공항측에서 한국문화 홍보 이벤트 행사로 호떡 판매를 진행했다가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자 입점을 제안했다.

김진호호떡은 남대문 본점 이외에 인천공항, 신촌 세브란스병원, 여의도 IFC몰, 과천경마장, 남산서울타워 등 7곳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 30여명에 연 매출은 30억원 가량이다.

황금배율 익히려 일본행 = "어릴 때 어머니가 만든 수제비나 칼국수가 맛있는 비결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손맛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김진호호떡은 반죽부터 불에 구울 때까지 가족을 대하는 정성으로 만든다." 김 대표는 '사랑과 정성'을 맛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김진호 대표의 호떡인생은 1993년부터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회사에 취업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우연히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 쇼핑센터에 갔다 호떡가게 주인의 호떡 빚는 모습에 빠졌다. 곧바로 회사를 그만뒀다.

김 대표는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호떡이 너무 좋았다. 미쳤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고 회상했다. 호떡가게 주인 소개로 명성이 높던 기술자를 알게 됐다. 매일 담배 1갑을 들고 찾아가 제자로 삼아달라고 간청했다.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승낙 받았다.

스승은 그에게 호떡 하나에도 장인 정신이 스며들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내 가족을 생각하라는 거였다. 부모 반대와 걱정에도 혈기왕성한 25세 청년의 호떡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2001년 스승 품을 떠나 남대문시장에 자리 잡았다. 호떡에 '미친' 그는 일본을 찾았다. 당시 주먹구구식이던 조리방법을 체계화 시키려는 발걸음이었다. 많은 노력으로 반죽에 들어가는 재료의 양부터 발효시간, 굽는 시간 등을 표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반죽의 '황금배율'을 익혔다. 1시간 동안 발효한 반죽을 2시간 뒤 구워 판매하는 것도 최상의 맛을 내는 비결 중 하나다

기술 체계화 = 김 대표는 호떡을 '웰빙 간식'이라 부른다. 김진호호떡은 반죽에는 필수재료인 밀가루와 찹쌀 외에 우유, 버터, 흑임자를 넣는다. 속에는 설탕만 들어가는 일반 호떡과는 달리 콩가루와 호박씨, 땅콩 등 10여가지 견과류가 들어간다. 콩가루와 견과류를 넣어 영양을 보충하고 설탕물이 흐르는 것을 방지한 것이다. '흑임자 찹쌀 호떡'은 김진호호떡을 반석에 올려놓았다.

김진호호떡의 명성은 2009년 한 방송사의 '생활의 달인 왕중왕전'에서 우승하면서부터다. 외부 행사 초청이 쇄도했다. 이를 계기로 2013년 '경기(景企)F&B'란 이름의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개인이 아닌 기업으로 성장시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호떡장사를 시작했으니 큰(景) 기업(企)을 일구라"는 부친의 유지를 회사명에 담았다.

그는 앞으로 기술을 익힌 직원들에게 매장을 내줄 계획이다.

"불만만 갖지 말고 행동하라. 행복할 수 있다면 돈을 바라지 말고 자신의 행복과 가치를 위해 행동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김진호 대표는 많은 청년들이 미래에 도전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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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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